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지리산 여행길(셋째 날, 마지막 날)

둘레길 8코스(운리에서 덕산)

by 글 쓰는 나그네

새들의 재잘거림과 끊임없이 흐르며 장난치는 계곡의 아우성에 못 이겨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옆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뭇한 아빠 미소가 머문다. 이른 아침 창문 사이로 비추인 햇살이 신선한 향기가 되어 다가왔다.

[민박집 앞 마당 풍경]

방문을 열어젖히고 맞이 한 앞마당엔 새벽이슬을 머금고 깔끔하게 새 단장한 풀들과 돌들이 미소로 맞이한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저녁에 본 풍경이 아니다. 저녁이 다르고 아침이 다름이 "해마다 꽃은 그 꽃이건만 사람은 해마다 그 사람이 아니네!"라는 옛 선인의 말씀이 생각나게 만든다. 아마도 풍경은 똑같은 풍경이지만, 내 속 사람이 달라지나 보다.

[민박집에서 바라 본 마을 풍경]

희뿌연 안개들 사이로 지리산 골짜기의 풍경이 잡힌다. 수풀과 나무가 풍성하게 어우러지고 계곡 물소리가 중후한 테너의 울림으로 마음을 흔든다.


"내가 이 곳에서 잤구나!"

라는 짧은 탄식으로 전날의 피로가 말끔히 씻기어졌다. 아침 공기의 신선함과 새벽을 깨우는 맑디 맑은 새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풍부한 성량의 계곡 소리가 더해져 중후한 울림이 있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느낌이다.

나는 이 곳에서,
관객일까?
연주자일까?
아니면 오케스트라 지휘자일까?

어떤 모습으로 있던 이 곳에 있는 것만으로, 한편의 드라마가 되고 시가 되고 가슴을 여미는 노래로 추억될 듯하다. 매일 아침이 이런 느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지만, 일상이 된다면 드라마나 시 그리고 노래로 추억되지는 못 할 것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지금은 너무 좋은 걸!


아들도 아침 일찍 일어났다. 이제는 자기 나름대로의 생활철학이 있는 것만 같다. 아빠와 단 둘이 있는 공간이고 집이 아니어서 그런지 자기 할 일은 척척 해 낸다. 씻고 짐 정리하고 민박집 어르신들께 인사도 꼬박꼬박 잘하고, 인사 잘 한다는 칭찬에 내가 더 흐뭇해졌다.


민박집 어르신께서 차려주신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동그란 밥상에 투박하게 놓인 반찬과 따스한 국 그리고 놋그릇에 담긴 풍성한 밥) 길을 나섰다. 오늘은 8코스를 돌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골버스라 집으로 가는 최단거리를 찾기가 힘들었다. 별다른 정보들이 없어서 민박집 어르신들께 묻다 보니 갈 길이 쉽게 정리가 되었다.


시간이 없을 듯해서, 민박집 어르신께 8코스 시작점인 '운리'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시골 길의 풍미를 구경시켜 주시려고 천천히 운전하시며 웅석봉이 백두대간의 출발점임을 설명해 주셨다. 지리산 웅석봉과 둘레길 7코스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드시어 유튜브에 직접 올려놓으신 영상도 보여 주셨다. 지리산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느낌이 짧은 시간 긴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8코스 소개 이정표]

운리를 지나 오르막을 조금 오른 후, 잠깐의 휴식공간에 게시되어 있는 8코스 이정표가 반가워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조식 선생이 후학 양성을 한 곳이라는 산천재가 있다고 한다. 오르고 오르다 산천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쳤지만 조용하게 자신을 갈고닦아 세상으로 나아가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배우기에는 너무 좋을 듯하다.

[방향을 표시해주며 반기는 것만 같다]

길을 걷다 보면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의미를 찾게 된다. 반갑게 맞이하는 듯해서 악수라도 하고 가고 싶어 졌다. 살짝 손을 갖다 대며 살가운 정을 느끼고 다시 걸었다. 8코스는 걷기에 무지 좋다. 아스팔트 길, 돌밭 길, 흙 길이 잘 어우러져 있어 걷는 길이 즐거워진다는 점이다. 힘겨워질 때면 조금씩 자연이 변화를 준다. 그 변화가 새로움이 되어 새 힘을 얻게 만드는 것만 같다.


걷고 걷다.... 드디어 백운계곡을 만났다.

[백운계곡]

아무도 없는 이 곳, 아들과 나뿐이다. 땀에 절은 배낭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계곡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발만 담갔을 뿐인데 온 몸이 시원해졌다. 고생한 발이 엄청난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아들은 오르고 내리고 물장구치고 마냥 좋아라 한다.

"그래 너는 그런 권리를 누릴만하다!"라는 생각에 마음껏 놀게 자유를 줬다.

이런 곳에 오면 발은 계곡 속에서 놀고 등은 바위에 기대어 눕고 눈은 하늘을 보며 무아지경의 세상으로 빠져들고 싶어 진다. 아무도 없, 웅장한 계곡 속 폭포와 우리 둘만의 세상이 아닌가! "부어라. 마셔라!"가 아니라 "담그고 누워라. 그리고 느껴라!"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


1시간의 시간이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더 쉬고 더 보고 더 느끼고 싶었지만, 가야 할 길이 있기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양말을 신고 배낭을 짊어졌다. 백운계곡아 안녕!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는 석별의 정을 잠깐 나누며 마근담을 지나 덕산을 향해 다시 걸었다.


오르고 올랐으니 이제는 내려가는만 남았다. 하산 길도 굽이치는 계곡과 동행하게 되니 아스팔트 길이라도 정겨움이 넘친다. 특히 아들과 두런두런 얘기 꽃을 피우며 함께 걷는 길이 즐겁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2박 3일 정든 길에 대한 아쉬움으로 발걸음을 붙잡는 듯하다.

[시골틱한 버스표]

버스정류장 옆 동네슈퍼에서 버스시간을 물었다. 그랬더니 승차권을 끊어 주신다. 노란색 종이에 촌스러운 글자체 그리고 새빨간 할인 표시와 함께 새마을 지도자 30% 할인까지... 자세히 보면 있을 건 다 있다.


시골버스를 시작으로 다섯 번을 갈아타고 저녁 7시경 집에 도착했다. 버스도 한 번에 가는 직행보다 여러 번 갈아타는 완행이 여행의 묘미가 더 있는 것 같다. 모처럼 보는 아내가 너무 이뻐 보였고 시간 맞춰 준비해 놓은 맛있는 저녁식사에 여행의 여독이 풀리는 기분이다.


2박 3일 아들과 함께 한 여행에서 여러 에피소드를 간직하게 되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함께 묵묵히 동행하며 나눈 정이 더 깊은 부자관계를 유지해 줄 버팀목이 될 것이라 확신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들 지금처럼 멋있고 든든하게 자라다오! 아빠를 넘어서 세상을 호령해 나가는 아들이 되기를 바래본단다.


"사랑한다! 아들!"


https://brunch.co.kr/@no1press/79 (출발하며)

https://brunch.co.kr/@no1press/80 (첫째 날)

https://brunch.co.kr/@no1press/81 (둘째 날)

https://brunch.co.kr/@no1press/83 (셋째 날-2박3일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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