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별건가? 그리는 대로 써지는 대로 사는 거지!
백혈병 단상 (56 번째)
56. 심심하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면, 캘리그래피 펜으로 긁적인다. 빈 공간에 곡선의 아름다움과 직선의 깔끔함을 덧입힐 때면, 다른 감정은 사치다. 뜨거운 가슴도 차가운 마음도 까만색 펜 끝에 매달린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 잃은 철새 무리를 이끄는 대장 새가 인도하듯, 펜 끝이 나를 이끈다. 인도하는 대로 흘려가는 대로 날갯짓만 하면 될 뿐. 생각도 감정도 욕심이다. 그냥 이끄는 대로 몸만 내 맡기고 싶을 뿐이다. 잘 써지면 기뻐하고 마음에 안 들면 아쉬움의 탄식만 내뱉으면 된다.
일을 찾아서 하기보단 맡겨지고 주어진 일만 하고 싶다. 스트레스에 건강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몸부림은 정답이 없는 삶에 정해진 답을 찾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래서 캘리 펜을 붙잡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길이던 원하는 대로 걸을 수 있으니. 초보라 표현이 서툴지만, 그냥 긁적이면 글이 되고 그림이 된다. 부족함은 부족한 대로 다시 쓰고 다시 그리면 될 뿐.
삶이 뭐 별건가? 그리는대로 써지는 대로 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