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처음이라...

by 글 쓰는 나그네


l 아빠가 처음이라...


"아이들의 성장에는 절대적으로 자기편에 서 주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스폭 박사-

나는 착각했다.

내가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옳고 그름의 잣대를 분명히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잘 훈육하며 살았다고 착각했다. 아이들의 편에 서기보다 내 편에 섰다. 아이들은 든든한 아빠의 존재를 원했지만 나는 세상의 이목이 더 중요했다. 잘못하면 혼내고 잘하면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당연한 것 가지고 뭐 그러냐며 칭찬에 인색했다. 질책과 훈육이 바르게 성장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런 나에게, 어느 누구도 아빠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아빠는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 부딪히며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부딪히면 나야 성장하는데 아이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마루타처럼 시험의 대상이 되고 만다. 특히 첫째 아이에게는...

첫째는 딸이다. 그 아이에게는 어려서부터 원칙을 정해주고 그 틀 안에서 벗어나면 회초리를 들었고 벌을 세웠다. 아이가 알아듣지도 못할 나이에 훈육하며 이것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고 정의했다.

[ 외계인과 지구인]

아내는 말한다. '다른 아빠는 딸바보라고 하는데 자기는 왜 그래?' 아빠와 딸의 관계가 외계인과 지구인의 관계처럼 멀어져 갔다. 격이 없이 가까워지고 싶어 장난을 치면 싫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는 옆에서 또 말한다. '참 어울릴 줄 모른다고' 친한 오빠는 되지 못하더라도 삼촌은 되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하버드 인생특강>에서 마이클 샌덜 교수는 말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이러저러한 약점을 모두 보완하고 개선해야 좋은 아이 혹은 착한 학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배웠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런 교육 탓에 어느새 '나의 약점 찾기 전문가'가 되어 약점을 찾는데 일생을 허비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약점찾기 전문가, 아빠...

그렇다. 나는 아이들의 구석구석 약점을 잘 찾는 전문가였다. 독수리의 매서운 눈매로 찾아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채고 뾰족한 부리로 쪼아댔다. 아픈 곳만 골라서 집중 공략하는 기술은 월드클래스급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몰랐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약점을 찾는 이유였다. 이유를 모르고 약점을 찾아 고치려고만 했다. 약한 곳을 알았으면 정확한 문진을 통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데, 처방도 하기 전에 수술대에 눕혔다. 수술동의서도 받지 않고 강제로 메스를 갖다 댔다. 그러니 수술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새에게 수영을 시키고 물고기에게 날기를 바라는 것이 과연 바른 것일까? 그 바르지 않은 길을 인도했다. 강점을 발견하고 밀어주기보다는 약점을 보완하도록 다그쳤다.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길을 찾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데, 그 길을 큰 돌로 막고 있다. 돌에게도 두 가지의 역할이 있다. 하나는 디딤돌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걸림돌의 역할이다. 그러면 나는 디딤돌일까? 걸림돌일까? '나를 지르밟고 가소서'가 아니라 자신 있으면 내가 막고 있는 벽을 넘어봐. 못 넘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해. 알지! 어느새 아이들에게 넘고 싶지 않은 벽이 되어 있었다. 그 벽 앞에 서성이다 외면한다.

[ 엄마의 무릎 ]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학교는 엄마의 무릎학교라는데... 엄마의 무릎은 없고 아빠의 잔소리만 교가처럼 흘러넘쳤다. 막막한 마음, 답답한 가슴을 풀 곳은 친구밖에 없다. 그 친구들의 삶을 바라보며 비교하게 된다. 가장 나쁜 배움은 비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게 만드는 과정이 되었다. 아빠는 아이들을 비교하고, 아이는 아빠들을 비교하고... 비교해서 얻는 것은 서러움, 불만, 못남, 미움, 절망 등 입 밖으로 내뱉지 말아야 할 말들 뿐이다.

아빠가 처음이듯, 아이들에게도 아빠는 처음이다. 자기편이 되어 주는 것, 생각하기에 따라 어렵지 않다. 말 한마디, 공감의 끄떡임 정도만으로도 필요충분조건은 된다. 단, 그 조건을 완성하려면 친근한 스킨십이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베여야지. 청소년기를 지나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주위 사람들과 나를 보면 알게 된다.

"내 편"

살면서 절대적인 내 편이 있었나? 내가 살면서 무슨 짓을 하던 믿고 신뢰하고 지켜주던 존재는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무릎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신, '내 어머니' 단 한 분인 것 같다. 그런 어머니를 두고서도 변종인가 보다. 어머니의 무릎학교에서 충분히 배웠는데 그 무릎을 잊고 살았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어머니가 베푸신 그 무릎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련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전해주리라. 나에게는 엄마의 무릎이 있었다면, 너희들에게는 아빠의 가슴이 있다고. 뜨겁고 따스한 가슴, 제대로 보여주고 싶구나.

그 가슴속으로 들어오지 않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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