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노 베이스 이신가요??”

배움의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문턱이다.

by Noa


EP.3

배우를 그만두고 > 안내데스크 일을 하다 > 퇴사를 하고 > 다시 구직에 나서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현실에 불안과 자책에 빠진다. 그러다 잡코리아에서 영상 관련 직무를 접하고, 오랜 배우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영상 편집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한다. 남자친구의 응원 속에서 처음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새로운 도전을 마음먹고 나니까, 갑자기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의욕이 앞섰고, 머릿속에는 벌써 내가 편집 프로그램을 다루며 무언가를 고뇌하고 집중하는 모습들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다 버틸 수 있어! 나는 다 해낼 수 있어!” 하는 감정들이 솟구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둥(남자친구)은 그런 나의 에너지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는 영상 관련 일을 하고 있었고, 본인의 첫 시작부터 지금의 자리까지 걸어온 길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걱정이 묻어났다.


“뭐부터 시작해야 할까?” 내가 물었다.
“우선 편집 기술을 어디에 활용할 지부터 정해야 해.
단순히 배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사실 나는 ‘편집을 배워보자, 기술을 익히자’는 생각만 있었지, 그 기술을 어디에 써먹을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도전하겠다고 했던 거였다. 하지만 배워보면, 나 스스로가 어떤 분야와 더 맞닿아 있는지를 그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우는 내가 너무 절실히 원했던 꿈이었다. 이미 감정과 몸이 반응했던 일이기에 흥미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선택하려는 편집 관련 일은, 솔직히 말해서 그때의 그 반응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해봤던 직업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부분이 있었고, 현재 내가 흥미를 느껴보려 애쓰는 중인 일일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현실 앞에서 이제는 그저 꿈이 생기기만을 기다릴 수조차 없었다.


둥은 다시 말했다. “우선 프리미어부터 배워보자. 가장 기본적인 편집 툴이야.”

나는 곧장 학원 상담을 신청했다. 첫 번째로 국비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두 번째로 집에서 가까웠으며, 세 번째로 기본 편집 툴부터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원 사이트에 들어가 상담을 신청하자마자 놀랄 만큼 빠르게 담당 멘토가 정해졌고, 상담 일정을 조율하기 위한 전화가 걸려왔다.


“노아 씨, 현재 대학생이신가요?”
“아니요, 직장 다니고 있습니다.”
“그럼 현업에 종사하고 계신가요?”
“아니요...”
“음… 관련 학과 졸업하셨나요?”
“아니요.”
"... 아, 그러면 노베이스이신가요...?”
“네...!”
“음... 이제 와서 하시려는 이유가 뭘까요?”
“배워보고 싶어서요.”
“음... 뭐, 그렇다면 일정을 잡아드릴게요. ○○일 ○○시 괜찮으신가요?”
“네.”


잠깐의 질문이었지만, 그 짧은 대화들이 갑작스럽게 날 작아지게 만들었다. 간단한 질문들이 압박 면접처럼 느껴졌고, “네,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확인 도장을 다시 한번 꽝! 찍는 기분이 들었다.


나 스스로가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은,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현재 이 결핍을 해결하지 않으면 항상 따라붙을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바꿀 수 있다고는 믿었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지나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채운다면, 분명 무언가는 바뀔 거라는 확신만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시간에 맞춰 땀을 뻘뻘 흘리며 학원 상담을 받으러 갔다. 상담을 맡은 직원은 앞으로 내가 학원에서 적응해 갈 멘토라고 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그는 내게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학력은 어떻게 되세요?”
“나이는요?”
“나이가 많네요??”
“이 나이에 왜 배우려고 하세요??”
“좋아하는 일러스트 좀... 뭐, 아는 작가는 있고?”
“영상 관련해서 아는 건 있으시고요?”
“영화 보면서 ‘아, 이 편집 잘 만들었다’ 싶은 거 있어요?”
“그냥 뭐, 본인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거요. 편집점 보려고 하는 거니까 아무거나 그냥 말해요.”
“아... 이 정도 영상이 괜찮다고 생각하는구나...? 이거 뭐, 별거 없는 건데?”
“2D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림은 좀 그리세요? 좀 그리셔야 할 텐데-”


그는 마치 내 기를 꺾으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내가 대답을 소심하게 할 때마다 날카로운 말과 압박성 질문이 이어졌고, 처음 내가 기대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패키지 수업으로 상담을 유도하고 있었다.


결국 내 안의 수치심이 한계에 다다랐고, 나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뱉었다.

“아까부터 자꾸만 무례하게 말씀하시는데...”


그 직원은 조롱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제 가 어 디 가 어 떻 게 무 례 했 는 지 정확하게 말씀해 보실래요?”


순간, 그냥 순수하게 상담만 받으러 간 자리에서 왜 이런 기싸움을 해야 하나 싶었다.

“제가 정말 어디가 어떻게 무례했는지 하나하나 열거해 드릴까요? 그걸 말씀드리면 듣는 분도 기분이 상할 테고, 저 역시 기분이 더 상할 텐데요. 정말 원하신다면 말씀드릴게요.”


“아니요, 괜찮고요~ 마저 상담 진행해 드릴게요.”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얼굴이 붉어진 채 학원을 나왔다. 기대감 가득 안고 들어갔던 나와 달리,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초라했다.


작아지고 있구나.라는 감정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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