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에게 불쑥 나타난 4개월 강아지 루이는 유리에 가두어져 있었다.
사각형은 아기의 인큐베이터 같지만 감옥이었다.
몸이 더 커지기 전에 누군가 만나야 했다.
옆 칸의 아이와 또 다른 아이들.
“여보, 저 아이 어때요?”
“글쎄 좀 약해 보이지 않아?”
아내는 처음부터 그 아이를 눈여겨보아 둔 모양이다.
생기 있는 녀석은 사람이 나타나면 꺼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반해
이 녀석은 지치고 허기진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너무 작고 나이 들어 보였다.
게다가 다른 집에서 두 달이나 있다가 파향 당한 아이였다고 했다.
녀석의 유리 집 에는 손으로 쓴 큼직한 글씨가 붙어 있었다.
“코카 스파니엘, SALE, 예방접종 무료”
운명 같은 만남은 나의 인생을 적잖이 흔들어 놓았고 사건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3.
예상한 대로 비행은 순조로 왔다.
여행객들은 저마다 기대를 안고 비행을 시작하지만 조종사들은 생명에 대한 무거운 책임으로
이륙과 착륙을 반복하며 같으나,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습관적인 업무와 구별된 고도의 집중력도 필요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비행기에 사람이 타려면 주사를 놔서 몸을 작게 만들고, 비행장에 돌아오면 주사를 다시 맞아
몸이 원래대로 커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어린 왕자처럼 살았다.
나의 잘못된 상상이 깨진 것은, 동네 형들과 도봉산을 따라갔다가 본 것 때문이었다.
정상 부근에 조그맣던 헬리콥터 한 대가 갑자기 큰 집채처럼 착륙했다.
그곳에 거인 같은 미군들이 헬기에서 내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 그 장면을 한참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갈 때 주사를 맞고 몸을 작게 만들어 헬기로 가지는 않았다.
그때 분명히 알았다.
사람을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높이 올라가면 작아진다는 것을.
좀 더 커서 중학생 때, 배구 시합을 하다 여객기가 비행운을 흘리고 높이 나는 것을 보고
멍하니 서 있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비행기 크기를 보고 고도를 예측할 만한 지능을 가진 때였다
“야! 머야 너!” 친구들의 원성을 듣고 정신 차릴 땐, 한 점 차이 게임에 진 뒤였다.
세월은 흘러 공군 사관생도가 되었고 오랜만에 길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너 옛날에 비행기 좋아해서 하늘 보고 멍 때리더니 결국 공군이 되었구나”
“CAVOK” ( or CAVU: Ceiling and visibility unlimited, 구름과 시야가 최상이란 표시)
안전한 고도에 다다랐다. 이제 비행은 부기장에게 다 맡겨도 된다.
“기장님, 오늘 같은 날은 왜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죠?”
“ 뭐가 먹고 싶은데?”
“글쎄요, 하노이는 많이 가봐서 이젠 끌리는 음식도 없고,
호텔에서 정말 근사한 스테이크 Steak 나 와인 한잔 하면 좋겠어요”
“오, 나도 먹고 싶은걸?”
부기장은 개성 있는 친구다.
의대에 진학했지만 조종사가 되고 싶어 자퇴하고 민항기 조종사가 되었다.
평범한 나와 많이 달랐다.
학생조종사 시절 평범한 나는 맞으면서도 한마디 불평 안 하고 살았다.
“바이져 Visor 올려”
선바이저 Sun Visor를 올리면 훅 주먹이 날아왔고 비행 중에 매 맞고 코피 흘리는 일쯤은
자신의 생명과, 국가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당연한 일이었다.
헤드폰 너머 교관의 거친 욕설과 숨소리는 공포였다.
그러나 그땐 젊고 평범해서 참았다. 그것이 곧 열정과 패기라고 생각해서였다.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개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비범한 부기장을 보면 늘 부러웠다.
“기장님, 눈 좀 붙이세요.”
