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백혈병 단상 (62 번째)

by 글 쓰는 나그네

40세가 넘어, 국가에서 시행하는 암 검진 대상이다. 검진 항목은 매년 변경되는데, 올해는 간암과 위암 그리고 대장은 분변잠혈검사가 해당된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한 지 오래되어 이번에는 함께 검진받고 싶어 추가 금액까지 직접 확인했지만 여전히 망설여졌다. 예약 가능 여부만 확인하고 대장내시경은 추후에 받기로 했다.


병원 검진은 항상 떨린다. 엄숙한 분위기에 주눅이 든다고 해야 하나. 죄짓고 여기저기 끌려가듯 마음이 편치 않다. 치과, 안과, 혈액검사, 초음파 그리고 위내시경 순서로 돌았다. 그런데 초음파에서 이상소견을 발견했다며 의사가 묻는다.


"이전에 초음파 검사 시 뭐라고 하지 않던가요?"

"올 4월엔가 받을 때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요"

"위 뒤쪽에 위치해서 잘 보이지는 않는데, 췌장 꼬리 부분에 물혹 같은 게 보입니다. 당장 소화기 내과 검진 의뢰할 테니 CT 촬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년부터 5개월간 병원 생활하며 초음파는 여러 번 확인했는데 이런 이야기는 없었다. 췌장이라는 말에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암이라면 생존확률이 지극히 낮고 다른 장기에 전이가 잘 되는 부위로 알고 있다. 대부분 인지를 못하기에 발견되면 암 3, 4기 정도여서 치료하기가 힘든 질병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후, 위내시경은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수면내시경 이후라 다소 흐릿한 상태에서 소화기 내과 의사 면담을 했고 CT 촬영은 오후 3시 40분으로 잡혔다. 어제저녁부터 거의 하루를 굶었지만 배고픔은 잊은지 오래다.


집에 와서 CT 촬영 대기 전까지 지옥 같은 시간이 흘렸다. 백혈병에다 만약에 '췌장암'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음 주 월요일은 1년 2개월 만에 복직인데 회사는? 가족은? 그리고 병원은 또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내 삶은 끝내 여기까지인가?


췌장 물혹에 대한 내용을 여기저기 뒤지다 나 혼자는 감당이 안되어, 아내에게 얘기하고 함께 가자고 했다. 지난번처럼 혼자 의사 말을 들을 용기도, 다시 전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목사님께 전화해서 내용 설명과 기도 부탁을 한 이후, 마음을 가다듬어 보았지만 정리가 안된다. 아내가 얘기했나보다. 아이들도 내 앞에서 얘기하진 못하고 카톡으로 괜찮을 거라며 아빠에게 힘내라며 위로를 한다. 집을 나서기 전, 리갈 메모지에 짧은 기도문을 작성했다.



주님 도와주소서!

저는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이제까지도 너무 힘들었는데 더 이상의 고통의 시간은 안됩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장의 역할을 못하고 가족에게 짐이 되었습니다.

이제 복직해서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하려 하는데 심한 돌부리가 제 발을 걸고 있습니다.

조금 있다 췌장 관련 복부 CT 검사를 시작합니다.

위 내시경 검사에서 큰 문제가 없었듯이 복부 CT 검사에서도 문제 발견되지 않기를 정말 소원합니다.


가장으로 일하고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제게 시간과 기회를 허락하여 주소서. 간절히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 아멘 -


CT 촬영 후 의사 면담을 기다리는 시간이 왜 그리 떨리던지. 의사 앞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이럴 때면 교칙을 위반한 학생이 교사의 처분을 기다리듯 의사의 입만 바라보게 된다. 사진을 보며 췌장의 위치와 생김새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멍들듯 까만 부위를 체크하며 1.8cm 정도 된다고 한다.

"사이즈가 큰 가요?"

"작지는 않은 사이즈입니다."

"장액성 낭종, 점액성 낭종 등이 있다고 하던데... 저는 뭐죠?"

CT 소견까지 확인한 후,

"장액성, 점액성도 아니라 일반 낭종입니다."

"그게 뭐죠? 인터넷에서는 그런 거는 없던데"

"피부에 뾰두라지 생기듯 췌장 꼬리 부분에 생긴 것인데 악성으로 변할 확률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다행입니다. 6개월 뒤에 다시 확인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연속으로 나왔다. 의사도 백혈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기에 충분히 마음고생했음을 이해한다며 다행이라고 말했다. 의사 면담을 끝낸 후 대기실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짧게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는 유난히 길고 깊었다. 마음이 허물어지지 않고 육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심에 감사드리게 된다. 벌써 생명을 여러 개 얻은 것 같다.


주신 생명 소중하게 잘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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