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단순한 시작으로
EP.4
편집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나서 기대와 열정으로 학원 상담을 신청한다. 그러나 상담 과정에서 무례하고 압박적인 태도를 보인 멘토로 인해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고, 결국 학원을 떠나게 된다. 또다시 ‘작아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며, 새로운 도전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씩씩거리며 학원을 나오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작아지는 나 자신과 당장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함만이 밀려왔다. 아까까지 솟구쳤던 자신감과 아드레날린은 온데간데없고, 남은 건 나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감정뿐이었다. 수많은 생각이 뒤엉켜, 피어나지 못했던 꿈들이 나를 꾸짖는 것만 같았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속마음들이 속삭였다.
“고작 이런 일에 의기소침해진 거야?”
“이런 것도 감당 못하면서 직장은 왜 그만뒀어?”
“그냥 돌아가. 데스크에 앉아서 미소나 지으면서 학원이나 다녀~”
“시작이 반이라며? 그 반을 시작하기도 전에 겁을 먹다니 한심하네.”
그 목소리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생기 없는 시선으로 터벅터벅 집에 걸어갔다. 집에 도착해 어두운 조명을 켜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이대로 모든 걸 멈추고 싶었다. 새로운 도전도 하기 싫고, 낯선 곳에 나를 던지는 일도 두려웠다. 그냥 적당히 생계를 유지할 만큼만 벌면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어졌다.
수많은 심리학 책들에서 반복해서 마주쳤던 문장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기.’
‘회복 탄력성을 기르는 법.’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어떤 방법도 적용할 수 없었다. 내 선택들에 대한 미련과, 과거에 대한 후회만이 가득 밀려왔다.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내가 연극영화과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왜 빨리 깨닫지 못했을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도전했더라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렇게 나는 과거의 그림자 속에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불편한 자세로 자서 머리와 어깨가 결려왔다. 몸은 축축 늘어지고, 피로가 물밀듯 밀려왔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 몸을 이끌며 주말 도슨트 갈 준비를 하려던 그때, 출장 중이던 둥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둥!!!!!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면...!”
나는 어제의 꽉 막힌 울분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둥이는 내 얘기를 듣더니,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그런 일이 있었구나.”
둥이의 가벼운 반응이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나를 무시했다니까?
"풉 무슨 면접도 아니고 찾아간 사람한테 그렇게 했대!”
그런데도 둥이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겼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래, 그렇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까지 나 자신을 자책했을까.
둥이의 부드럽지만 단단한 말은 내 마음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줬고, 그 일이 새삼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둥이는 이어서 말했다.
“너 그 친구 기억나? 편집하는 친구. 요즘은 학원 안 가고 온라인으로 독학하는 추세래. 너도 시간 아끼고 독학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때?”
그 말을 듣는 순간, 망해버린 상담으로 막막했던 마음이 조금은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장소가 어디가 됐든 방법은 다양하게 있어. 내가 의지만 있으면 다른 방법으로도 도전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