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by Noa

어느 공간을 가든, 늘 존재하는 것이 있다.

일명 텃세.


주변의 어른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흔히 말하는 '알아요, 몰라요 이론'. 그게 사회생활이라고


그 말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이론들이 반복될수록 피로해진다.

아는 걸 왜 안다고 말하지 못하는지,

모르는 걸 아는 척하다 들키면

이자까지 붙여 돌아오는 질책 앞에서는 말이 없다.

그 기준은 늘 애매하고, 책임은 대체로 아래로 흐른다.

가장 만만한 대상에게


사회에 섞여 남의 돈을 버는 공간에서는

언제나 역할이 나뉜다.

선임 근무자와 신규 근무자.

알바든 직장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그 직장에서의 만렙'이 된 선임과,

이직했거나 첫 직장인 신규


건조하게 인사를 나누고, 업무를 인수인계받는다.

사람이 자주 바뀌는 일터일수록

인수인계 자체가 일상이 된다.

그런 곳에서는 물론 그 마저도 피로할 수 있다.

어차피 또 바뀔 걸 알고 있으니까.


빠른 적응을 위해 규칙을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룰은 업무의 규칙이 아니라

개인의 방식을 따르게 요구받는다.


뭐, 더 단축된 시간에 같은 결과를 내더라도

본인의 스타일이 아니면 문제가 된다.

돋보기라도 쓴 듯

실수를 찾아내려는 매서운 눈빛도 함께 따라오면서 말이다.

이게 다 - 알아도 모르는 척을 안 했기 때문이란다.


가끔은 궁금해진다.

자신의 삶이 회사에서만 흐르는 것인 건가.

이곳이 일터인지, 아니면 세상에 쌓인 불만과 자존감을 해소하는 공간인지


그럴 때면

한 번쯤은 닥터스트레인지에 등장했던 유체이탈을 시켜주고 싶어진다.

제3자의 시선으로 이 풍경을 보게 한다면

지금의 이 행동들이 과연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


도대체 그 망할 '사회생활; 룰은 왜 이런 식으로만 적용되는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지하철을 타면

다들 무채색의 옷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의 전투를 끝낸 채 마주한다.


삭막하고 꽉 막힌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해

넷플릭스를 틀고, 맥주 한 캔을 뜯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서로를 무채색으로 만들면서도,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서

서로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우리의 삶에서 내가 꿈꾸는 사회생활은 아직 철없는 어린애 생각이란다.


업무의 인수인계는 한마디로 정의하면

업무와 그 사람의 비위까지 담겨있는 인수인계임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난 내 낭만을 찾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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