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메시지

눈물이 마른 이에게

by 강노아

SG 워너비 가수 김진호 때문에


가사 때문에, 그 친구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그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여서 울었다. 그리고 가족이 흩어진 나 혼자의 공간이 황량하고 스산해서 또 울었다. 울고 나니 오래된 몸의 부산물이 빠져나간, 지친 행군 도중 배낭을 잠깐 내려놓는 기분이다.


한참 울고 코 풀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어디서 이 눈물이 시작된 걸까? 노래 가사에서 찾았다.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 곳 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 있네"





내 기억의 아버지......


아버지가 육군 장교로 전역하여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다, 자영업으로 어머니와 맞벌이 전선에 뛰어들 무렵 나는 유년,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두 분 다 근면 성실하고 신앙이 돈독해 어려서 한 번도 부모님이 다투는 것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집안의 주도권은 늘 아버지가 장악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군대식으로 우리를 키웠다. 부모님 방과 우리 방에는 벨이 연결돼 있어 새벽이면 기상 벨이 울렸다. " 지익 지익" 두 번 길게 전기 감전음 같은 옛날식 부져는 새벽기도 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 고난의 행군은 교회 갈 때 버스 타고 (버스로 15분, 걸어서 1시간 거리) 올 때 구보로 오는 것이다. 게다가 새벽기도 때 할 말도 없는데 아버지의 기도 시간 동안 반쯤은 졸고 나머지는 잡생각 하다 아버지의 어깨 툭치는 신호에 깨어나 집에 온다.


기도 마치면 교회 앞마당에서 체조를 했다. "헛둘, 헛둘" 이어 두 명의 꼬마와 성인 한 사람이 이른 새벽 공기를 '헉헉' 마시며 집으로 달려 돌아왔다. 아마 초등학교 후반부터 중학교 내내 그랬던 것 같다.


가끔 새벽기도 거르는 날이 있기는 했다.


온 가족이 한 여름 독나방 가루에 두드러기가 나자 닭피가 좋다는 민간요법에 따라 온몸에 닭피 바르고

피 묻은 세 남자가 상의 벗은 채 옥상에서 벅벅 긁던 날. ( 실제 그 장면은 봉준호 영화보다 더 웃기다)

그렇게 특별한 몇 날은 새벽기도가 없는 날이었다.


학교 성적이 오르면 이상한 아버지 계산법에 따라 (그날 날짜 곱하기 등수 나온 값에 다시 나이로 나누기 ) 상금을 받았고, 성적이 떨어지면 아버지 계산법에 따른 숫자만큼 "빠따"를 맞았다.


동생은 공부를 잘했다. 공부 잘하는 동생은 아버지 사랑을 독 차지했다. 대부분 장남보다 차남은 편애를 받는다. 형의 시행착오를 금방 알아 교정하기 때문이다. 동생과 내가 싸우면 아버지 재판장은 항상 동생 손을 들어주었다. " 동생 무죄, 너 유죄, 땅땅땅" 나는 재판이 끝나면 혼자 골방에서 울었다.

그 후론 동생과 싸우면 다툼 필요 없이 아주 빠르고 세게 한 주먹으로 해치우고 아버지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싸움을 끝냈다. 이런 이유로 어릴 적 동생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는 같으나 달랐다.


중학교 2학년 때쯤 생애 처음 죽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지배받고 사는 것이 싫었다. 난 자유가 필요했고 죽으면 자유로울 것 같았다. 우리 학교 뒷산에는 높은 절벽이 있는데 한해 한두 명이 그곳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보다 좀 더 소심한 방법을 택했다. 집 옥상에서 뛰어내리기. 계획은, 죽음을 아버지가 기억하도록 대형 카세트 라디오에 "헨델의 메시아 할렐루야 전곡" 테이프를 누르고 뛰어서 내가 바닥에 피 흘리며 죽어 있을 때 그 음악이 장엄하게 연주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 옥상은 높아서 머리가 먼저 땅에 닿으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옥상 계단은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먼저 사다리로 한번 올라가면 작은 옥상이 있고 두 번째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높고 넓은 아버지와 닭피 바르던 옥상이 나타난다. 무겁고 제법 큰 카세트를 들고 올라가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계획에 없는 예상치 못한 사건은 첫 번째 사다리에서 발생했다.


" 쿵" "쨍그랑"


덩치 큰 카세트 라디오 무게에 기우뚱, 휘청 거리다 오르던 사다리에서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카세트 라디오는 와장창 깨지고 나는 엉치뼈가 죽을 듯이 아팠다. 아니 죽음이 아팠다.


" 아버지!! 형 떨어졌어요~" (즐겁게 외친 것으로 기억한다)


집안이 갑자기 어수선하더니 부모님이 사고 현장에 나타났다.


"이런 멍청한 놈, 사다리도 못 타냐? 깨진 카세트는 어떡할 거고?"


아버지 불호령이 떨어졌다. 실패다.


