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모습이 멋지군요

by 강노아

옛날에 서양 영화에서는 인기스타들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멋지게 연출하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 하고 그 모습이 멋지다고 환호하던 여인들도 있었다.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그런데 시대를 초월하여 멋진 모습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책 읽는 모습이다.


지하철 대기 시간이 길어져 승차장 의자에 앉았다. 바로 옆에 한 중년 남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

순간의 감정인지 몰라도 그 남자가 갑자기 멋있어졌다. 내 가방에도 "스벤 브링크만"의 책이 들어 있었지만

그의 책 읽는 모습에 감동되어 그날은 그냥 물끄러미 그를 몰래 쳐다보았다.


세련된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진중하고 깊어 보였다.

아마 책 읽는 모습에 반해서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난 하루 종일 그 남자의 책 읽는 모습이 섹시하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서양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하나는 침대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다.


서양은 붉은색의 간접 조명이 많다.

붉은빛이 안내해 주는 이야기 길을 따라가면 그 속에는 작가의 상상력과 창작의 세상을 만난다.


스티븐 킹은 이 대목을 "정신감응"이라고 설명한다.


" 지금부터 우리는 정신력을 이용하여 거리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뛰어넘어야 한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디킨스나 세익스피어는 물론이고 헤로도토스의 책까지 읽을 수 있는 것을 보면 1997년과 2000년 사이의 간격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지금부터 시작이다. 진짜 정신 감응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묘사하는 글을 송신하면 독자들은 그것을 수신하여 정신의 만남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중이다.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책을 배우려고 읽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만나려고 읽는다.


나도 붉은 조명을 침대 옆에 두고, 추가하여 독서대와 독서등을 가지고 있다.

독서대를 가슴에 적당히 조절하고 베개 두 개를 등에 받친 후 한낮 동안 쓰고 있던 타인을 위한 가면과 생존을 위해 단단히 무장한 무거운 두뇌의 무장도 홀라당 벗어던지고 책 속에 풍덩 빠지면 그 밤의 환희는 침대에서 할 수 있는 것 중에 단연 최고다.

그래서 나의 루틴 Routine 은 가능하다면 밤에는 책을 읽고 새벽에는 글을 쓴다.



그런데 참,

휴대폰의 책과 종이책의 차이는 무엇일까?


휴대폰은 발광하는 화면에서 글을 읽는다.

그에 비해 종이책은 나무에 새겨져 있고 우리가 눈동자를 굴려 글을 따라간다.


눈동자를 굴리며 행과 열을 쫒고 때론 여백에 내 생각을 적기도 하며 줄을 긋기도 하고

(요즘은 알라딘에 처분할 생각에 아무것도 안 쓴다) 어떤 쪽 앞에서는 내 생각과 부딪히기도 하고

잠시 멈추어서 저자의 생각을 음미하고 먹기도 한다.( 애벌레가 간절히 잎을 먹듯이)


그래서 전자책이나 휴대폰으로 보는 책이 종이책 보다 매력이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축구경기나 음악회를 방송으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보는 수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류는 계속 책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책을 맛있게 먹는다.


책이 음식 같다고 생각한 것은 요리를 알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요리는 먼저 주제를 생각하고 목표를 정한 다음 신선한 재료를 구하고 어떤 조미료를 첨가할 것인가 생각하고 휘리릭 강한 불을 사용할지 낮고 오랜 불을 사용할지 정해야 한다. (나는 초보 가족 요리사다)


또한 음식을 만들면 멋진 식탁을 구성해야 한다. 돈들이지 않고 주변의 소품들을 활용해 정갈하고 멋진 맛의

순간을 즐기도록 돕는 일이 가정 셰프 Chef de cusine, Head cook의 임무다.


그런 맥락에서 서점은 음식백화점 같다.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가득한 책 냄새가 향기롭게 몰아닥친다.

장르별로 정리된 서가를 따라가면 지금 막 요리한, 새로 나온 책들은 자기 향과 맛이 독자들에게 선택되길

간절히 요청한다.


장사에 능한 전문 서점 관리자들은 부자 출판사와 인기 작가 세프의 작품부터 제일 앞자리에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하고 최고의 작품이라고 호객한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다.


두리번거리다,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 앞에 선다.

새로운 요리들이 많이 나왔다. 하나씩 만져보고 책 세프들의 땀과 수고를 느껴본다.

그들이 여기까지 외로운 자판기 앞에 앉아 보냈을 기나긴 시간과 고뇌를 음미한다.

편집자의 지휘 흔적과 구석에 배인 스태프들의 수줍은 정성도 함께 녹아져 새겨있다.


이제 먹어봐야 한다.

먹음직하고 보암직 한 것이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목차와 저자의 인생에 혀를 대본다.

저자가 너무 퍽퍽한 인생을 살아도 요리의 맛은 쓰고, 저자가 너무 잘 나도 요리는 번들 거리기만 할 뿐 별로 맛이 없다. 서문과 Chapter 1은 이 책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게 만든다.


여기저기 맛을 보고 마지막에는 종이의 질감마저 맛을 본다. 혀가 아닌 손끝으로.

역시 책은 멋진 디자인과 좋은 나무로 만들어야 맛있다.


물론 최종적 맛은 침대 위에서 저자와 만나 동행하는 순간이다.


품위 있는 모습을 원하는가?


책을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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