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기세요

(오늘은, 193 번째 이야기)

by 글 쓰는 나그네
내 것 같지만 내 것 같지 않은 것이
삶이고 인생입니다.

가지려고 하면 멀어지고 필요할 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언제나 주변에 존재하지만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내 것과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의 경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욕심"일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순수함으로 찾게 된다면 소유가 아니라 공유의 의미가 강해지겠지만, 내 것이라는 단정적인 모양새로 소유만 하려면 가졌지만 가지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과하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잃는다", "욕심이 사람을 죽인다"라는 속담을 통해서도 과유불급에 대한 옛 선인들의 지혜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내 것을 만드는 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에서 찾아야 될 듯합니다!

[ 오늘 하루 즐거우신가요? 따스한 인사 한 마디가 세상을 평온하게 만든답니다! ]


나를 이기세요~

오늘은 불세출의 영웅이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탄생한 날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셔서 모진 고난과 고초를 당하셨지만 그 힘겨움이 영원히 기억될 존경으로 사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장군은 자신을 이기신 분입니다. 스스로와의 타협점이 무수히 많았겠지만 그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성과와 함께 존경할 만한 인품에 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과정에서 내 맘 같지 않은 일들이 무수히 많이 벌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이끌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협의하고 타협해 나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타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함'이라는 뜻입니다. 양보라는 좋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협의라는 과정엔 결코 손해보지 않으려는 속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올바르지 않은 길로 한 발짝, 진보도 없이 후퇴하는 길로 한 발짝씩 움직여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에 현실적인 정치라는 것이 개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타협 이후엔 그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타협의 의미를 이해시키는 것이기고 하고 본인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아무나 만족할 수는 없기에 스스로의 살아갈 길, 빠져나갈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인 것을 알기에 세상과의 타협은 양보라는 미덕의 이름으로 희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의 타협은 필히 경계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꽁꽁 묶여 있던 봉인된 죄의 상자를 여는 열쇠가 자신과의 타협이기 때문입니다. 그 상자가 열리면 다시 닫을 수는 없습니다. 작은 죄의 상자가 큰 죄의 상자가 되고 합리가 불합리가 되고 정의가 부정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스스로에게 강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유혹하는 자신과의 타협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힘겨워도 타협의 유혹은 잠시입니다. 그 잠깐의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다면 스스로가 강해졌다고 의식하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삶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견디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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