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 다녀왔습니다.

by 강노아

오랜만에 클래식컬 뮤직 Classical music을 현장에서 볼 기회가 생겼다.

혼자 가는 음악회는 익숙하지 않지만 혼자가 일상인 이곳에서 이처럼 새로 접하는 새로움에

한껏 들떠 있었다.


가장 최근에 문화생활을 한 것은 수년 전에 김 소현이 주연한 뮤지컬 "명성황후" 였으니 우측 감성 뇌에

먼지가 자리할 즈음 청소하는 기분이랄까.

연주회장에 앉아 기다림 조차도 문화산책의 황홀함을 안겨준다.


"딩~~"


장엄한 종소리와 함께 시작된 선율이 가득 메운 청중 사이의 홀 전체에 냄새처럼 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 하나, 둘, 셋, 넷 "


앉아서 연주를 감상하면서 악기 종류와 인원을 세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이람"


나는 나름대로 음악 애호가였다.


차에 피아노 음악을 늘 달고 다니자 내 차를 자주 타는 교인들이

" 가스펠은 안 듣고 클래식만 들어요? "라는 낡은 그들의 시선이 늘 부담스러운 적도 많았고,


고등학교 때는 용돈을 모아서 부모님 몰래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베르디의 춘희 La traviata를 보다가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 Di provenza il mar, il suol"를 부르는 바리톤 가수의 아리아 Aria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던 고등학생이었다.


이쯤 되면 클래식 애호가 임에 틀림이 없는데, 지금 들어오자마자 악기 숫자를 세고 인원을 계산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어릴 때 가졌던 음악의 낭만은 고사하고 날카로운 눈매로 뭐 틀린데 없나 빠트린 거 없나를 평가하려고 못된 시어머니 심뽀로 앉아 있는 자신이 포착된다.




' 빨간색이에요, 아니 노란색이라니까."


" 전부 세 대 지나갔어요, 아니 네 대지......"


아주 아주 오래전 어떤 특집 드라마에서 노인 둘이 요양원 앞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차 색깔과 숫자를 세면서 투닥거리는 장면이 꽤나 깊숙이 뇌 속에 박혀있다.


분명히 늙으면 나도 저러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그 당시에 들었었다.

왜 노인들은 고집이 세지고 이상한 것에 집착을 시작하지 않는가?


그 생각이 들자 남들 안 보게 손가락을 가지고 리듬을 타며 연주자 숫자 세기 하던 것을 포기했다.


집중해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누가 어느 음역에서 픽 사리 내는지 찾기보다 전체를 듣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소리가 툭 치고 들어오더니 고급스러운 버터맛이 난다.

그 맛이 머릿속 전체에 부드럽게 스미며 퍼진다.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버터 밥에 간장처럼 묵직하게 감싸고 들어와 여러 밑반찬 오보에, 플루트, 들과 섞인다. 곧이어 색소폰과 투바가 트럼펫과 하모니를 이루며 치고 들어온다.


황홀했다.


얼마만의 귀호강인가?

이어폰과 헤드폰으로 매일 들어도 이런 생생 클래식은 발품 팔고 시간 내서 오지 않으면 맛보지 못한다.




둘째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연주회가 있다고 학부모들이 초대되었다.

당연히 시간을 내어 우리 아들이 어떤 악기를 연주하며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날지를 확인하려고 정장을 차려입고 연주회를 참석했다.


아뿔싸, 우리 아들 악기는 그날 심벌즈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선생님이 타이밍 좋다고 그 악기를 맡긴 것이다.

쪼그만 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 창~" 하고 쳐대는 그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럽고 민망 스러웠다.


그런데 그날의 히로 Hero는 그 녀석이었다.

연주가 끝나고, 그 귀여운 " 창~" 소리의 귀여운 주인공이 화제가 되었다.


그래서 그 기억도 내 가슴에 확실히 새겨졌다.


