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성공과 실패(성공하는 중)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마냥 부러웠던 때가 있었다.
필자도 그런 멋진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크게 성공하려면 반드시 많은 실패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한 번에, 아무 시행착오 없이 성공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모르겠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아는 사람 중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버지 지인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한 가정의 아버지로, 사업에 크게 실패한 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생을 포기하려 했다.
그런데 그가 들어놓은 사망보험금은 가입 후 1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1년만 더 버텨보자”라는 마음으로, 그동안의 좌절을 뒤로하고 다시 일어섰다.
그 1년 동안 그는 죽을힘을 다해 일했고, 결국 사업을 되살렸다.
1년 뒤에는 몇십 억의 수익을 올렸으며, 지금도 그 사업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만약 사망보험금의 수령일까지 1년이 남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가 그때 정말로 삶을 포기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의 그 성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한 치 앞도 모른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본인이 미래에 성공할 것을 알았는지 묻는 인터뷰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성공의 순간 뒤에는 언제나 많은 고뇌와 피, 땀, 눈물 등이 담겨 있다.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도전하라”는 말을 함부로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리셋이나 후퇴 버튼을 누를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최대치의 잘 사는 인생’을 꿈꾼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면 이왕이면 잘 사는 인생을 택하는 게 이득이지 않은가.
성공 뒤에 가려진 숱한 노력과 절망들을 가늠한다면,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말자.
그 사람은 성공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잡은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대하는 타인의 태도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우상화하는 사람들이다. 성공한 업적과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존경한다.
두 번째는, 시기•질투하는 사람들이다. ‘제로섬 게임’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누군가의 이득이 반드시 다른 이의 손실로 이어져, 이익과 손해를 모두 합치면 항상 0이 되는 경쟁 상황을 일컫는다. 쉽게 말해, 지인이 잘되는 모습을 볼 때 질투가 커지고 자신은 실패자로 느끼기 쉽다는 것이다. 모든 재화는 유한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성공이 곧 나의 몫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여긴다.
특히 ‘저 사람은 잘 되는데 나만 제자리 아닌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축하를 온전히 하지 못하고 질투하며, 심하면 그 사람(잘 나가는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된다. 일명 ‘속이 꼬인다.’라는 말이다. 성공에는 시기와 질투가 동반된다. 사람들은 평범한 것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서 능력이 출중하거나 성공한 사람을 보면 대개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다. 상대방의 태도가 변하는 것을 달갑지 않아 한다.
이렇듯 성공은 그 이면에 다양한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솔직히 이런 것들을 다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많이 해봤으면 한다.
반대로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보며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일명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말한다. 타인의 불행을 보며 열등감이 해소되며 정서적 해방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운은 살면서 최소 한 번 이상은 온다.
다만 그것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성공의 트로피를 거머쥔다.
이후에 성공의 가도를 달릴지 말지는 본인의 역량이 중요하다. 이는 심리학 실험에서도 증명이 되었고, 통계학적으로 보면 인간이 무언가를 오랫동안, 많이 시도할수록 운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묻고 싶다.
당신은 성공의 이면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시작하라.
바로 지금, 당신의 기회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