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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Jun 25. 2016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지음-

모처럼 마음에 드는 책을 집어 들었다. 좋은 책과의 만남은 좋은 벗을 만난 것처럼 들뜨고 설렘을 갖게 만든다. 아마도 최근 책 읽기의 슬럼프에서 건져 내 줄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좀 표현이 과하다.


책문은 과거시험 중 소과를 통과하고 고급 관리를 뽑는 대과에 뽑힌 선비들이 왕 앞에서 치르는 최종 시험이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스승 노릇 할 수 있다"는 공자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지나간 역사와 현재의 정치, 문화, 제도, 인사, 치안, 국방, 외교, 교육 등 사회가 마주하는 온갖 현안을 망라해서 젊은 지식인들의 거침없는 대책을 듣고 싶어 하는 목적으로 치러졌다.

"책문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사회 모순과 부조리는 대부분 이익의 편중과 기득권의 공고한 보수화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사회 현안의 해결책은, 실은 이익의 분산, 기득권의 해체나 약화일 수밖에 없다. 이익의 정점은 결국 고급관료와 궁극적으로 왕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왕과 외척, 권력집단의 이익 카르텔을 해체하거나 약하게 만들어야 사회 모순이 그나마 누그러질 것이다. 그리하여 책문은 내가 국가를 경륜할 때 천리와 인욕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나의 인욕을 누르고 천리를 보존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다지는 선서이다"  - 15 -

천리(天理)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처럼 자연의 질서에 따른 보편적 삶의 욕구를 가리킨다. 이와 반대로 인욕(人慾)은 남들보다 더 잘 먹고 남들보다 더 편하게 살고 싶은 개인의 사적 욕망을 가리킨다.  성리학에서는 왕이나 지주, 고급관료가 개인의 사적 욕망과 이익을 추구하면 반드시 전체 인민의 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막으라고 가르친다.


책문은 인재 등용의 방식중 하나이지만 깊이 있는 통찰력과 혜안을 들을 수 있는 열린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왕이 직접 현안의 문제점들에 대해 질문하고 젊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생각들을 펼치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보다도 더 진일보한 측면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대화의 채널과 방식도 다양해졌지만, 들어야 하는 사람들의 경청의 자세가 문제가 되는 시대이다. 아래 신숙주의 책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말을 하게 하고서는 절실한 말을 두려워하고 강직한 말을 싫어한다면 어찌 거리낌 없이 언로를 연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선비들이 날로 교묘하게 속이는 데로 다투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49-

위정자들에게 피와 살이 되는 말들은 절실하고 강직한 말들이지만, 이런 것들은 보기에 추하고 입에 쓴 약재들 뿐이다. 가까이 두려니 듣기 싫고 부담스럽고, 멀리하려니 군자의 삶이 아닌 소인배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또한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소인배의 삶을 살게 되면 눈앞의 잘못된 것만 경계하다가 뒷날의 환란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우(愚)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교화(敎化)라는 단어가 무지 많이 나온다. 사전을 찾아보니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뜻이다. 옛 선인들은 교화에 앞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이 먼저라고 생각한 것 같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것이 올바른 정치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세상을 꿈꾸려면 자신을 먼저 다스리는 덕을 갖추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고 더 가치 있는 일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아는 것이 선비이다!

"정치와 교육은 유가의 지식인들에게 내려진 지상 과제이다. 그래서 유가의 지식인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나아가서 정치를 행하고 시기가 적당하지 않으면 물러나 교육을 했다. 정치는 일시적인 교화이고 교육은 오랜 세월에 적용되는 정치이다. 정치란 현재에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행위이고, 교육이란 미래에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행위이다." -288-

선비, 그 시대의 지식인들은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아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가르쳤다. 정치와 교육을 양분해서 생각하지 않았고 이상을 실현하는 하나의 행위로 생각하고 실행해 나갔다. 배우고 가르치고 나아가 실행했다. 3박자가 잘 어우려져 돌아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여기에도 크나 큰 오류가 있다. 훈구파와 사림세력의 끝없는 당쟁으로 인한 수 많은 사화가 발생되어 사회가 진일보하며 나아가지 못하고 죽고 죽이는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 조선의 현실이었다. 교육이 올바른 지식인을 길려내는 순기능이 아니라 세력을 확장하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으니 작금의 형태와 그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 시대가 우리에게 묻는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길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한 꿈꾸며 살 수 있는 것인가?

