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가리라

by 글 쓰는 나그네


l 얼마 전 차박을 다녀왔다 l


생애 첫 차박은 아들과, 두 번째는 딸과 그리고 세 번째는 아내와 함께 했다. 처음 시도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카페와 블로그 서핑도 열심히 하고 필요한 물품도 이것저것 구매했다. 하지만 막상 떠나려니 불안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배운 것은 생각만 하고 있으면 그 생각 속에 머물려 있지만 몸으로 실행하면 꼬여 있던 매듭의 실타래가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사실이다. 차박도 실타래 풀기와 비슷했다. 머릿속에서만 머무려면 다양한 잡념과 걱정에 사로 잡히지만 떠나면 알아서 정리가 된다. 부딪히면 해결할 방법을 찾게 되고 그런 능력과 솔류션이 내 안에 감춰져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다.


[ 천리포항 - with wife ]


l 부당하면 따져라


그러고 보면 이제까지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모방하며 살아왔다. 스스로가 결정하지만 진정 내 방식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기보다는 주변 여건에 이끌려 결정하는 수동적인 방식이었다. 행동이 수동적이었고 사고(생각)도 수렴적 사고(Convergent thinking)의 범주에 머물렸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는 경험의 범주 안에 갇혀 있었다. 상상력의 발현은 이상일뿐 실천하는 도전은 없었다.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는 것이 단지 몸뿐이겠는가? 상상력도 점점 퇴화한다. 과거를 계속 답습하며 그 안에 머물고 싶은 것이 어쩌면 나이 들어간다는 증표일 것이다. 수렴적이 아니라 확산적 사고를 가지지 못한다면 생각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사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 될 뿐이다. 내 방식이 아니라 누군가 정해 준 기준에 의해 최적화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될 뿐이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가리라. 누가 가장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참다운 인간은 집단이 강요하는 대로 살지 않는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 불복종』

나는 세상에 길들여지며 살아왔다. 세상이 정해 준 선에 순응하며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걸어라면 걸었고 뛰라면 뛰는 노력은 했다. 적당한 요령을 부리는 방법도 배웠고 그 요령이 삶의 기술이 되어 더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 안락함의 미혹에 빠지게 되면 내 방식이 아닌 세상의 방식에 순응하며 살게 된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학교 수업이 인터넷 강의 위주로 진행되다 이제는 대면 수업 단계로 접어들었다. 딸은 대면 수업을 시작한다며 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분간 A, B반으로 나뉘어 수업이 진행된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특정 한 과목만 혼자 A반으로 편성되었다며 부당하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불평은 하는데 그것을 개선해 볼 의지는 없고 순응하려는 모습만 보였다. 어쩔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듣고 지켜보다 한 마디 했다.


"딸,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하니?"
"뭘 어떻게 해요?"
"아빠가 봐도 너 혼자만 그것도 한 과목만 A반으로 편성된 것은 불합리하네. 학과에서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다른 친구들처럼 B반으로 전과목 편성이 가능할 것 같은데. 문제가 있는데 얘기해 봤어?"
"어디에다 얘기해요?"
"당연히 학과 사무실에 전화하면 누군가 받겠지. 거기에 부당함을 이야기해야지. 불만을 가지면서 왜 순종하려고 하니? 문제가 있다면 따질 줄도 알아야지! 따질 줄 모르고 모든 것에 순응하다 보면 세상 살기 더 힘들어져."
"......"



l 혁명가가 돼라 l


가장 분노하고 비판하며 관습의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시기가 청춘이다. 정의라는 청춘의 꽃을 피워야 할 나이에 세상에 순응하는 법부터 배운 듯해서 아쉬움이 컸다. 부당함과 비논리적인 행위가 이어질 때 앞뒤 재지 말고 따질 수 있는 용기는 청춘에게 부여된 특권이다. 실수해도 실패해도 보호해 줄 그늘막이 아직 그들에게는 있다. 잘못 판단했으면 시원하게 욕 한 번 먹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리셋 기능이 역설적이지만 더 필요한 덕목일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세상에 순응하며 살지 마라"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는 부제로 "어떻게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달았다. 평균적 생각에서 벗어나 개개인성, 즉 독창성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청춘은 혁명가의 피가 들끓는 시기이다. 바꾸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청춘이 아니다. 규율과 관습의 틀 안에 들어서기만을 바란다면 벌써 사회 적응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혁명가가 돼라. 현실에 순응하기보다는 현실을 넘어설 방법과 실천을 하라.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기다린다고 버스를 탈 수 없다. 내가 버스를 타려는 의지가 필요하고 최소한의 버스비를 낼 능력도 필요하다. 혁명은 준비하는 자, 흔드는 자,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자에게 돌아온다. 그래야 그 버스를 붙잡을 수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있고, 내가 돌아가는 방식이 있다. 이제는 내 방식을 찾고 그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 한자로 순응(順應)이란 단어를 찾아봤다. 순할 순, 응할 응. 환경이나 변화에 적응하여 익숙하여지거나 체계, 명령 따위에 적응하며 따른다는 의미로 적혀 있다.


'매뉴얼에 따르라' '지시한 대로 이행해라' '선생님 말 잘 들어라'... 지시나 명령 체계의 삶 속에서 살아왔음을 순응이란 단어 하나에서 깨닫게 된다. 이런 문화가 군부독재의 잔재일 수도 있고 일본 식민 문화의 폐해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간다면 유교 사상에 뿌리 박힌 예의범절일 수도 있다. 공경과 존경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순응에는 나란 존재의 의미가 퇴색하고 만다.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지만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의 방식이다.



l 우리 답게가 아니라, 나 답게 살자! l


어느 누구도 아닌, 내 방식이 필요하다. 여행을 가더라도 잘 차려진 호텔이나 펜션이 아니라 내가 가장 원하고 즐길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여행이 아닌 나만의 여행이 필요하다. 나만의 삶이 필요하다. 힘들고 준비해야 될 것이 많아도 내가 원하는 여행의 목적을 이룬다면 차박이어도 캠핑이어도 상관없다. 그게 어느 누구의 방식이 아니라, 내 방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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