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샤워를 앉아서 해 보았다.
오래전 몸에 이상이 와서 사용하려고 사둔 작은 원형 플라스틱 의자를 샤워실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가 하루 종일 체력이 부친 오늘 그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행히 샤워부스의 샤워기가 두 개인 집이라 평소 사용하지 않던 큰 샤워기로 물을 내렸다. 순간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화초가 된 기분이랄까.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물줄기를 그냥 맞았다. 아주 오랜만에 샤워부스에서 분주하지 않게 나에게 물을 주었다. 물을 받으며 느끼는 기분은 나도 생명체라는 웃픈 현실이었다.
샤워를 씻으려고 했지 물을 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이 경험은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쉬지않고 나를 위해 움직이던 내 몸이었다. 가끔 냉장고가 자기 온도를 맞추려고 "우웅" 소리를 내며 돌아갈 때 " 넌 힘들지도 않니, 종일?" 하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냉장고 처럼 몸의 장기들은 정말 쉬지 않고 쿵탁거린다.
스벤 브링크만의 "철학이 필요한 순간"을 읽다가도 비슷한 생각을 한적이 있다
"생명은 부서지기 쉽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쉼 없이 움직이는 작은 심장 근육에 달려 있는데 근육은 언제든
그 일을 멈출 수 있으니까요.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나의 투쟁> 1권 첫 부분에 담담하게
쓴 것처럼 말이지요. ' 심장의 삶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힘이 다할 때까지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다가 멈추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인간은 모두 일종의 시한부 판결을 받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인간은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고 이 말을 들려준다. 그래서 읽기를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그냥 이대로 살다가 언젠가 훅 하고 꺼질 운명,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기쁨의 순간을 의식화 하여 반복되는 별것 아닌 행동들을 특별하게 행동하는 즐거움으로의 변화를 생각해냈다.
집이라는 공간이 그렇다. 과거에는 집이란 고정적이고 소유해야 안전하다고 여겼는데 국내에서 이사를 자주 하다 보니 이젠 집이란 여행자의 숙소 같은 느낌으로 변해 버렸다. 새로 이사 온 이 집은 아까처럼 샤워 부스의 샤워기가 두 개나 달렸고 창문으로 하늘이 잘 보인다. 아쉽게도 창문 세 군데 중에 1/3만 하늘을 보여주고 나머지는 고층 건물이 가리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나의 아침 의식 ritual이 변해 버렸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워 일출을 즐기는 의식ritual을 만들었다. 이것은 햇빛을 샤워하는 기쁨의 순간이 되었다. 누워서 날씨 앱으로 하루 기상상태를 점검하고 항공기 추적 앱으로 내 머리 위를 지나가는 비행기를 확인한다. (나는 머리 위를 가로 지르는 비행기를 보게 되면 그렇게 기쁘다), 가끔은 내가 살던 미국 동부로 향하는 항공기를 발견하고 목을 빼고 하늘을 보며 그 안에 타고 있을 미국 가는 승객을 연상하기도 한다.
여자골프 선수들이 우승 인터뷰하며 자주 쓰는 말들은 "경기를 즐기려고 노력한다"는 말이다. 얼마 전 CME 그룹 투어 챔피언쉽에서 우승한 김세영은 무려 150만 달러를 우승상금으로 벌었다. 우승 하면 저 돈을 버는데 어떻게 즐기면서 하지? 죽기 살기로 해야 저걸 차지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하나같이 선수들은 즐긴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손흥민도 억대 주급을 받으면서 즐긴다고 한다.
어차피 그 정도 못 벌 바엔 우리도 하루를 즐기면 되지 않을까.
내 말은 "즐긴다"를 "놀자"로 인식하지 말고 신성하게 의식화하여 순간 순간마다 진지하게 기쁨을 누려보자는 의미다. 아까 언급한 창문에서 차고 들어오는 처음 태양빛을 즐기는 것이나 샤워부스에 앉아서 나에게 물 주기나, 나의 경우에 일상의 즐김이다.
출퇴근 시간에 듣는 음악이나 각자만이 가진 반복적인 일과를 즐김의 의식으로 바꾸어보는 경험은
참 소중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 인생은 골퍼 김세영이나 손흥민이나 류현진만큼 못 벌더라도
즐김에 있어서는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무턱대고 열심히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5년이 흘렀다. 그의 아내가 미국에서 추도식을 마치고 묘지 사진을 보내왔다. "세월이 참 빠르죠, 벌써 이렇게 되었네요" 라는 문자와 함께. 그녀는 아직도 남편곁을 못 떠나고 있다. 친구의 죽음으로 내 인생의 방향과 직업이 바뀌어버린 것처럼, 엊그제 세상을 등진 구하라 양을 보며 절친 설리를 잃었을 때 그 심정이 어떻고,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자신마저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본다.
대중은 항상 꽃과 돌을 함께 가지고 있다.
정치도 스포츠도 연예계도 사업도 대중을 상대로 할 때 대중에게 꽃을 받은 만큼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이곳이 세상이다.
각박함을 못 본척 하고 싶어일까, 아니면 이길 힘이 필요해서일까,
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앉아서 샤워하는 물 주기로 쉼을 얻는다. 그리고 우리 집 화초 일산이, 청산이, 대산이 에게 잎을 툭치며 "굿모닝" 하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어항 속 구피 녀석들에게 아침밥을 주면서 나와 동거하는 생명들과 인간의 존엄을 공유한다.
앉아서 샤워해보라, 몸에 물이 스며든다.
나도 생명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