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기억

by 강노아

7


“Mayday, Mayday, Mayday”

이륙 중에 새가 한쪽 엔진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위기가 주는 긴장과 함께 아드레날린이 밀려들어왔다.

이 거대 고래의 비행을 책임지는 사람은 바로 나다. 나의 최고 자산은 침착한 대처와 판단이었다.


“두두두… 쿵”


한 번의 강한 충격과 함께 두 번째 굉음이 들려왔다. 계기판들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평소 같지 않은 소리들은 죽음의 날카로운 괴성과 닮아 있었다. 요동치는 기체를 재빠르게 안정시키고 절차에 따라 조치를 해야 했다.

부기장은 나보다 더 긴장했다. 평소 얼굴이 아니었다.


“코리안 에어 1549, 조류충돌로 긴급 회항합니다.”

“오케이, 코리안 에어 1549, 활주로 33R에 착륙하세요. 바람은 300에 5kt”

“코리안 에어 1549, 활주로에 비상차량도 출동합니다. 엔진 두 개가 다 문제입니까?

“아니요, 아직 한쪽 엔진은 무사하고 왼쪽 엔진 출력은 줄였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체크리스트 처리하고 연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케이, 코리아 에어 1549, 스탠딩 바이”


안전한 비행기 승객들이 어느 순간 모두 죽을 수 있다는 것은 항공 종사자들 만이 아는 직감이다. 항상 골몰하게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여러 가지 전체적인 그림을 자주 놓치기에 부기장과 함께 빈틈없이 이 상황에 집중해야 했다. 먼저 승객들을 안정시켜야 한다.


“승객 여러분, 기장입니다. 저희 항공기는 기술적인 문제로 출발 공항으로 회항하고 있습니다. 현재 충분히 안전한 상황이니 자리에 앉아서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사고의 순간은 이전에 미국 항공사 근무 때 LA공항에서도 있었다. 그날도 절차를 마치고 혼잡한 공항에서 이륙 대기를 마치고, 항공기를 가속하며 출발하는 순간, 활주로를 건너는 콘티넨탈 에어의 항공기가 앞을 가로막았다. 아주 드문 일이었다. 반사적으로 기수를 들어 사고를 피했지만 그날의 사고를 피한 건 은총이었다.

연료가 적게 들어있어 기적적으로 뜰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만약 앞의 항공기 꼬리날개라도 스쳤다면 내가 책임질 승객 162명의 생명과 함께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었다.


지금도 부기장에게 위기상황에서 노련하게 대처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고, 행여 내 눈빛에 조금이나마 그의 두려움에 동조하는 불안이 들켰다면 서둘러서 그것을 지워야 했다. 다행히 부기장은 아까 와는 다르게 얼굴빛이 되돌아왔다.


“기장님은 참 침착하시네요, 저는 잠깐 쫄았습니다.”

“조류충돌은 자주 있는 일이야, 쫄지만 않으면 돼, 오케이?”


부기장은 내 눈빛 틈새로 새어 나간 약간의 은밀한 나의 쫄음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조류충돌은 계절에 따라 빈번 하지만 최소한의 피해만으로 해결되면 어차피 엔진 손상은 보험사와 회사가 해결하면 되는 일이었다.


“Approaching Minimums One hundred, 50,40,30,20, ten”


“쿵”


온전한 쪽 엔진의 역 추진 장치를 작동시키고 자동 브레이크를 수동으로 전환해서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성공이다. 바퀴가 지면에 닿자 감속과 함께 긴장도 서서히 사라졌다. 소방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요란하게 달려 붙는다. 축하와 기쁨의 탄성 같았다. 나는 살아서, 땅에서 잠깐 모두를 위해 짧은 기도를 드렸다. 마침내 게이트로 이동해 무사히 승객들을 하기 시키고 사무실에서 기장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고를 당할 때마다 항상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죽음으로 이어지는 사고는 감당할 재간이 없다. 하지만 죽음을 막아설 수 있는 책임과 힘도 아직은 내가 가지고 있었다. 사고를 넘어설 때마다, 사고와 죽음이 결국에는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또한, 우리에게 찾아오는 사고가 늘 해결되지 않음도 너무 많이 잘 알고 있다.


