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것의 허상

by 강노아

N사에서 새로운 브라우저를 만들어 공개한 지 꽤 오래되었는데 ( 난 크롬과 익스플로러를 번갈아 쓰고 있어서 관심이 없다) 광고에 현혹되어 이전 것을 슬쩍 외면한 채 그것을 쓰게 되었다.


처음엔 신선했다.


크롬을 기반으로 개발한 것이라 전문적인 차이는 못 느끼겠지만, 다채로운 기능과 다양한 배경 사진들이 호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렇게 몇 주를 쓰다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익숙한 것들로......


처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날 때도 처음에 정말 신선했다. 유학생활을 통해 이미 미국의 장점만 골고루 장착하고 단점은 조금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 이유는, 미국이 좋은 나라라는 무의식적인 국가적 호감에 취해 그런 것 같았다. 시민권자로 오래 살아온 지금, 미국은 그렇게 대단한 나라는 아니라고 느낀다. 그저 우리와 다른 나라, 혹은 장단점이 서로 다른 나라로 생각한다. 고국은 어머니 같은 나라, 미국은 아버지 같은 나라라고 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된다. 어쨌든 양쪽을 오가며 사는 경계인이 되어버린 지금, 한국의 좋은 점과 미국의 좋은 점을 선택적으로 섭취하며 살게 되었다.


처음에 좋았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 낡은 것이 되고, 정말 좋은 것은 낡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빛나는 경우가 참 많다. 사람의 경우도 그런 것 같다. 처음에 호들갑을 떨며 친절한 부류의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좀 퇴색되는 느낌이고, 묵묵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 오히려 멋진 모습을 보게 되어 친해지는 경우도 가끔 있다.


오래된 100년 이상된 가구를 보통 엔틱 Antique 가구라고 부른다. 그 반대는 중고, 혹은 재활용가구다.

사람도 엔틱 인간이 있고 중고 인간도 있다. ( 내가 창작한 이 대목에서 친구들은 많이 웃는다, " 난 중고네" 하면서) 엔틱 인간은 시간의 여행 속에서도 여전히 탄탄한 외모와 그만이 가진 삶의 흔적을 머금고 있어서 귀하다. 건물에 비유하자면, 숭례문은 1396년 최유경이 축성하고 1447년과 1479년에 고쳐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2008년 방화범에 의하여 2층 누각이 모두 붕괴되었고 2013년에 원형에 가깝게 복구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숭례문은 1396년의 숭례문이 아닌 상징물일 뿐이다. 원형을 간직하고 세월의 흔적을 남기고 살아남는 경우는 이처럼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죽지 않는 한 원형을 보존하며 늙어간다. 상처를 입기도 하고, 사고를 당해 팔다리를 잃기도 하지만,

원형은 그대로 유지되며 늙어간다. 물론 뇌가 손상을 입게 되면 복원이 불가능하지만 대체적으로 전체를 잃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


그 원형이 변한다.

시간이 흐르며 엔틱가구가 될 것인지 중고가구가 될 것인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삶의 고뇌가 없이 성공만을 위해 달리면 중고 인간이 되고 그 반대면 엔틱 인간으로 변한다. 사법고시 합격이나 의사면허증, 유명 정치인 연예인 방송인 전부 현역에서 "전직 아무개"로 바뀌고 무대에서 사라지면 tv와 인터넷 화면 앞에 앉아있게 된다.


자기를 지켜주던 갑옷은 때가 되면 낡아 사라지고 언젠가는 분명한 자신의 나신 Naked을 마주칠 그날이 온다.

자신의 진로를 수정해 엔틱 인간이 될 기회는 그것을 깨닫는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 그러므로 방향을 정하는 키Key는 지금 이 순간 삶에 대한 통찰을 On 하고 있는지 Off 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어쩌면 40대를 넘기면 우주로의 출발이 아니라 지구로의 귀환을 진행하는 소유주 캡슐에 탄 것과 같다.

지구로 떨어질 때는 중력이 힘을 받기 때문에 아주 적은 궤도 수정과 견디는 것 밖에 할 것이 없다.

따라서 조금 더 어릴 때 삶을 통찰하는 것은 중년과 노년을 엔틱 인간으로 준비하는 최고의 기준이 된다.



