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잡코리아 요구 조건? 내가 채우면 그만이지!

위기를 만드는 것도 어쩌면 필요해

by Noa


EP.2

29살에 배우를 그만둔 나는 생계를 위해 안내데스크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안도감을 느꼈지만, 점점 자존감이 낮아지고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보여주기식 업무 지시를 받자, 더 이상 자신을 작게 만드는 삶을 살 수 없다고 느끼고 일을 그만둔다.




리셉션을 그만두겠다며, 내 꿈을 찾겠다며 당당하게 퇴사 선언을 했지만,

잡코리아를 들여다볼수록 내가 왜 이 직장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는지가 다시 아찔하게 떠올랐다.


맞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것뿐이었지.

그동안 너무 잊고 지냈었나 보네.

한 번 불붙은 불안은 내 마음속에서 점점 타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대로 지내야 할까?

턱턱 숨이 막혀왔다. 어쩌지. 내야 할 보험비, 교통비, 식비, 기본 생활비가 있는데.

(주말에 나름 의미 있는 일을 찾겠다며, 일주일 전 면접을 봤던 주말 도슨트 일은 잡아둔 상태다. 한 달에 대략 90~10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다.)


연기를 시작했을 때도, 그만뒀을 때도.

정규직 일을 시작했을 때도, 그만뒀을 때

나는 또다시 나의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뭐든 하나를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구나

나에 대한 비판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주말에 번 돈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한다 해도,

너무 대책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리셉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안일하게 직장을 다니며 학원을 병행해야 할까?

팀장님께 퇴사 안 하겠다고 넙죽 엎드려야 할까?


별의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찾아온 불안은 내 발밑에 가시를 쳐

나의 다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하루가 지날수록,

잡코리아 스크롤은 내 머릿속에 파고들어 나를 어지럽혔다.


수많은 모집 공고를 보면서

나의 자존감은 하나씩, 하나씩

모집 공고의 ‘요구 조건’ 수만큼 사라지고 있었다.


잡코리아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필요했지만,

정작 내가 지원할 곳은 한 군데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모집공고에 있는 요구 조건을 내가 채우면 되잖아?


그렇다면,

배우고 싶은 것, 내가 배워야만 하는 것 중에서

다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잡코리아 스크롤을 내리며 찾아보기 시작했다.


연기를 도전하며 ‘피사체’로 살아온 나는,

이제 피사체 밖의 과정이 꽤 멋지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영상을 찍고, 만들고, 편집하고, 고뇌하고,

기술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

어쩌면, 저 일이

내가 10년 넘도록 달려온 무명 배우 생활이

도움이 될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있을지 몰라.


내가 버텨왔던 배우의 길을

단순 미소나 고객 응대에만 써먹히게 둘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관련된 직종들을 검색해보았다.

SNS 운영, 블로그 포스팅, 사무보조, 영상 편집 등등.


그 공고들에 필요한 요구 조건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공통적으로 등장한 건

프리미어, 포토샵, 애프터이펙트.


나에게 첫 번째 미션이 생겼다.

저 요구 조건에 맞는 기술을 배우자.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새로운 도전이 생겼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는 영상 관련 일을 한다.)


그는 흥미롭게 듣더니 내게 말했다.

“노아야, 너 정말 저 일을 하고 싶어?
기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예술적인 부분도 있어.
그래서 집중해서 파고들어야만 해. 무슨 말인지 알지?”


배우를 해왔던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기본기는 시간을 들이면 익힐 수 있지만,

실력이라는 건 그 일에 얼마나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파고드느냐에 따라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


나는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둥... 난 이제 떨어질 곳이 없어.
이제는 흥미든 뭐든, 난 해야만 해.
내 인생을 더 이상 이렇게 둘 수가 없어.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정규직을 결심하고 의미 없는 데스크 업무를 해오던 지난 시간 동안
처음으로 해보고 싶다고 느낀 일이 바로 이거라는 거야.”


둥은 내게 말했다.



“그럼, 한 번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