8.


루이와 가족들이 캠핑을 가기로 한 것은 정말 많은 생각과 노력을 통해 결심한 일이었다. 이 계획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미국에 사는 아들 부부가 한국 방문을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아들 브라얀은 대학을 졸업하고 제법 안정된 직장에 다녔다. 녀석은 백인 며느리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며느리는 편견을 극복할 유전자를 가진 것인지 루이의 등장보다 파격적인 인물이었다. 다정다감할 뿐 아니라 동양적 사상에 심취할 만큼 한국을 좋아했다.

사찰음식에 반해 템플 스테이도 혼자 거뜬히 다녀오는 아주 특이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녀가 새로운 동양의 음식 맛을 느낄 때는 놀라움에 가득 찬 얼굴과 신을 만난 듯한 경이로운 표정을 하고 소리 없이 “오 마이 갓”을 입모양만 가지고 표현하는 아주 독특한 여성 이기도 하였다. 며느리 덕분에 우리 가족은 더 많은 할 말들이 생겼고 그녀가 있는 그곳은 영어와 한국어가 뒤엉켜진 혼란한 바벨탑 같았다. 그래서 가족은 웃음이 훨씬 많아졌다.


며느리 같은 애가 혹시 내 비행의 부기장이라도 된다면 기나긴 비행시간은 유쾌하고 생기를 찾을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사려 깊고 명랑한 사람이 좋다. 이 명랑함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며느리를 보고 알았다. 두 사람이 함께 오는 일은 가족이 완전체로 결합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가족들의 행사가 되었다. 많이 웃고, 떠들고 가족 전부가 잠깐이나마 행복 바이러스에 찌들어서 지낼 작정이었다. 오랜 인터넷 탐색 끝에 인천 앞바다 소야도로 목적지를 정했다. 어쩌면 자주 착륙하는 고도에서 신도, 시도, 모도, 장봉도와 함께 희미하게 보였던 섬의 기억이 이 섬을 본능적으로 선택하게 한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선택은 사람이 많으면 스트레스를 빨리 느끼는 나의 대인기피증의 결과 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은 맛집을 가도 사람들이 줄 서 있으면 바로 그 식당을 포기해서, 아내와 자주 다툰 적이 있었다. 실제로 흥남부두 철수작전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를 보다 배에 치열하게 오르려고 사람들이 엉키고 부딪히는 장면에서 나는 아내에게 소곤거렸다.


“나는 저러면 안 가고 그냥 남아……”


소야도는 그런 의미에서 조용한 섬이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 검색하고 현장에서 정보와 같은 현실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인터넷 정보는 거의 다 과장되거나 기대 이하였다. 그래서 소야도는 기대 반 걱정 반, 그래도 섬 여행의 총괄 책임자는 또 역시 나였다. 시작부터 기대는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배에 차를 실어가는 매력적인 항해였으나, 시끄러운 배의 엔진 소리에 강렬한 짖음으로 반항하는 루이의 악쓰는 소리가 여행의 서곡이었다. 루이는 갈매기도 싫어해 배를 향해 과자를 먹으려고 달려드는 갈매기를 잡으려고 역시나 심하게 짖어 마취를 해야 할걸 그랬나 하는 장난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왈왈, 부웅~부웅……”


여행의 소리들은 마음의 즐거움 때문에 소음이 아닌 배와 개의 묘한 조화로 어우러졌다. 아들과 며느리는 한국의 서해안 섬으로 가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낚싯배를 렌트 해 바다낚시도 비밀리에 예약해 놓았다. 며느리는 애리조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한국 바다는 그녀에게 매력을 주기엔 충분했다. 갈매기를 싫어하는 루이와 아내가 배 안에 적재된 차에 남기로 하고 배는 소야도로 항해를 길게 이어갔다.