미국은 전반적으로 무엇이든 오래 쓰는 편이다. 가구든 개인물품이든 벼룩시장 Flea market기능이 무척 발달해 있다. 주말이면 동네 곳곳에 가정 집 앞에서 거라지 세일 Garage Sale을 한다. 옛것을 고쳐서 쓰고 나누는 그들만의 습관이 돋보인다. 내가 유학 때 새 아파트였던 LA의 아파트를 20년 후에 가 보았는데 원형이 그대로고 단지 낡기만 하였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던 놀이터도 고쳐서 쓰니까 낡기만 했을뿐 사용에 지장이 없을만큼 훌륭했다. 그에 비해 여기는 삶의 방식-변화와 유행-이 빠르다. 변화가 빠르면 처음에 빠르게 판단하고 평가하고 결정해야 하는 노력과 수고가 뒤따른다. 치타는 고양잇과 야생 맹수 중에 진화를 통해 힘을 포기하고 속도를 선택한 동물이다. 그래서 치타는 육상동물 중 가장 빠르지만 먹이를 잡고 나서 다른 포식자에게 빼앗기고 쫓기는 멸종 1급 동물에 속한다. 그만큼 조심성도 많고 겁도 많고 예민한 동물이다.


이처럼 빠른 속도를 가지고 사는 것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처음 본 것에 숨겨진 허상이다. 처음 본 것에는 항상 상대가 숨겨놓은 매력(혹은 이익)이 존재한다. 지금 같이 사는 배우자들과 연인들이 처음에는 다 좋았다. 굳이 호르몬 탓하지 말고 그때는 누구나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


혼자는 완벽할까?


이젠 자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 자신을 만나는 아침이 지겹도록 싫다. 배우자와 살면 싸움이라도 하지만 혼자 살면 자신에 대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처리하기도 힘들다. 얼마 전 고급진 카메라는 장롱 속에 처박아 두고 휴대폰으로만 사진을 찍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다가 휴대폰을 뒤져 내 구형 휴대폰에 아웃포커스 Out Focus 기능이 있는 걸 찾아냈다. 왜 피사체는 선명하게 주변을 흐리게 촬영하는 기법 말이다. 이 기능은 인물이나 꽃을 찍을 때 참 효과적이다. 주말에 손가락부터 발가락 얼굴등을 가까이 연습 삼아 찍어보기 시작했다.


세상에, 엄청난 고화질 덕분에 사진들이 더욱 빛나 보였다. 그러나 얼굴이 문제였다. 더 선명하고 강조된 기능 덕분에 못생긴 얼굴이 더 못 생기게 보이는 것이었다. 사실 멀리서 찍으면 그래도 봐줄 만했는데 아웃포커스 덕분에 나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는 사람의 눈만큼 표현을 못한다. 내 짧은 상식으로 아날로그 시대의 카메라 배율은 사람의 눈으로 보는 배율을 x1로 한다고 알고 있다. 렌즈를 거친 형상은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실물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또 한 가지 자기 자신의 얼굴은 3차원 실물로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눈이 얼굴에 달려 있어서 얼굴은 항상 2차원 평면으로만 보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자신의 진짜 실물은 타인만 알지 나는 모른다. 가끔 옷을 살 때 피팅룸 Fitting room에 오각형 거울이 달린 곳에 들어갔다가 측면 얼굴을 보고 " 저, 누구신지" 깜짝 놀란 때가 있었다. 그게 나였다.


사진작가들은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또 찍어서 가장 좋은 사진을 고르고 필름을 수정하여

( 여기서는 뽀샵이라 하더라) "너"라고 하며 준다. 그건 " 나"가 아니라 "그" 다.

그래서 처음 본 것은 이처럼 실상을 과장하거나 때로는 속여서 표현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 보면

옳은 것 같다.


실상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된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때 음식을 찾을 때 인터넷에 블로거들이 업자의 돈을 받고 기록을 남기던 스스로 정보를 제공하던 사람들의 평을 보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그 평가의 정확도는 30~40%(내 경우에는)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의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 정말 운이 좋아 사실과 같거나 사실보다 더 놀라운 곳은 10%를 넘지 않는 것 같았다. 설령 그런 곳을 만나 더라도 다시 한번 더 가고 싶은 곳은 5%를 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지혜로운 기준은 기대를 안 하는 것으로 결론지어 버렸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당연히 줄어드니까 말이다. 문화의 차이일지 몰라도 서양은 정가제로 거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동양은 에누리 Discount라는 과정을 반드시 밀당으로 거쳐야 제 가격에 사거나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이 허수를 제거하는것이 꼭 필요하다.



이사를 할때 짐 정리를 혼자 하게 되었다.

짐은 최소한 작게 유지하려 했지만 기대 온 시간만큼 짐은 또 불고 불어 있었다. 이것저것 줄여보려고, "버릴것들" 항목도 만들어 보았지만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고 도무지 "버리자"의 결심 경계를 넘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과감하게 버릴 것을 결정했다. 몇 가지는 모르는 사람에게 팔 수 있었다. 작은 간이 옷장 하나를 팔면서 자식을 출가시키는 묘한 아빠의 심정으로 가구를 떠나보냈다. 새로 이사 온 지금, 이곳은 전에 살던 곳보다 더 작고 새 곳이라 신선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전에 있던 좋은 것들이 이곳에 없고, 이전에 없던 좋은 것들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가면서 익숙함으로 공간이 익어 갈 무렵, 이 공간은 다시 낡음으로 진화하며 삶의 기억으로 저장된다. 신선함은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일상이 되어버린 새로운 공간의 지형에 익숙해 갈 무렵,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신가한 광경을

목격했다.

