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찾아든

by 강노아

6


“여보 이 녀석 데려갑시다”

유리창에 갇혀 자기 의사표현마저 못할 만큼 지친 이 녀석이 왠지 내 마음에 끌렸다.

코카 스파니엘 특유의 귀족스러운 모습 때문에, 이름마저 루이라고 지어주고, 우린 새 식구가 되었다.


곧 교수로 발령 나서 귀국할 딸, 한나 때문에, 한나 동생처럼 루이를 정말 소중하게 기르기 시작했다.

개는 주인을 닮아 간다. 루이는 나를 닮기 시작했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치 내 모습 같았다.


하지만 루이는 처음부터 마음문을 열지 않았다. 오직 마음을 연 것은 먹는 일뿐이었다.

이 견공이 식탐이 있는 종인 것은 알지만 유리상자 안에서 많이 굶은 것이 틀림없었다.

몸이 커지면 팔리지 않으니까 최소한의 급여를 했었을 것이다.


어쩌면 어릴 때 떠나보낸 페루에 대한 슬픈 기억 때문에 단단하게 가슴으로 돌봐주고 싶었다.

앞으로 15년을 사랑하며 같이 산다 해도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확률이 크기 때문에 매 순간을

조금도 잃고 싶지 않았다.


아내는 더 바빠졌다.

한나를 미국에서 키울 때 할일많던 그녀가 한국에 와서는 갱년기와 무료함으로 힘들어 하다가,

루이는 그녀 삶에 활력이 되었다.

아니 활력 그 이상이었다. 루이 똥을 치우면서 흥얼거리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요즘 당신 뭐가 막 신나?”

“집중할 일이 생겼잖아요? 당신도 나한테 관심없고, 루이가 생기니 좋지요, 호호”


이건 틀림없이 집안의 경사다.

부인이 교회라도 열심히 다니면 한눈팔 일이 없어서 좋다는 동료들 말 때문이 아니라 늘그막이

흥미를 주는 일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 같았다.

남은 모성애를 마지막 한 방울이라도 또 다른 생명에게 나누어 주고 픈 본능 같았다.


루이로 인해 나의 가족 서열이 또 한 단계 내려갔다.

하지만 루이가 가족의 활력을 되찾아 준 것은 틀림이 없었다.

가족들에게 기쁨은 제비처럼 찾아들었다.


루이와의 만남은 가족의 하루 시간표를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아내는 나를 떠나 침대 방바닥에 루이와 함께 둥지를 틀었다.

침대만큼은 개에게 개방한 적이 없던 나에게 이 문제는 극히 당황스러웠다.


루이는 아직 어린이라 미국에서 가져온 키 높은 우리 침대에 뛰어오를 수 없으니 내 최후의 방어선은 지켜진 셈이지만, 집안의 최고 통치자인 나는 저 쪼끄만 녀석에게 영부인 아내를 잃었다.


아내는 모성애가 가득해서 무엇이든 자기 손에 들어온 것은 아끼고 정성으로 보살폈다.

심지어 물건도 한번 사면 오랫동안 바꾸질 않았다.

그녀에 비해 난 새것을 좋아하고 오래 쓰는 것은 반드시 업그레이드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녀는 엔틱을 좋아해서 가구는 항상 영국의 황실을 연상하는 집으로 꾸며 놓았다.

전생에 황실의 시녀였는지 황후였는지 알 길이 없으나, 그녀 덕분에 나는 옛날 것과 오래된 것에 정신이 깃드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건이 오래되면 그 속에 정신이 깃드는 것은 대단히 감성적 발상이지만 내가 비행기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었다.


나는 항상 비행하기 전에 비행기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어젯밤은 잘 잤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아내는 연민도 많았다.

나랑 결혼을 안 했으면 말년에 유기견들을 모아 개들을 키웠는지 모른다.

이렇게 개를 지극히 좋아하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결혼을 주저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너무 늦었다.

나도 개를 엄청나게 더 좋아하기 시작했으니 루이와 아내는 나를 ‘개 인류’로 변화시킨 주범들이었다.


“내가 다른 건 다 양보해도 루이랑 침대에서 자는 것은 이혼사유란 것만 알아줘”

“옛써! Yes Sir”


아내는 능청맞게 내 의도를 알면서도 피해 가는 기술도 있었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루이와 함께 침대를 점령할지 긴장을 하며 지켜봐야만 했다.

나는 성격이 깔끔해서 개와 침대의 동침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

산책 때마다 더러운 보도블록 때문에 때 낀 루이 발바닥은 정말 싫었다.


난 매일 핸드폰 액정화면을 화장지에 알코올을 적셔 소독하고 출근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자동차 핸들에 박테리아 제거 스프레이를 뿌리고 항공기 조종간도 나만의 청소를 다시 해야 직성이 풀렸다. 미국에서나 지금이나 침대는 특급호텔의 수준을 유지했다.

그것도 하얀색 시트를 말이다.


내가 이 직업을 가진 가장 좋은 점 하나는, 비행을 마치고 만나는 자유와 하얀 시트의 호텔방이었다.

하얀색은 긴장으로 무장한 정신을 해체시킨다. 나는 속옷도 위아래 전부 하얀색이다.

내 살을 맞대고 있는 최초의 옷은 청결하고 완벽해야 했다. 마음 빼고 주변의 것들이 전부 하얀듯 했다.

이 습관들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속옷을 삶아서 빨고 항상 다려 주었기 때문에 생긴 버릇 같았다.

그 하얀색의 무결점에 루이가 올라와서 노란색 오줌으로 결점을 창조하면 그건 정말 인생의 흑점이었다.

다행스럽게 아내는 루이를 침대 위로 못 올라오게 하였다.

루이가 점점 키가 커지자 점프 실력도 함께 성장하기 시작 하였다.

견공과 인간의 묵시적 계약은 조금씩 무효가 되고 있었다.


얼마 안가 나는 침대를 루이에게 점령당했다.

점령군 대장 루이 공은 정말 태연한 얼굴로 우리 침대 위에서 노란 오줌을 평화롭게 누고 있었다.


“아~ 시원하시겠습니다, 견 선생……”


이런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일까? 내려놓는 것일까? 비우는 것일까?


아내는 나의 표정을 보며 그냥 깔깔대며 웃고 만 있었다.

그날의 점령으로 루이는 침대의 주인이 되었다. 대신 조건은, 몸을 잘 씻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3살 아기의 하얀색 러닝셔츠를 사서 루이의 잠옷으로 개조하였다.


“참 유난 떠십니다. 기장님 호호”


그래도 이번의 허용은 나의 결벽스러운 습관을 넘어서는, 스스로도 놀란 충격적 결정이었다.


루이는 이렇게 우리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아침산책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이나, 평소보다 많이 걷는 것은 덤이었다.

덤으로 얻어진 행복감들은, 저절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게 되는 사랑으로 옮아갔다.

하늘을 날기 위해 항상 정확하고 빈틈없어야 하는 직업적 성격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로 변하고 있었다.

이 괜찮음의 허용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교훈은 무시한 채……


이전 02화코카, 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