며느리는 누구나 해보는 갈매기에게 과자 주는 놀이에 빠져들었다. 아들 내외가 갈매기와 잘 노는 모습 때문에 루이를 데리고 나와 볼 생각으로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적재된 차들 사이에 승용차 안에서 루이는 여전히 짖어 대고 있었다. “이 녀석, 아직도 힘들어하는구나. 괜찮아?” 불행히도 우리 차가 배의 엔진과 가까워 그 엔진의 낮은 소음을 루이는 힘들어하고 있었다. 루이는 저 소리도 위협으로 인식하고 반응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뱃길은 예상보다 조금 길고 지루했다. 가끔 즐거울 것을 예상하면 안 좋은 일들이 생기고, 기대하지 않으면 기대 이상의 즐거움이 찾아온다.


중고등학교 때 아들만 둘인 우리 집에 아버지가 정한 밤 9시 통금시간이 있었다.


“밤 9시 5분”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시계는 그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5분 지각이면 혼나지 않을 것이라 좋은

예감을 믿고 왔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날은 집안과 가까이 지내는 아버지 고향 가족들, 게다가 내가 좋아하던 누나도 함께 방문해 있었다. “지금 몇 시야?” 아버지는 당당하고 거친 목소리를 던졌다.


“9시……”


태권도 유단자 아버지의 돌려차기가 날아왔다. “쿵” 나는 뒤로 와당탕 넘어졌다. 아버지는 월남한 북한 사람으로 강인한 처세술과 생존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얼마나 엄한 교육을 시키는지 시범적으로 보여줄 생각 같았다. 하지만 그날은 심한 오버였다. 아픈 것보다, 누나들 앞에서 맞고 넘어진 게 너무도 창피했다. “잘못했습니다.”“앞으로 조심해” 아버지가 그때부터 더 싫어졌다. 그 후론 집에 들어올 시간에 지각을 하면 죽을 각오를 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죽을 각오를 하는 날은 아무 일이 없고 살 각오를 하면 그날은 죽는 날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반대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도 루이가 배를 타고 즐거울 것을 기대했는데 이상한 반대 상황을 만나는 셈이었다. 지루함이 피로감으로 바뀌려는 순간 배는 우리를 섬에 토해 놓았다. 이를 제일 기뻐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루이였다. 하선하는 순간 루이는 배 멀미를 넘어선 소음에서 해방된 것에 대해 기쁨을 대놓고 표현하고 있었다. “왈왈, 우~우……”


선착장에서 캠핑 해변까지는 5분도 안 걸리는 작은 섬이었다. 많은 것들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조용한 해변의 풍광은 기대 이상이었다. 휴가철 앞이라 역시 사람들은 없었다. 날씨도 으스스해서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자연 캠핑을 제대로 즐길 상황이었다.


9


루이가 어릴 때 조용한 곳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려고, 장비도 덜 갖추고 장봉도에 첫 캠핑을 갔었다. 그곳에는 해변가 매점의 진돗개가 목줄을 풀고 탈출해서 주변을 서성이며 유기견처럼 피서객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


그 진돗개 이름이 와리였다. 와리는 여름 내내 피서객들에게 먹이를 얻어먹으며 지냈다. 와리는 그때 루이가 있는 우리 텐트를 그의 거처로 정한 듯싶었다. 아직 어린 루이에게 다가와 격의 없이 어울렸다. 루이는 사나운 진돗개를 그때부터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와리와의 동거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었다. 마치 반려 견 2마리의 가족 같았다. 다행히 주변에 텐트를 친 가족은 노부부였고, 그들은 늙어서 앞도 잘 보지 못하는 작은 노령견을 동반하고 있었다. 강아지 루이와 탈출 견 와리, 그리고 노령견과의 동거는 아주 드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다행히 장봉도의 해변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 해변은 그 들만의 리그, 개판이었다. 와리는 마음이 열린 것인지 우리 주변에 진을 쳤다. 루이는 소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몇 배 큰 개, 와리를 크게 불편 해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와리도 한살이 조금 넘어 성견도 아니었다. 녀석의 관심은 먹을 것이었지만 아내가 자기를 극진히 대접해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와리가 루이와 뒹굴며 서로 장난스러운 과격한 물기 놀이를 할 때 나는 어김없이 다가가 쓰레빠(?)를 들고 와리를 혼냈다. 혹시라도 루이가 다칠까 봐 또 무거운 나만의 책임을 감당하고 있었다. 어린 루이는 아빠가 자기편을 들고, 엄마가 모르는 이웃 개를 챙기는 일에 심술이 났는지 나에게 지독하게 붙어 있었다. 약간은 분리불안을 안고 엄마만 따르던 녀석이 편 가르기를 하고 있었다. 늘 그 아이들은 과격하게 백사장을 가로질러 뛰어다녔다. 항상 루이는 도망자였고 와리는 추격자였다.


