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코카스파니엘 루이 이야기

by 강노아

1장.

비행이 순조로울 것을 바라며 이륙했다.


엔진이 우렁찬 포효를 마치고 공들여 올라온 능선 끝에 서면 조용한 목소리로 비상이 끝났음을

알려준다. 그렇게 만난 하늘은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자유로 왔다.


70미터 2톤 고래처럼 바다 닮은 하늘을 유영한다.

나를 감싼 동체와 하나 됨을 느끼며 부양의 쾌감도 손가락 끝에 익숙하게 다가온다.


자동 비행으로 전환되기 전, 물고기 잡아채던 손 맛 같은 조종간을 조금 더 느끼곤 했다.

정상적인 비행과 사고 위험 사이에는 항상 탄산수 같은 긴장이 자리를 차지했다.


어려서부터 하늘을 동경하더니 결국 조종사가 되었다.

공군을 전역하고 이민을 떠나 델타항공에서 지내다 정년이 가까운 나이에

국내 항공사로 돌아온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한국 하늘을 비행하고 착륙하는 기쁨은 낯선 하늘을 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인천타워의 한국식 영어나, 정갈한 외모의 승무원들도 정겹고 좋았다.


나이 들며 두뇌와 체력이 바닥나자 짧은 비행시간이 내 몸에 맞았다.

다시 생각해도 옳은 선택이었다. 고국에서 직업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었다.

길을 찾고 나를 찾는 일은 비행이나 인생이나 비슷했다.


전투기 조종을 그만둔 것은 계급사회의 지루함과 동료들의 잦은 죽음 때문이었다.

비행사고로 죽음을 보는 상실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것은 타인의 죽음이 아닌 나의 죽음이며 그 슬픔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솔직이 자신이 없었다.


이런 죽음의 반복도 싫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자원해서 수송기로 옮겼다.

엄격한 공군은 평범치 않은 기종변경 요청을 의아해했다.

하지만 간절한 노력과 선배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허락을 얻었다.


수송기는 전투기에 비해 여유가 많았다.

비행은 항로를 따라 이착륙을 하는 민항기와 비슷해서 민항 경력을 쌓는데 도움이 되었다.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이 많아 나는 정신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비행을 오래 하다 보니 몸이 자꾸 기계가 되어 갔다.

이를 이겨보려고 독서와 자기 성찰 신앙에 심취했다.

나는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나만의 공간과 정신세계를 지켜내고 있었다.

대대원들은 온화하고 충실하며, 전투조종사의 치열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죽음은 예고 없이 방문했다.

우리 대대 수송기가 추락했다.

군의관과 군목, 우리는 영면한 전우들을 만났다.

사병이 쓰던 빈 내무반에 다섯 명의 동료들이 누워 있었다.

부검은 하지 않겠지만 시신 검안을 위해 얼굴은 보이도록 하얀 천으로 덮어놓았다.

비행사고에서 드문 일이지만 시신들은 깨끗했다.


사체 강직이 시작되어 검게 변해가는 딱딱한 얼굴 말고는 잠자는 듯한 모습이었다.

군의관은 냉정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수술 장갑을 끼고 얼굴과 상처를 만지며 시신의 상태를 기록했다.


군목은 구석에서 애써 참지만 울고 있었다. 죽은 김소령은 그의 이웃이었다.

군목의 낮은 탄식과 눈물은 애써 침착을 지키던 우리 모두를 무너트려 버렸다.

대대장부터 현장에 있던 대대원 모두 낮은 소리로 오열하기 시작했다.


" 목사님, 그만 우세요, 저희한테 힘을 주셔야죠"


대대장 말에 젊은 군목은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오늘 아침, 이 친구 득남하고 저에게 축하 인사받고 너무 좋아했어요"


" 신앙생활도 열심이었고, 왜 여기서"


군목은 하나님을 원망하듯 이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한 해 한 두 번은 비행사고를 겪었다.

지난번에도 응급환자 후송 임무로 야간 출격한 헬기가 악천후에 실종되어

조종사 두 명과 정비사 군의관을 동시에 잃었다.


군의관 아버지는 목사였다.


“저는 장례식 할 때마다 하나님 섭리를 설교했는데 아들이 이렇게 가니 그 하나님을 이해 못하겠습니다.

이 녀석 믿음이 좋아 전역하면 낙도로 가서 의료 봉사하겠다던 녀석입니다.”


죽음은 반복은 더 아픈 상처가 되어 더 힘들게 하였다.


오늘도 비행 고도를 높이고 순항고도에 들어서면,

비행 루틴 Routine처럼 지난 죽음의 상념들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던 나에게 그 녀석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