부기장은 생각하느라 멍 해 보이는 내가 졸고 있는 줄 알았나 보다.
“자넨 반려견 좋아하나?”
“네? 갑자기 웬 개요?”
4
옛날 그 녀석 이름은 페루였다.
페루는 내가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다.
짜리 몽땅 하고 품종을 가늠하기 곤란한 중소형 견이었다.
바둑이처럼 검은 얼룩을 갖고 태어난 어린 녀석을 아버지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다.
어른들은 이 아이를 조그만 뒷마당에 묶어 두었다.
그때 개는 집을 지키고 사람의 남은 음식을 먹어주고 적당히 크면 팔아서 돈이 되는
동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페루는 친구지 개가 아니었다. 그런 나를 아버지는 못 마땅해했다.
어느 날 페루가 사라졌다.
“엄마! 페루 어디 갔어?”
내 질문에 엄마는 한참 말이 없었다.
“페루 죽었다”
......
“그게 무슨 말 이야?”
순간 내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자기가 목줄 풀고 대문 틈으로 나갔다가 요 앞에서 교통사고 당했어”
“옆 공터에 가마니로 덮어 놨으니 가 봐라”
내 인생에 처음 찾아온 죽음의 상처였다.
페루는 가마니에 덮여 있었다.
그 녀석 맞는지 용기를 내어 확인해야 했다.
페루다……
눈은 동그랗게 뜨고 피 묻은 자국과 함께 사체는 굳어 있었다.
동물이 죽으면 나무처럼 식물이 되는 것을 그때 알았다.
페루의 사체는 얼마 안 돼 사라졌다. 동네 사람들이 먹으려고 가지고 갔다.
그 날부터 한 주 동안 매일 울었다.
어린 나이에, 상실과 죽음의 쓴 맛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 사건 이후 점점 말이 없어지고 혼자가 되었다.
칼날 같은 예민함만 더 깊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대형 잡종견 누렁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개장수 집에서 구해온 것 같았다.
내 슬픔에 반응한 아버지의 커다란 배려였다.
새로 들어온 누렁이는 낯선 환경에 꼼짝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 녀석에게 관심이 없었다.
페루를 대신할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누렁이를 훈련시킨다고 맛난 밥을 만들어 먹이고 뒷마당의 분위기를 이전처럼 바꾸고 싶어 했지만
누렁이는 끝내 개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누렁이는 개장수의 자전거에 묶여 다시 끌려 나갔다.
그때 처음 누렁이 눈을 보았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가기 싫다고 분명히 말했다.
나는 눈을 돌려 못 본 척 녀석을 외면했다.
하지만 너무 슬펐다.
페루 죽음에 누렁이 눈빛을 외면한 죄책감까지 더 해 어린 마음은 더 큰 상처를 안게 되었다.
5
비행은 하강 절차에 들어갔다.
“Korean Air 246 descent and Maintain flight level 160 (16000ft)”
비행하며 부기장과 개와 늑대에 대해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주의 깊게 끄덕이고 있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일방적인 내 주장에 끄덕이기만 했다.
짧은 비행이지만 고래 같은 항공기를 땅에 내려놔야 안심할 수 있었다.
“승객 여러분 기장입니다. 우리 항공기는 약 30분 후에 하노이 공항에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현재 하노이 공항은 맑음, 온도는 섭씨 32도, 현지시간은 오후 3시 35분입니다.
남은 시간 편안한 여행 되시고 다음 여행에서도 만나 뵙길 희망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플랩 내리는 소리, 바퀴 내리는 소리, 관제탑과의 교신 , 엔진의 미세한 차이나는 소리까지도 헤드폰 너머로
나는 다 알 수 있다. 비행기가 문제가 있는지 공중에 자세가 적당한지 착륙 시 랜딩기어와 접지면에 닿을 때
그 소리가 온전한지도 난 눈을 감고 이 비행의 처음과 끝을 다 느끼고 안다.
“수고하셨습니다.”
무사한 오늘도 하루를 덤으로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