한 번은 루이가 바닷가로 쫓기게 되고 와리를 피해 물속에 첨벙 뛰어들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코카 스파니엘의 타고난 유전자, 물을 좋아하는 본능 때문인지 루이는 스스로 배운 적 없는 수영을 하고 있었다.(어쩌면 목숨을 다해 도망가느라 수영을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와리는 바닷가에 살면서도 줄 곳 시골 개로 묶여 지냈기에 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루이에게 대단한 경탄과 와리의 질투 섞인 비탄이 뒤섞여 바닷가 개판은 그렇게 마냥 즐거운 시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바다는 밀물이 들어오면 얼마 못가 썰물이 되고 장봉도 해변은 그렇게 얼굴을 바꾸며 시간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가져다주었다. 삶의 여정도 자연과 닮았다. 인간이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그리고 주어진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지루할지 알고, 신은 끊임없는 반전을 준비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반전들이 인간의 생명과 시간 사이에 가득 넘쳐흘렀다.


장봉도 여행은 와리의 슬픈 엔딩을 가지고 막을 내렸다. 우리와 함께 약간의 경계심만 가진 채 지내던 와리는 주인의 눈에 걸려들었고 주인은 체념한 듯이 말했다. “참 신기하군요. 저 녀석은 몇 달째 우리 곁에 오질 않아 잡을 수가 없었는데, 모르는 두 분에게 저렇게 살갑게 대하네요” “배가 고파서 그런 거 아닌가요?” “아뇨, 캠핑객들 한 테 음식을 잘 구해서 먹는 건 봤어요” 무심한 주인은 와리가 걱정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의 관심은 와리를 어서 잡아 자기 매점 앞 개 집에 묶어 놀 생각뿐이었다. “제가 잡아드릴까요?”


아내는 주인의 품에 가는 것이 와리에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한 듯 말했다. 나는 복화술처럼 입을 오물대며 작은 목소리로 경고의 말을 던졌다. “여보, 와리는 잡히면 묶여서 그냥 1미터 반경에 살다가 죽어, 아니면 복날 팔려갈지도 몰라, 그러니까 제발 잡지 마”


어릴 때 페루가 교통사고로 죽고, 대신 집에 왔다가 적응 못하고 개장수에게 다시 끌려가던 누렁이 눈빛이 그때 마침 생각났다. 그런데 아내는 캠핑 마지막 날, 주인이 잡을 때 쓰라고 쥐어준 몇 미터짜리 노끈을 가지고 마침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와리, 와리~”아내의 부름에 와리가 호기심과 그간의 친분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아내는 간식으로 녀석을 유인해 한걸음 씩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마침내 처음으로 자신의 머리를 만지게 허락해 주는 순간, 아내는 와리의 목줄을 콱 잡았다. 와리는 주인의 환영을 받았다. 그것은 가족을 찾은 기쁨이 아니라 잃어버린 물건을 찾은 환대였다. 내 예상대로 와리는 1미터 개 줄과 썩어가는 개밥그릇, 파리 날리는 개집에서 불행해졌다. 아내가 설거지를 위해 와리 견사 옆에 갈 때마다 와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이한 신음소리를 질러 대며 아내를 보면서 울어 댔다. 그 일을 아내는 몹시 후회했다. 캠핑을 마치면 나중에 다시 와서 와리를 보러 오겠다고 하였지만 아내는 아주 오랫동안 장봉도의 와리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


