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존감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했다.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드러내는 일이 익숙했다. 그게 자존감인 줄 알았다. 나는 내가 당당한 사람이라고 믿었고, 그게 내 본모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당당한 태도는 말 그대로 태도일 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그건 순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나만의 배우 특기였을 뿐이었다. 그날의 캐릭터만 정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자존감, 즉 자아존중감. 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그게 우선이어야 했지만, 나는 나를 끊임없이 혐오했다. 그리고 하필 그 혐오는 배우라는 직업과 만나 더 깊고 날카로워졌다. 자존감 없이 함께 걸어간 내 꿈은 얼마나 나에게 파괴적일 수 있는지, 나는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처절하게 겪었다.
어느 날, 한 캐스팅 디렉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넌 카메라 앞에만 서면 왜 그렇게 튀기처럼 보여? 단역으론 별로야.”
“배우는 감독한테 서글서글한 맛이 있어야 돼.”
“난 재미있는 애들이 좋아. 무거운 애들은 질려.”
그런 말들뿐이었겠나- 수없이 많은 말들이, 사람마다 다른 기준으로 나를 찢었다.
나는 사람에 맞는 페르소나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 앞에선 이렇게, 저 사람 앞에선 저렇게.
페르소나를 갈아 끼우며 살아온 몇 년. 결국 나는 나를 잃었다. 진짜 나를 잃는다는 건, 낯선 사람을 만나 첫마디조차 감이 오지 않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만남을 줄이고, 나만의 울타리를 만들고 철문까지 달아 잠갔다. 내가 나조차도 혼란스러운데,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배우의 길은 계속 걸어야 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 그리고 반복되는 오디션. 그 일은 매주 면접을 보고, 매주 불합격 통보를 받는 일과 같았다. 게다가 그건 단순한 결과가 아니었다. 외모, 목소리, 체형, 분위기, 성격 ‘나’에 대한 품평이 늘 따라왔다. 하루하루 나를 내어주며 버티다 보니, 자존감을 지킨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내가 이 일을 좋아하니까”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 하지만 무너진 자존감이 나를 좀먹고 있다는 걸,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러다 결국, 이 일이 미워졌다. 나 자신을 원망할 수 없었던 나는 내가 선택한 직업을 미워해야만 그나마 마음이 정리되는 듯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향한 혐오는, 꿈을 향한 분노로 번졌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말했다.
“노아, 너는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잖아. 근데 네가 불평하는 것들은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야.”
그 말이 맞았다. 끊임없이 평가받고, 드러내는 일이 이 직업의 본질이었다. 내가 그 중심을 지키지 못한다면, 나처럼 무너지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과연 이 일이 나와 맞는 일일까?
하나하나 점검해 보았다. 결론은 분명했다. 이 직업은 내가 가진 기질과 전혀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정 끝에,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자아가 분명한 사람이다. 옳고 그름이 중요하고, 정답이 있는 결과물을 좋아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동안은 꿈을 좇느라 직업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췄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하는 시간을 한 번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고민을 2년 동안 했다. 의미 없는 정규직 일을 하면서.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사용하는 일이 싫다. 서비스업, 연기, 도슨트... 그 모든 일들은 나를 앞세워야 하는 일이었다. ‘나’와 ‘일’ 사이에 아무런 매개 없이, 나 자신이 곧 상품이 되는 구조. 그걸 반복하다 보니 자존감이 완전히 망가졌다. 내가 무너진 이유는,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이 내 성향과 너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편집’이라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졌다. 카메라 앞이 아닌, 카메라 뒤에서 일하는 일. 이 일은 내가 나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창조적이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나는 지금, 나라는 사람과 직업 사이에 건강한 경계를 만들고 있다. 그걸 찾은 지금, 조금씩 나는 나 자신을 회복하려 한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갈아 넣은 일들이 내 길이 아닐 수 있다. 그 직업이 나와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저 내가 달려온 길 위에서 내 노력을 스스로 인정해 주고, 잘 보내주면 된다. 아직도 긴 세월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고, 내 노력의 결과가 나를 ‘노스펙’ ‘노경력’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내가 걸어온 나만의 과정을 인정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열정의 결과물이 내 생각보다 초라함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이 부정적인 시선을 가져도 적어도 적어도 나만큼은 나를 인정해줘야 하지 않겠나?
고등학교 입시 시절, 엄청난 연극영화과 경쟁률을 보며 시험을 보러 가기 전, 친구가 내게 말했었다.
" 야, 어차피 붙는다고 생각해도 떨어져-그러니 어차피 떨어질 거, 붙는다고 생각해 -"
내 결과물이 초라하든 뭐든 - 내가 지금 시작하는 여정이 남들보다 느리든 뭐든, 나는 잘 해낼 거고 잘 이겨낼 거다. 어차피 떨어질 거 붙는다고 생각해야지 어쩌겠나 ! 헤맨 만큼 내 땅이다.
* 최근, 함께 배우 일을 했던 언니가 내 글을 읽고 이렇게 말했다. “헤맨 만큼 네 땅이니까, 잊지 마.” 그 말 한마디가 내게 큰 위로가 되어, 브런치에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