20191205_110639.jpg


나무에 걸린 저 자전거 잠금장치는 이 정류장을 애용하는 어떤 사람의 자전거 자물쇠 같아 보였다.

순간, 마음에 들어온 생각은 나무가 수갑을 차고 구속돼 있는 느낌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골똘히 그것을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내내 저 나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야생의 자연에서 생긴대로 살아갈 나무들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도시에 심기고, 미세먼지와 매연, 보살핌도

없는 척박한 도시에 누군가에게는 자전거 보관소의 추가 알바까지 하면서 묵묵히 서있는 구속된 나무. 인간이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도시에서 감금되어 도구로 사용되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채웠다.


스벤 브링크만이 "인간의 도구화"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저항하던 소리도 들린다. 그래도 저 나무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해마다 찾아드는 모진 바람과 겨울의 맹추위를 견디며 생존의 살아남기를 계속하는 남 모르는 애씀이 숨어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 어쩜 저 나무는 행복할지도 몰라, 가로수라는 직업이 있잖아"


저 나무가 머리속에 남게 된 이유는 도시에 갇힌 우리랑 비슷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처음보았을때 받은 걍렬한 인상이 이처럼 깊은 생각으로 인도할때도 있다.



12년 전에 유명을 달리한 절친의 아내와 정말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몇 년을 연락 없이 지내다 수소문하여 겨우 찾아낸 그녀는, 아직도 남편이 잠든 그곳에 살고 있었다. 잠시 대화로 서로의 살아온 궤적을 다 유추하기는 힘들지만 서로가 걸어온 길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그나마 몇 살 더 먹은 죄로 그녀에게 조언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사별한뒤 10년 넘게 그곳에서 투잡Two job을 뛰며 아이들 키우고, 지금도 눈뜨면 일하고 눈감으면 자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 이제 자신을 위해 사는 시간을 가져야죠"


이 한마디에 수화기 너머 그녀는 침묵에 젖어버렸다. 잠시 뒤에 침묵을 깬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네, 자신을 위해 산다......"


그녀는 침묵에 이어 울먹이고 있었다.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아온 그녀에게 이 말은 처음 생각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 잊고 살아온 말이기도 했다. 이 머쓱한 던짐으로 유발된 어색함을 달래려 화제를 바꿨다. 그녀는 명랑하고 부지런한 친구의 아내이자 우리들의 친구였다. 열심히 살아온 그녀에게 "자신을 위해 살라"는 사치스럽고 고상한 그 말은 무슨 의미로 다가왔을까.


" 돈 많이 벌어서 빨리 송금해요, 우리 남편 떠나고, 우리 챙겨준다며, 호호"


그녀는 명랑함을 잃고 싶지 않아 했다. 그 단단함을 놓치는 것이매일 이륙할 삶의 비상을 잃어버리는것과 비슷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산다는 것은, 처음 해보는 것이라 낯설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영화나 소설 같은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지은이의 머릿속에 간접으로 경험된 것이나 생각을 묻혀 조리해 낸 것에 불과하다. 미국이 그렇다. 영화처럼 그렇게 무섭고 Fuck You가 난무하는 세상은 아니다. 흑인들은 무섭고 백인들은 차별하고 여기저기 총격전이 벌어지는 곳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범하고 사회 시스템이 다를 뿐이다. 처음 허상을 넘어 실상을 알고 나서, 그 나라도 이 나라도 사람 사는 서로 다른 세상일 뿐이다.


문제는 내가 살아가는 우주가 어떤 마음과 어떤 관계로 맺어져 나만이 가진 어떤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살아가기가 중요할 따름이다.


처음 것은 자주 허상이다. 다음 것이 실상의 가능성이 크다면, 처음 본 것으로 평가와 결정을 하지 말고 시간을 두어 실상이 보일 때쯤 판단해도 손해 볼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국은, 삶의 일부이고 허상과 실상 사이를 오가며 수 없는 시행착오 끝에 만나게 되는 것은 자신을 명확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면 우리는 정말 우주로 여행을 떠난다. 한국의 빠른 치열함은 경계에 서있는 내가 따라가기엔 너무 버겁다. 아무리 힘들어도 올해 성탄절은 한달동안 크리스마스 음악을 계속 듣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