소야도의 텐트 설치는 거의 다 마치고 모두는 바닷가로 뛰어나가 해변의 열기와 차가운 파도가 엉킨, 발목을 담글 만한 물놀이 말고는 할 것이 없는 바다를 함께 거닐었다. 다 큰 루이도 이번에는 뛰지 않고 우리와 보조를 맞추어 가며 걸어 주었다. 여기가 장봉도 인지 긴가민가 확인하는 듯했다. 루이는 우리와 놀아야 할 때, 참아야 할 때, 우리 마음을 알아주는 신기한 녀석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예쁘게” 하면 어김없이 우리 손에 침이 묻지 않게 살포시 간식을 입으로 쥐어 무는 영특한 아이다. 가르쳐준 일이 없는 수많은 루이의 행동은 혹시 저 녀석 안에 사람이 들어 있지 않나 의심하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루이의 아주 심각하고 결정적인 약점은 달리는 것을 향해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한국의 무법자, 배달 오토바이는 루이의 최대 약점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상대였다. 어디선가 달리는 소리만 나도 루이는 귀를 세우고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오토바이는 그렇다 치고 버스를 따라 달려가는 행동은 심각했다. 심지어 기찻길 옆을 산책하다가 기차를 따라 뛰기도 하고 헬리콥터가 보이면 하늘을 향해 짖으며 달려가곤 하였다. 움직이는 것, 그것들을 위협으로 해석한 행동일지 모른다.

공간을 침투해 들어오는 대상에게서 가족을 지키려는 행동으로 느껴졌다. 바닷가 산책을 마치자 바다에 붙어 있는 산을 끼고 우리는 루이와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버스가 멀리서 보이자, 루이는 또 그 먼 거리의 버스를 보고 추격을 시작했다. 기회가 되면 목줄을 풀어 자유를 주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번에 뛰는 루이는 달랐다.

사고와 이어지는 문제였다.


“루이, 루이, 이리 와, 엄마 간다!”간절한 아내의 외침이 통했다. “조심해야겠어, 산에 깊이 들어가기 전에는 풀지 말고.”아들 내외와 루이는 이번에 처음 만난 것인 데도 신기하게 서로를 가족으로 알아보았다. 특히 루이는 남자를 좋아했다. 브라얀에게 처음 보는 순간부터 오래된 가족을 만난 행동을 보여주었다. 금방 무릎에 앉아 주었고 애교 가득한 혀 놀림으로 브라얀의 손이며 얼굴을 핥아 주었다.


브라얀은 미국에서 지낼 때 유기견 샐리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회개(?) 하기 전에는 혈기 왕성하여 아들에게는 엄하고 자상함을 동시에 지닌 까칠한 아빠였다. 내 아버지의 엄함을 닮지 않으려고 애쓰고 살았지만 피는 진했다. 그런 아들에게 친구가 되라고 그것도 Humane society (유기견을 구조하고 입양하는 기관)에서 맘에 드는 셰퍼드 잡종 아이를 입양했다. 그러나 그땐 우리 가족 모두 개를 좋아만 할 뿐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랑하고 보살펴야 하는지를 몰랐다. 내 상식으로는 아이를 그냥 자유롭게 풀어주는 일만이 가장 행복한 보살핌이라고 생각했다. 산책을 시키고 교감을 하고 여행을 가는 일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샐리는 모기에게 물릴 까 봐 밤에는 지하실에 두었고 낮에는 뒷마당에 풀어놓았다. 그리고 시간에 맞추어 사료와 함께 통조림을 주는 일이 그때는 최선이라 여겼다. 정말 일주일에 한두 번 산책을 시키는 것 말고 샐리는 장봉도의 와리와 같았다.


지금에 와서 장봉도의 묶인 와리를 염려하는 것은 그렇게 키운 샐리에 대한 죄책감 인지 모른다. 샐리는 점점 비만이 되어갔다. 셰퍼드 잡종이라, 몸이 커지기 시작했고 맘만 먹으면 담을 뛰어넘을 기세였다. 샐리의 유일한 소원은 집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우연히 한번 집안에 들어오면, 샐리는 나가기를 거부했다. 사력을 다해 발톱으로 카펫을 움켜쥐고 버티는 레슬링 선수 같았다. “개는 집안에서 사는 게 아니야, 샐리……”

페루를 키우던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어서 까지 나에게 개는 마당에서 사는 동물이었다.