의사는 엉덩이 뼈에 금이 간 것 같으니 안정을 취하고 일단 지켜보자며 진통제 주사하고 약 한 움큼을 주었다. 아버지는 내 치밀한 계획을 "멍청한 장남이 카세트 들고 음악 감상하러 옥상 올라가다 떨어진 사고"로 판정했다.


" 너 용돈 모아서 카세트 니 돈으로 새로 사!"


그 사건 이후 과묵해진 나는 사춘기를 통과하며 아버지와 약간의 거리두기로 생존 비결을 찾았다. 물론 특차 대학에 단번에 합격하자 나는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로 승격해 있었다.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던 날 아버지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 잘해"


아버지와 헤어지는 것이 행복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와 다른 아버지가 될 줄 알았다. 아니 다르게 살고 싶었다.


아버지처럼 두 아들이 생겼다. 큰 아들은 어릴 때 나를 닮았고 작은 아들은 내 동생을 닮았다. 무서운 내 안의 유전자는 내가 아버지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라고 평생 토록 말해 주었다.


큰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고 시카고 기숙사로 들어갈 때 녀석을 내려주고 차에서 펑펑 울었다. 아버지와 내가 헤어질 때 생각이 나서 그랬다. 녀석도 집을 떠나며 나처럼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몇 년 뒤 둘째가 어바나 샴페인 기숙사 들어갈 때는 내 아버지처럼 악수했다. 그리고 그에게도 미안했다. 큰 녀석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 부모를 너무 부려 먹는다고 "너랑 빨리 헤어지면 좋겠어"라던 독설이 생각 나서였다.


세월이 더 흐르고 둘째가 대학 졸업하던 날 온 가족이 하루 집을 얻어 함께 지내고 파티도 했다. 그날 밤 나는 두 아들에게 진심으로 무릎을 꿇었다. 아이들이 깜짝 놀라고,


" 애들아, 아빠가 잘해주고 싶었는데 잘못한 게 많은 것 같아. 그동안 자라면서 안 좋은 기억 다 잊으면 좋겠다. 미안해"




내 가족은 김진호 가족과 다르다.

그런데 그의 가족사진 노래에 눈물이 나는 까닭은, 일찍 돌아가신 김진호 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오버랩되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역경과 가난을 이기며 잘 커버린 자녀를 가진 가족을 보면 부럽다.

우리 아이들도 잘 커서 각자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내가 나에게 주는 가족 성적표는 초라하다.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해방 이론가 미셀 바렛과 메리 맥킨토시는 그들의 책

" 반사회적 가족 The anti social Family"에서

"안정과 보호의 상징인 가족을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반사회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파격적인 말을 한다.


"가족제도는 부와 빈곤을 세습시키며 사생활권이라는 미명 아래 그 담장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을 은폐하고 개인의 개성과 인권을 억누르고 있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가사노동에 여성을 묶어두는 것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이런 근본적인 모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모성애, 휴식의 공간, 직장의 조직 논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내면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신비화되는 모순을 역설한다 (초역판 역자 서문 1993)


가족은 결혼제도의 부산물로서 인류가 합리적으로 결정한 일부일처제의 모순 아닐까? 혈연으로 얽힌 가족은 유전자의 혼란스러운 집합소 일수도 있고, 열성 DNA가 바이러스처럼 개인에게 침투해 나쁜 성격이 되어 행복의 둥지 가족 공동체에게 고통을 주는 역설- 암덩어리-이라서 가족해체와 혼자 살기가 선호되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약자로 고스란히 피해 본 여성은 "아빠 같은 이상형"이 아니라 "아빠 같은 놈"과 평생을 살 수 없기에 결혼을 계속 주저하는 것 아닐까?


졸혼도 오래 은폐된 가족의 불화를 현행 법안에 교묘하게 해체하는 은밀한 수단이며, 황혼 이혼은 타인의 시선에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선택 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은 때로 교활한 방법으로 민낯의 내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처럼 가족은 동시에 행복과 불행의 양면을 가진 특수한 인간관계다. 어쩌면 자연 생태계가 가진 생과 사의 양면성과 유사하다. 하지만,

태어나 자기를 만든 우주를 눈으로 보며 호강하다,
다시 탄소가 되기 전, 다시 생각이 사라지기 전,
잠시 가족의 기쁨도 음미하다 가면 좋을 것이다.

나는 김진호 가족이 부럽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슬픔으로 표현한다. 그 슬픔은 가족의 슬픔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이다.

가족의 희생, 아버지의 그리움. 무엇보다 그의 앎은 시간을 통과하며 느낀 헤어지는 삶의 슬픔이다.


내 눈물이 멈추지 않는 까닭은 내가 그 같지 못해 가슴 아파 그렇고, 일찍 고인이 되신 내 아버지께 미안해서 그렇다. 이 글 읽고 그의 노래 한번 들어 보기를 권한다. 시원하게 울고 나면 다시 용기내고 싶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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