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에 지쳤다. 내 안에서 들끓는 자유를 향한 외침을 외면하기 힘들다. 그래서 닫혀 있던 일상의 문틈에 작은 걸쇠를 걸었다. 이제 문틈이 열려 있는 세상을 향해 걸어가려 한다. '다시', '시작'이라는 단어에 힘이 들어간다. 답답함에서 벗어나 활력을 찾는 것이 무엇일까? 내 안에서 말하는 자유는 뭘까? 다양한 책을 읽다 김정운 교수의 책에 머물렸다. 그의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서 남자들이 캠핑을 가는 이유는, 사라져 가는 불꽃을 태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캠핑, 다시 불을 댕기고 싶다. 50년의 시간 속에 나를 위해 불꽃을 태운적이 있었던가? 그저 세상이 정해준 길을 향해 뚜벅이의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그 뚜벅이의 궤적을 이탈해 보고 싶어 졌다. 우리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살고 싶어 졌다.
몇 년 전부터 글램핑을 하고 있다. 시설과 장비가 모두 갖춰져 있어 편리하게 즐겼지만 어딘지 자유롭지 못했다. 장소와 시간의 제약이 구속이 되었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차박'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집시맨 프로그램을 통해 자유로운 여행에 부러운 시선을 보냈는데, 캠핑카는 아니지만 차박으로 충분히 일탈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머물렸다. 이런 생각을 아내에게 살짝 흘리니, 아내는 분명하게 말한다. 차에서 자기 싫다고. 몇 년 전 일출을 보겠다며 차에서 자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다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 기억의 트라우마에 아내는 여전히 갇혀 있다.
난, 멈출 수 없다. 며칠 동안 차박 여행기를 살펴봤다. '이제는 그만 머물고 떠나라'는 외침이 내 안에서 샘솟는다. 카페와 블로그 그림들이 이미지로 연상되며, 가슴이 뛴다. 상쾌한 바람 소리와 따뜻한 햇살의 터치에 설렌다.머뭇거리던 내게 바람과 햇살이 손짓한다. 그 손에 이끌려 이것저것 클릭질을 했다. 가슴보다 손이 더 원했나 보다. 아들과 함께 가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넌지시 물어봤더니 좋다고 한다. 차박에 대한 환상과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 더 좋아한다. 여러 곳을 검색하다 조용한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아들과 이것저것 챙기고 출발. 생각보다 짐이 많다. 심플한 캠핑을 구상했지만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그리고 음악도 들어야겠고 영화도 봐야겠고... 일상의 잡스러움까지 싸 짊어지고 갔다. 홀가분하게 떠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l 드뎌 캠핑장에 도착했다 l
맑디 맑은 금강이 주변을 둘러 감싸며 흐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듯한 자세로 적절한 경계를 유지한다. 적당한 장소를 찾다 맨 끝에 자리 잡았다. 맨 먼저 한 일은 새로 산 터널형 타프를 설치하는 일이다. 터널형이라 폴대를 조립해 타프랑 연결하는 순간 바람이 불어 넘어지고 쓰러졌다. 바람에 밀려 어쩔 줄 모르는 아들을 보며 난감했다. 끈을 묶었다가 풀고 바닥에 펙을 박았다가 다시 뽑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지형지물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주차된 차량의 방향을 바꿨다. 차는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지만 타프를 고정시켜 주는 역할도 가능하다. 앞뒤 휠에 단단히 묶어 고정시키고 앞쪽은 주변 나무와 연결했다. 이제야 어느 정도 구색을 갖췄다.
실내 텐트를 치고 릴랙스 체어와 빌려 온 테이블 그리고 화로를 세팅했다. 준비해 온 숯불 위에 고기를 굽고 된장찌개와 햇반이 어우러진 근사한 식사로 저녁을 마무리했다. 식사 후 마른 장작으로 조촐한 캠프파이어를 통해 부자의 정도 나눴다. 불만 봐도 무서워하던 아들이 이제는 장작불 붙이는데 재미가 붙었다. 조용히 자신을 태우며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멍'에 빠져들며 그냥 무덤덤하게 젖어 있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밤 10시를 지나 아들이 벌떡 일어서며 말한다. "아빠, 저기 산 너머 봐요" 눈을 돌리다 산에 걸쳐 있는 달이 들어왔다. 해가 뜨는 모습보다, 달이 저렇게 산 너머 걸쳐 넘어오는 모습이 더 장관이다. 그냥 보면 달 인지? 해 인지? 구분이 안된다. 그러고 보면 어둠을 밝혀주는 몫은 똑같다. 다만 그 세기를 통해 화려함과 은은한 조명의 차이일 뿐이다.
차박의 묘미는 아늑한 공간에서의 취침이다. 아들과 둘만 이렇게 붙어 자는 모습도 괜찮다. 이제는 함께 자기보다 혼자 자려고 한다. 강제로 붙들고 잘 수는 없는데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살과 살을 부딪히며 자야 한다. 나이 드니 이런 부자간의 정이 그립다. 물을 데운 생수 페트병 하나씩 배 위에 올려놓았다. 온몸으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오늘 밤은 어느 누구보다 더 따뜻한 밤이다.
ㅣ첫 차박 도전 이후ㅣ
한 달 사이에 세 번을 더 다녀왔다. 두 번째는 대학생 딸과, 세 번째는 아내와 반려견과 함께 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상상 속에 머물던 '솔박'으로 마무리지었다. 매번 장소는 달랐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나만의 도전이 시작된다. 문틈 사이에 살짝 끼운 걸쇠를 통해 미지의 세상과 소통하다, 답답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우리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나 다운 삶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우리는 똑같은 문으로 들어왔다 똑같은 문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출구가 없다고 두려워말자. 내가 들어온 곳이 바로 출구이다. 그 출구를 통해 나답게 살아갈 도전은 이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