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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Jun 08. 2021

숨기다

 날이 많이 덥습니다.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실는지요? 저는 조금 힘없이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왜인지 밤에 잠이 잘 들지 않더군요. 수면에 도움이 되는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도 약으로 누를 수 있는 생각의 양이 아니었나 봅니다. 쏟아지는 생각에 정신없이 휩쓸리면서 선잠을 잔 채로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그래도 당신께 안부를 전하는 일은 빼먹을 수 없으니 차분한 마음으로 지면 앞에 앉았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피곤은 정말 숨기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눈밑에 진 그늘, 푸석해지는 피부와 풀려버리는 눈꺼풀까지. 누가 보아도 피곤한 사람의 안색이 되어버립니다. 왜인지 피곤함은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들켜버리면 굉장한 치부를 들킨 것처럼 부끄러워지곤 해요. 그래서 피곤한 날에는 눈 밑에 컨실러를 더욱 두껍게 올려보지만, 그냥 컨실러를 두껍게 바른 피곤한 사람이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숨기고 싶은 것은 피곤함만이 아닙니다. 절대 숨길 수 없는 딸꾹질도, 하품도, 그리고 기분도 모두 모두 숨기고 싶습니다.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숨기고 싶습니다. 특히 기분은 더욱 숨기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너무 투명하게 속을 내비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너무 좋은 기분도 너무 슬픈 기분도 꾹 참아 넘기려고 하지만 그게 참 어렵더군요.


 어느 날은 심각하게 고민하던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린 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 고민하기 시작하면 끝을 모르고 파고 들어가는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었는데, 그게 잘 풀리니 저도 모르게 안색이 좋아졌었나 봅니다. 퇴근한 남자 친구가 바로 눈치를 채 버렸지 뭐예요.

 "오늘 기분 되게 좋아 보여."

 "나? 아닌데. 그냥 그래."

 말은 그렇게 하지만 머릿속이 화사한 꽃밭이 된 것을 숨길 수가 없더랍니다. 


 기쁨도 기쁨이지만 슬픔은 더 숨기기가 힘듭니다. 숨기고 싶은 마음과 들키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의 슬픔을 외면해주면 좋겠다가도, 나의 슬픔을 알아채고 어깨를 토닥여주기를 바랍니다. 주로 들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얼굴에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어쩌면 기쁨도 이처럼 상반되는 두 감정이 섞여있기 때문에 쉽게 들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들키고 싶고 숨기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보면, 고마운 사람이 생깁니다. 모순된 두 가지 마음 중에서도 들키고 싶은 마음을 눈치채고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함께 기뻐해 주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에게 참 고맙습니다. 설령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 의례적으로 묻는 안부라 해도 참 고맙습니다. 고마운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는 숨기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참 편해져요. 못난 표현 방법이라도 이런 사람들이 있어 마음 편히 숨기고 표현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특히 고마운 사람 앞에서 많은 것을 숨기려다 들켜버리는 일이 많겠지요. 그래도 이런 게 저의 마음이니 억지로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놔버리거나, 혹은 너무 꽁꽁 숨겨버리려고 노력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편하게, 그렇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6월도 어느새 중순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시간이 참 빨라요. 그럼에도 너무 많은 것을 빨리 해내려고 무리하지 마시고 천천히 호흡에 맞게 하루하루를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저는 내일 또 편지하겠습니다. 


21. 06. 08.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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