아름다운 선율보다, 시끄럽고 굉음 같은 그 소리가 적절한 시간에 잘 맞추어서 터져주면, 고난 같은 굉음들이

우리 인생에 적절한 시간에 이길 만큼의 강도로 쾅 소리를 들려준다면 그 소리는 절정을 상징하는 멋진 하모니의 주인공도 될 수 있다는 그 사실 말이다.


연주회가 중반으로 치달리며 피아노가 주도하는 선율들이 흘러나왔다.


건반악기 피아노는 악기 중에 소리를 긴 시간 끌지 못하는 독특한 악기다.

누르면 그 시간만 소리가 날뿐 여백이나 여운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연주가들은 이 힘든 악기의 연주에 정말 많은 수고를 해야만 한다.


물론 내가 지구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리고 누구나 좋아하는 쇼팡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 악장"을 들으면

악기의 한계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서일까, 나는 피아노 치는 여자를 사랑했다.


내가 첫사랑으로 기억하던 그녀는 피아니스트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동갑인 그녀와 친구처럼 중고등학교를 거쳐 놀다가 대학 1학년 때 연애를 시작했었다.


그 해 여름 그녀는 내 친구와 수련회 바닷가에서 키스를 했다.


우리가 사귀는 것을 알지 못한 내 친구가 그녀와 키스한 사실을 무용담처럼 들려주었을 때, 나는 대성통곡하며 죽겠다며,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는 이상한 양주 한 병을 어디서 구해다가 원샷하고 밤새 토하고 찢어지는 두통에 방바닥을 뒹굴고 " 우리 형이 죽어가요, 제발 살려주세요" 하며 문 닫은 약국문를 밤새 두드리며 약하나를 구해다가 형 먹이고 살려낸 동생 때문에 살았다.


그녀는 그때 헤어졌다.


아니 내가 차 버렸다. 대학 1학년의 청년 로맨시스트는 첫사랑 피아니스트를 그렇게 눈물로 떠나보냈다.


피아노가 깊어지자 무대 위 연주자가 그녀의 모습처럼 보인다.


오케스트라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혼자서 내는 소리보다 함께 더불어 내는 소리가 더 아름답고 장엄하다는 것 때문에,

가끔씩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좋은 지휘자가 있으면 말할 것도 없이 편리하다.


물론 인생도 내가 태어날 때, 결혼할 때, 내 자식이 결혼할 때, 내가 죽을 때 청중이 있어준다.


그때만 주인공이 되어 솔로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출세할 때, 성공할 때, 경이로울 때,

그 순간에 청중들이 자발적으로 박수를 쳐준다.


하지만 이 영광스러운 순간의 삶의 소리를 내기 위해 더 많이 숨죽이며 울고 또 울고 했던 순간들이

인생에는 더 많다.


우리 어머니는 맏아들인 나를 낳기 1년 전에 내 형을 낳고 한 달 만에 그 아들을 잃었다.

요즘같이 대단한 의료 형편이 아닌 시대에 산모와 아가들의 죽음이 당연한 불행으로 여기던 시대의 일이다.


어머니는 산고의 고통과 상실의 고통을 동시에 겪어야 했다.


게다가 아들을 고대하던 시어머니의 못된 시집살이와 무지로 인한 학대에 어머니는 화장실에 수돗물을

틀어놓고 서럽고, 서럽게 목놓아 울었던 이야기를 자신이 할머니가 되어서 들려주었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이 시대와 함께 그렇게 울며 삶의 소리를 만들어 인생을 연주했었다.


그렇게 우리가 태어나고 우리 자식들이 태어나고 우리들도 그렇게 눈물 흘리며 세상을 살아간다.


그래서 혼자 보다 여럿이 함께 하면 좋다.


혼자 살더라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


서로 다른 악기를 가진 연주자처럼 서로 다른 소리들을 만나 소통하고 살아야 한다.


연주회를 마쳤다.


환호와 부라보는 앙코르를 덤으로 달라는 관습이다. 못 이기는척하며 앙코르를 풀어놓는다.


인생이라는 연주를 마치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떤 집일까?

집으로 돌아가며 겨울의 출발선에 무릎을 꿇고 여러 상념들이 머릿속에 제각기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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