나만의 아지트

by 글 쓰는 나그네


예전에 살던 1층 집은 리모델링을 위한 홍보집이었다. 그래서 모든 방과 거실이 확장되었고 특히 안방에는 서재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별도로 있었다. 베란다를 개조한 작은 공간이었지만 운치도 있었고 조용하게 책 읽고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이사를 몇 번 하면서 그런 공간이 없어졌다. 지금은 방 3개이지만 아이들 둘이 성장했고 큰방은 서재로 둘만한 공간이 없다. 긴 테이블을 침대 옆에 두고 사용하지만 공간의 여유로움을 강조하는 아내에게 눈칫밥만 먹고 있다. 안방이 침실과 경대, 장롱에 서재 역할까지 해야 하니 잡화점 매장처럼 부산스럽다. 또한 거실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TV를 켜면 벽을 타고 온갖 잡음이 춤추듯 밀려온다. 그 잡것들의 춤에 휘말리면 사색의 향연은 사라지고 상념의 막춤만 남을 뿐이다. 그러다 길을 잃고 헤매다 책을 덮고 글도 멈춘다.

l 내 아지트

나이 들면 구별되고 싶다. 가족과 세상에게서 그리고 삶에서도 작은 선을 그어 침범하지 못할 공간을 갖고 싶다. 어린 시절 선창가 창고의 작은 공간에다 잡다한 물건을 갖다 놓고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었였다. 그 아지트가 아버지께 발각되기 전까지는 내가 그곳의 주인이었다. 내가 놓고 싶은 것,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장식하고 꾸밀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엔 어른이 없고, 금지라는 푯대도 없고, 질책도 없었다. 다만, 협소한 자유만 있을 뿐이다. 아지트를 벗어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지만 그 안에서만은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꿈꿀 수 있는 공간이 점점 그리웠다.

l 내 서재
어느 날 베란다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다 작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상추와 깻잎을 키우다 그만둔 곳이다. 저것들을 치우면 조그만 공간이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여기에 놓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을 그려보았다. 사이즈는 얼추 될 듯한데 베란다를 가로질러 구분해놓은 벽체가 문제가 되었다. 테이블의 다리가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포기할까 생각하다 테이블 아랫부분이 분해/조립이 가능한 구조였다. 분해해서 다리 방향을 바꾸면 조금은 흔들리겠지만 그래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적인 견적까지 나왔으니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바로 테이블 다리의 분리 작업이 들어갔고 베란다로 옮긴 다음 재조립할 위치를 다시 확인한 후, 재조립했다. 무게 중심이 틀려 약간 흔들리는 것은 작은 서랍과 책을 통해 맞췄다. 나름 서재의 모습을 갖췄다. 낡아 아래위로 움직이지 않는 빨래 건조기도 교체하고 목숨 다한 천장등을 LED로 바꾸니 책을 읽을만한 공간이 되었다. 나만의 아지트가 다시 생긴 것이다.


[베란다 서재]


l 서재의 친구들
내 아지트를 만들고 나니, 하나 둘 친구들이 생겼다. 항상 왼쪽 손아귀를 통해 우뇌를 자극하는 '호두 세 알 친구들', 항상 제자리에 멈춰 앞으로 나가가지 못하는 나에게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파란색 지구본 친구', 가까이하기엔 부담스럽지만 멀어지면 시베리아 벌판을 체험하게 만드는 나의 '티엔느 (전기 히터)'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며 마음을 전하게 만드는 한 묶음의 '리갈 메모지'... 아참, 담양에서 밥 먹다 만난 '대나무 필통' 친구들. 이들이 함께 있으니 테이블 위에 놓인 책들이 더 빛깔 난다.

l 공간은 건축이다
"공간이 없다면 빛도 존재할 수 없다.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시간을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건축은 이러한 공간을 조절해서 사람과 이야기한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베란다의 재활용은 건축이 아니라 리모델링, 리뉴얼 수준이다. 하지만 유현준 교수의 말처럼 죽었던 공간을 조절해서 사색하고 이야기하고 글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니 건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늘진 마음 한 편에 작은 빛이 스며들게 했으니 더더욱 그러하다.

삶에는 틈이 필요하다. 무엇인가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틈. 그 틈이 벌어진 곳을 '틈새'라고 한다. 답답하고 막막한 세상, 그 틈새를 통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이곳에 앉으면 자동차의 물결과 더불어 헤어진 애인을 찾아 나선 바람의 애타는 흐느낌과 태양에 '음매 기죽어' 살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우렁찬 목소리로 기를 펴는 비 친구들과 조우할 수 있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의미도 찾고, 잃어버린 감성도 되살리는 심폐소생술을 받는 느낌이다.

이곳은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가슴을 잠깐이나마 쉬게 할 수 있어 의미가 있다. 사색은 깊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그냥 바라보며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면서, 생각을 없애는 공간이다. 그래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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