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왜 써야 할까?

by 글 쓰는 나그네


글을 왜 써야 할까? 나는 왜 이토록 글쓰기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누가 하라고 시키는 것도 아닌데, 한번씩 이렇게 문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할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쉽게 살면 되지, 꽁꽁 언 지면에 뭔가를 심겠다고 씨앗을 찾고 물을 주고 시간을 소비하면서까지 땅을 파고 삶을 할애하고 있어야만 할까? 그렇다고 씨앗이 땅을 뚫고 잎사귀를 피우고 열매를 제대로 맺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절망 가운데서 희망의 꽃을 피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희망고문에 빠져 다른 삶의 길을 놓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너는 복잡한 사랑은 싫다고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니, 곧 기나긴 겨울이 올 텐데
미친바람이 거리를 불고 갈 텐데
너는 냉장고 문을 열고 겨울을 먼저 보여주었지

-정철훈의 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랑>의 일부분



모처럼 시 한 편을 읽으니 항상 숨죽이고 지내던 우측 뇌에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부르지 않아서 그런지 차디찬 골방에서 혼자 움츠리고 있었나 보다. 여전히 몸은 차갑지만 뇌 심장이 따스하게 데워지는 느낌이다. 좌뇌가 하지 못하는 일을 우뇌가 할 시점이 되었는데 좀처럼 이 친구를 불러올 수 없었다. 그런데 시 한 편 읽었다고 자기를 스스로 데우고 있다. 몸 풀기와 스트레칭을 통해 얼었던 몸에 자극을 준다. 한참 동안 사용하지 않든 기계에 기름칠하고 구석구석 잘 닦아주고 있는 것이다. 이 친구는 기나긴 겨울을 홀로 보냈기에 알 거다. 어떻게 봄을 맞아야 하는지?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차갑다. 눈앞에 겨울은 다가오는데 땔감을 찾지 못한 가장의 죄책감일까? 보지도 않고 걱정하지도 않고 생각도 하기 싫지만 누군가 냉장고 문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차디찬 겨울이 바로 네 발 앞에 다가왔다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게 한 후, 근심이라는 삶의 묵은 때를 떼어 준다. 그 때를 붙들고 허우적거리는 것을 즐긴다. 그러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준비를 하라며 끊임없이 속삭인다. 이것은 채찍과 당근이 아니다. 소매치기 기술을 전수해주고 그런 환경이 되었으니 맘껏 기술을 펼쳐보라는 유혹이다.

"추운 겨울이지 않니, 저 빈 냉장고 속을 어떻게 할 거니? 가족들을 생각해 봐"

주어진 현실은, 봄 같은 겨울이다.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을 잊은 지 오래다. 따스한 봄날 같은 유혹으로 겨울의 한파를 잊게 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결코 벼랑 끝이 아니라 밋밋한 내리막길이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가는 삶은 즐겁다. 힘들이지 않고 휘파람 불며 걸어갈 수 있는 길이기에. 편안함과 안락함의 유혹의 손길에 쉽게 빠져든다. 그 유혹이 말한다. 힘든데 왜 글을 쓰냐고? 그 글이 밥 먹여 주냐고.

"너도 알잖아. 수많은 책들과 화려한 입담의 글쟁이들을 봐. 그들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겠어. 네 글이 조금 발전한다고 치자. 그래서 그다음은? 어쩔 건데? 차라리 다른 것을 해봐. 회사에 더 열심을 다해 승진을 하든지 다른 많은 자격증들 있잖아. 지금은 거기에 매진할 때야. 한가하게 글쟁이 흉내 낼 때가 아니야. 너 나이를 생각해 봐. 이 멍충아!"

좌뇌가 여전히 우뇌를 강하게 누르고 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현실의 문이 내 앞에서 벽을 이루고 있다. 그 벽 앞에서 좌뇌에 붙들려 있다. '내가 다 알아. 이제까지 잘 살아왔잖아. 너는 너의 길에 더 매진해야 돼. 현실의 삶을 바꾸려고 하지 마. 힘겨워. 너에게 주어진 좀 더 쉬운 길을 찾아봐. 이제까지 힘들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힘겨운 길을 또 갈거니?'

"이 세상에서 가장 열기 어려운 것은 '이미 다 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의 문이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367-

여전히 문 앞에 서성이고 있다. 예전 새만금 공사 현장에서 바다를 메운 후 설치된 두터운 철제 갑문 앞에 선 적이 있었다. 공사 마무리 기간이라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갑문을 살펴보기도 했었는데 요새와 같은 갑문을 보고 저거는 도저히 인위적으로 열 수 없는 문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문도 열고 닫을 수 있는 힘이 사람에게 있다. 이것이 현실이고 팩트다.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우뇌의 역할이 아직은 열려 있다. 뇌과학자들은 우뇌와 좌뇌는 기능적인 구분일 뿐이지 결국은 하나의 존재이니 서로 소통하며 문을 열고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현실을 바라보고 이상을 꿈꾸는 삶이, 좌뇌와 우뇌가 함께 걸어가는 길일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해 보고 싶은 길이다. 글을 통해서 얻게 되는 다양한 문이 있다는 것도 안다. 어떤 문을 열고 어떤 문 앞에서 멈추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느리지만 올곧게 뚜벅이처럼 열심히 걸어가 싶다.


넘어질 때 넘어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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