라고 말이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책문에 도전해 보라!

 



[마음에 담은 글들...]

1)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 군자는 의에 밝다는 말은 군자의 지향이 사회정의라는 말이다. 소인이 이에 밝다는 말은 소인의 지향이 개인의 이익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개인의 이익추구와 이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


2) 창업과 수성은 형세가 다르다.

    : 지금은 창업을 해야 할 때인가? 수성을 해야 할 때인가? 어느 때인지, 방향을 정하는 것이 먼저이다.


3) 성산문(사육신)과 신숙주(변절자)는 절친사이였다. 하지만 한 명은 충절의 대명사이고 또 다른 한명은 변절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신죽주는 세조가 당태종에게는 위징이 있고, 나에게는 숙주가 있다고 할 만큼 세조의 정치 업적을 주도했고, 예종시대와 성종초의 위기를 극복하여서 조선을 든든한 반석에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4) 숙주나물의 설화 or 야담 : 녹두를 싹 튀워 데쳐서 무쳐 먹기도 하고 만두속으로 쓰기도 하고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고 하는데, 하도 잘 쉬어서 신숙주처럼 잘 변한다는 뜻으로 숙주나물이라고 했다고 한다.


5) 사교육이 공교육을 능가하는 사회는 이미 평등사회가 아니다. 교육의 평등이란 교육받은 기회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부여하자는 것이지, 피교육자의 능력을 평준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6) 물이 맑으면 사람들이 와서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사람들이 와서 발을 씻는다고 하는구나. 갓끈을 씻느냐, 발을 씻느냐 하는 것은 물에 달려 있구나. <맹자> -114-


7) 흰 실은 물들이기 나름이다.


8) 개혁을 부르짖을수록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의 저항도 그만큼 크게 나타나는 법이다.


9) 조선의 외교정책은 큰 나라를 섬기고 이웃 나라와 사이좋게 지낸다는 '사대교린(事大交隣)'을 기본으로 삼았다. -233-  (사대: 중국, 교린: 중국을 제외한 이웃나라)


10) 학문의 길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정치의 길은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먼저 진리를 탐구하지 않고서는 정당하게 사람을 쓰거나 버릴 수 없습니다. -251-


11) 조선중기에 일어난 사화는 조선초기부터 지배세력을 형성해 온 훈구파와 새로이 정계에 진출하려는 사림세력의 갈등과 대립이 표출된 사건이다. -283-


12) 옛날 사람들은 하늘이 만물을 낳고 땅이 만물을 길러낸다고 생각했다. 하늘과 땅이 낳고 기르는 일은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이루어진다. -315-


13) 정벌은 힘, 화친은 형세에 달려 있습니다. -329-


14) 평화와 자존을 지킬 수 있는 역량은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


15) 사회의 모순은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불균형이 더 큰 문제이다. 빈부의 차이가 심할수록 사회는 불안정하고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결국 정치적 안정을 이루는 길은 극심한 빈부 차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 -345-


16) 진시황은 흉노이 침입을 대비하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장성을 쌓는데 국력을 많이 소모하여 진이 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351-


17) 말이 과격하지 않으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말투가 절실하지 않으면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18) 해마다 꽃은 그 꽃이건만 사람은 해마다 그 사람이 아니네!


19) 유가적 관념에 따르면 현실은 도리를 실현하는 장소이다. 정치는 바로 그 도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행위이다.


※ 한 줄로 요약하면,

과거나 현재나 대안과 대책은 넘치지만,
소통의 부재는 여전하고 현실적 근본 실행은 미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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