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한 취미 생활
정원을 이쁘게 만들어 가는 게임이 있다. 분홍색 노란색 꽃, 사과. 포도 등의 위치를 옮겨 짝을 지어 주거나 풀숲에 숨어있는 토끼나 너구리를 찾으면 폭탄이 터지기도 하고 무지개색 무지개 원반이 생겨 네모 안의 엉킴을 일순간 시원하게 폭파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 또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들이 심심찮게 툭툭 튀어나와 공짜를 받으면 신나는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기도 한다. 거의 전 국민이 열광했었다는 애니팡 도 해보지 않았던 내가 뒤늦은 나이에 게임에 푹 빠져 가끔 현질을 하는 취미가 되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 한 아이의 아빠가 된 큰 아이가 어린 시절 안 좋았던 기억으로 “엄마가 게임기 박살 냈던 것”이라며 크크 웃는다. 그러면 작은 아이가 ‘그건 오빠의 거짓말 때문이었잖아’라고 편을 들어주지만 마음 한구석은 게임 때문에 폭군이 되었었던 지난날의 나의 모습에 뜨끔 한다. 만약 그때 게임의 즐거움을 알았었다면 친구랑 게임을 하고자 게임기를 몰래 숨겨 나가면서 즐거웠을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으리라 또 ‘밥 먹자’라는 말에 ‘이것만 깨뜨리고’ 하던 아이의 말에 ‘너어~’ 하고 소리도 지르지 않았으리라.
지금은 작고하신 이남이 선생의 노래 중에 노란색의 선글라스는 노란 세상으로, 파란색의 선글라스는 파란 세상으로 보이게 한다는 노랫말이 있다. 인간의 편협된 주관적인 시각을 꼬집는 노랫말로 생각을 했었으나 요즘은 소통이란 의미로 생각을 해본다.
소통이란 막힘 없이 오해 없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게임 시대를 거친 내 아이들은 나와는 달리 자신들이 경험을 되살려 망설임 없이 자신의 아이들과 게임으로 소통을 한다. 만약 내가 아직 게임을 접하지 않았다면 어린아이한테 무슨 게임이냐고 잔소리를 했을 것이고 꼰대라는 소리와 함께 은근 왕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 모습을 봐도 잔소리를 하지 않고 밥상을 차려놓고 게임의 한 타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여유가 생긴 것은 게임이라는 공통분모로 즐거움을 소통하게 된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요즘 누군가 내가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그런 질문을 들을 나이는 이미 지나버린 듯 아무도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