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이야기
좋게 뜬 사람, 나쁘게 뜬 사람.
갑자기 세상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을 본다.
강한 시선을 받게 되면 출세하기도 하지만 그 반대는 여론에게 죽임도 당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좀 무서운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종신 대통령의 이름은 여 론 씨다.
여론 씨의 실체는 없다. 다만 언론이 형제 여론을 가지고 담론을 만들면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네티즌도 그렇다.
이 분은 필명이 네티즌이다. 이 분은 작가다.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댓글이다.
작가이긴 한데 문법도 없고, 초고-정리-퇴고-탈고의 순서도 없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세게 막 쓰면 된다.
댓글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시사 토론하고 입대하면 댓글부대가 된다.
나라가 섬뜩하다.
세상을 등지고 살 수는 없지만 어깨 너머 보이는 세상을 외면하지 못하다가
나처럼 좀 부족한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몇 달 안 된 것 같다.
좋은 글도 참 많고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도 읽어 보았다.
다른 한편으론 서점가에 즐비한 닭살 돋는 글 유희와 고민이 없는 작품도 읽어 보았다.
다행히 브런치는 좋은 작가들이 가끔 여기저기서 툭 하고 나와 응원하고 격려해서 좋고
휴대폰에 정갈한 서체로 자신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고교시절 우리 반에는 만세가 있었다.
만세는 우리 반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당시 우열반이 있던 학교에 다녀서 이과와 문과에 각 한 개뿐인 우반에 들어가려면 정신 차려야 했다.
정말로 교훈이 " 니 성적에 잠이오니?"가 맞던 시절이었다.
우반 이 약 60명이었으니 학기마다 지난 학기 성적이 학년의 60등 안에 들어야 된다.
최소 우반에 안착하면 명문 서울, 연고대는 대부분 합격하고 혹시 거기 못가도 나머지 좋은 대학에
거뜬히 합격하는 편이었다.
그 잘난 우반에 있을 때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오직 공부만 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친구가 펜트하우스라는 야한 외국 잡지를 가져왔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우~하고 몰려들어
한번 더 보려고 혈안이 되는데 그 친구는 저쪽에서 혼자 오롯이 앉아 공부만 했다.
그 모습을 본 잡지 가져온 친구가 공부하던 친구 책상에 잡지를 휙~ 하고 던져 버렸다.
날아간 잡지가 그 친구의 책상에 턱 펼쳐지고 그 잡지에는 야한 외국 모델의 사진이 떡 하니 드러났다.
일순간 모두가 숨을 참았는지 적막이 몇 초 흐르고 친구의 반응을 보려고 모두가 침을 꼴깍 삼켰다.
기다리던 친구의 반응은 놀라웠다.
야한 잡지를 흘끗 보더니 침착하게 손으로 휙 쓸어내며 바닥으로 밀쳤다.
와~하는 함성과 웃음소리가 교실 전체를 휘감았다.
급우들 상상은 잡지에 저 친구가 어떻게 반응할까? 놀라 자빠질걸? 놀라기는커녕 무심한 행동이
우스꽝 스러웠던 모양이다. 조롱의 웃음 속에는 넌 사내자식이 뭐 그러냐 라는 비웃음도 들어 있었다.
그 친구는 그날부터 왕따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진짜 사건은 예상치 못한 날에 찾아왔다.
그때도 일본을 성토하는 <독도는 우리 땅> 결의 대회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우리 학교에서 열렸다.
전교생이 교련복 입고 군대처럼 운동장에 정렬한 뒤 학생들의 결연한 <일본 싫어>를 전국에 방송하려고
공영방송에서 방송 카메라도 설치했다.
예정된 시간에 학도호국단 단장 학생이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고 <독도수호>를 다짐한 뒤 하얀 종이에 손가락을 물어뜯어 혈서를 쓰고, 마지막으로 전교생이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하면 끝나는 행사였다.
연습도 미리 많이 했다. "대한민국 만세"하고 호국 단장 학생이 외치면 마음으로 하나 둘 세고 힘 있게 " 만세" "만세" "만세" 하면 되는 쉬운 일이었다.
드디어 연습 아닌 실전이 왔다.
대표가 선창을 하고 연습한 대로 만세를 하려고 고개를 까닥거리며 박자를 세는데
누군가 혼자 먼저 " 만세" 하고 모기 같은 목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갑자기 전교생이 와~ 하하하 하면서 큰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방송 녹화 중인데 이건 큰 망신이었는지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 다시 해"
" 그리고 아까 만세 너 교무실로 와"
그때부터 만세는 만세가 되었다.
만세는 좀 모자라 보이지만 성적도 우수하고 자기 생각도 있고 실수도 하는 보통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대중에게 찍히면 뭔가 모자라는 사람 부족한 사람이 된다.
군중이 뭐길래 한 사람의 존재를 쥐락펴락 할까?
대중에게 좀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때로는 지나친 선착순 인생에 지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만 내달리지 말고 옆으로도 가보고 쉬어도 보고 그렇게 해도 인생 망하지 않는다.
선착순 이제 그만하자.
인생이 갑자기 좋게 뜨는 사람은 그동안 그 길을 꾸준히 걸어온 것이고
나쁘게 뜨는 사람도 나쁜 길을 꾸준히 걸어온 결괴다.
좋게 뜨면 겸손하게 감사하며 가면 되고 나쁘게 뜨면 다시 털고 또 걸으면 된다.
낡은 겨울에 만세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