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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Mar 07. 2020

토욜 아침 산책


토욜...
모처럼 자는 아들을 깨웠다.


"아들 산에 가자!"
"..."
여전히 말이 없다. 물었으면 대꾸를 해야지, 이 녀석의 대답을 들으려면 한 세월이다.

"아들, 산에 가자니까?"
"(게슴츠레 눈 뜨며) 어디요?"
"아파트 뒷산, 큰숲산에"
"귀찮은데... 다리가 아파요"
"야! 바람도 쐬고 해야 하루가 깔끔하게 시작되지... 가자!"

가끔은 애걸복걸하며 설득한다. 내가 뭐가 그리 아쉽다고 아들에게 이래야 하나라는 생각도 하지만 그래도 같이 가고 싶은 걸 어떡하나.

[반려견 '여름씨' ]

반려견 '여름씨'랑 함께 가기도 하는데, 지난주에 뒷산에 데려갔다 아내에게 혼났다. 산책 갔다 온 후 여름씨가 무척 피곤했나 보다. 지쳐 쓰러져 미동도 않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내에게 힘들게 데리고 다니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다. 그래서 대상을 아들로 바꿨다.

다시 한번, 세 번 째만에 아들이 넘어왔다. 10분만 있다가 가잖다. 항상 "네"라는 답변은 없다. 10분, 20분 뒤에 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마 나 때도 저랬을 것 같다. 그래도 모처럼 아들과의 산책이다.


[ 앞서가는 아들 ]


산행 길...


바닥은 언 뒤에 살짝 녹아서 질퍽거리는 구간도 있지만 대체로 적당히 딱딱한 상태로 걷기에는 편하다. 모두 겨울잠을 자듯 푸른 빛깔을 감추고 숨죽이며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상록 침엽수의 대표 격인 소나무의 변하지 않는 초록의 물결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세상 모두가 시들시들해졌지만 나를 보고 기다리고 기대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코로나 19 사태로 세상은 떠들썩하지만 자연 속에 묻혀 있으면 그저 한 시즌의 겨울일 뿐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힘겨워도 견디면 더 단단해진다는 교훈을 산이 주고 있다.


[ 새 봄을 준비하는, 농부의 일손 ]
농부는 봄을 맞이한다...


벌써 밭갈이를 시작했다. 3월이니 새로운 새싹이 움트도록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저 멀리에 보이는 트랙터의 움직임에 눈길이 쏠린다. '이 넓은 밭을 너는 혼자서도 잘 감당하고 있구나.' 사람이 기계를 대신하지는 못하지만,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 이름 모를, 무덤 ]

이곳에 오면 곳곳에 작은 무덤이 즐비하다. 앞쪽은 아파트를 필두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간산업들이 즐비한데 뒤쪽으로는 이렇게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듯,


이곳도 생활의 터전과 죽음의 터전이 함께 공존한다.
[ 나름, 멋있는 아들?]

트랙터 앞에서 한 포즈 잡았다. 자기는 사진 찍을 때 "V" 안 한다고 하더니, 쌍칼이 아니라 양손을 들고 브이 표시한다. 잘 어울린다. 미래의 각광받는 직업이 농부라고 말하며, 농고나 농대를 갈까요? 라며 묻는다.

그래 네가 원한다면. 난 언제나 ok다.


[ 쓰러져가는 초소]
쓸모없음

이 초소는 언제쯤 지어졌을까? 지금은 유명무실한 존재로 폐가처럼 허물어져가고 있지만, 예전엔 도시를 방어하는 충실한 지킴이였을 것이다. '쓸모없음'의 존재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외부도 그렇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썩고 문 들어진 나무 바닥이 공허한 외로움의 마음만 불러일으킨다.



[놈촌과 도시]
도시와 농촌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농촌과 도시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길 건너 매연과 더불어 사는 도시의 풍경이, 또 길 너 편에서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고향 같은 시골집 풍경이 그려진다. 둘이 함께 공존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도 좋겠다.


워라벨처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으련만, 이 공존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 언제나 도시의 기계화된 삶에 밀리게 마련이다.


[ 급속한 도시화 ]
나무는 뽑히고, 언덕은 무너지고,
흙은 콘크리트 바닥으로 채워진다.


지금 보는 이 사진도, 얼마 후면 건물들로 시야를 가리게 될 것이다. 세우는데만 너무 급급한 것은 아닌지. 가꾸고 지키는 것에 너무 인색하다. 그런 삶과 세상이 싫어진다. 산책을 하며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더 많이 쌓인다. 케케묵은 도시에 대한 동경에서 자연으로의 회귀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 다시 도시로, 산책은 끝났다 ]
다시, 도시로...


결국, 아들과 돌고 돌아 도시로 되돌아왔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함께 걸으며 세상 이야기, 정치 이야기, 학교 이야기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배웠다. 무엇보다도 함께 땀 흘리며 같이 호흡하고 걷는 과정에서 아들과 아빠의 정은 더 찐해졌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지만, 변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남다르다. 우물 안에 갇혀 세상의 변화를 갈망하는 것보다, 작은 뒷산이지만 자연이 세상에 물들어가는 현실의 아픔을 함께 보고 함께 가슴속에 담는 시간이었다.

아직도 발에는 흙내음이 묻어있다. 샤워하고 씻었지만 자연이 준 향기는 씻는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인공의 아름다움은 헛되고 헛된 것이지만, 투박한 자연은 빛내지 않으려고 해도 스스로 빛나는 존재임을, 그리고 그 향기를 기억하는 오늘이 되어서 좋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아빠와 아들이 함께,
자연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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