최초의 경험과 습관들이 우리를 얼마나 틀에 가두는지, 인간들이 제한된 환경에서 정보와 문화에 얼마나 무지한지 그때는 미숙해서 그랬다. 그리고 전에 나는 집안의 왕처럼 군림해서 다 내 뜻대로만 지휘를 했다.

샐리가 몸이 다 커서 한살이 넘었을 때 고도 비만도 함께 왔다. 산책을 시작하면 흥분해서 뛰듯이 출발하다가 돌아오는 길은 항상 탈진해서 움직이질 않았다. “아휴, 샐리 미치겠어, 아예 안 움직여……”

족히 5살 정도 남자아이 무게쯤 되는 녀석을 브라얀이 매일 업고 왔다. 지금처럼 개에 대해 조금이나마 유식했더라면 그때 샐리에게 죄를 짓지 않았을 텐데...... 우리가 마당이 없는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자 샐리는 1년여 만에 데리고 왔던 Humane Society에 도로 가져다주었다. 나를 바라보던 샐리의 눈빛은 페루가 떠났을 때 왔다가 끌려가던 누렁이 눈빛과 같았다. 그런 경험을 같이 가진 브라얀은 아빠가 한국에 와서 개를 다시 키우는 것에 많이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미워하던 아버지처럼 브라얀도 내색 안 하며 속으로 나를 미워할지도 모른다. 별과 밤이 우리를 방문했다. 야간 비행 중에 늘 보던 자연의 잔잔한 고요가 여기에도 머물러 있었다. 평화의 모습은 풍요로우며 고운 자태도 가지고 있었다. 조용하며 살랑거리고 때론 말도 건다. 그 속삭임은 태초부터 있어 왔고 고요 가운데 들려온다. 오늘도 파도가 그렇게 말을 한다. 같은 음색으로 같은 속도로 말을 하지만 문장마다 작은 차이를 두어 들릴 때마다 다른 말을 다시 한다. 참 좋다.


자연의 조용한 파도치기가 묘한 조화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평화를 깊이 들이켠다. 앞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혼란한 시간들을 기다리는 쉼표일지도 모른다.


***

장봉도에서 생애 처음 캠프를 갔을 때 루이는 텐트 안에, 와리는 텐트 밖에서 함께 잠을 잤었다. 그때 텐트 근처의 남은 음식 냄새를 맡은 것인지 길 고양이들이 자주 근처를 배회했고 와리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녀석들을 쫓아냈다. 루이는 그때 배운 것인지 텐트 안에서도 이젠 무시해야 할 소리와 침입자의 소리를 분간해 냈다. 그래서 요즘은 텐트 안에서도 태만스럽게 네 다리를 하늘로 하고 잔다. 오늘도 루이는 한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잠들었다. 어스름한 달빛과 한가로운 루이의 자는 모습은 루이 옆에 자는 아내보다 더 좋았다.

새벽을 밀어내더니 아침 햇살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물은 다 빠져나가 드넓은 갯벌을 우아하게 만들고 움직이는 생명들은 부지런히 자기 방식대로 아침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하이, 대디”

“그래 잠자리는 어떻고?”

“참을 만했어요. 전 좋았어요. 이 사람은 조금 불편하고… 하하”


브라얀은 좋아 보였다. 아니 식구들 모두의 얼굴에 아침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어젯밤에 서프라이즈를 공개한 우리는 그 설레는 바다낚시를 예정하고 있었다. 아침산책과 가벼운 아침식사를 미국식으로 하고 채비를 해서 나설 작정이었다. 한국에서의 바다낚시는 사실 나의 작은 버킷 리스트였다. 낚싯배 한 척을 렌트 해 가족들이 함께 방금 잡은 생선을 소주와 초고추장에 발라 넘기는 것은 평소에도 자주 하던 상상이었다. 며느리는 아마 이런 기묘한 한국식 뱃놀이에 당황할 수도 있고 재미있어 할 수도 있다. 그중 제일 기대되는 것은 루이가 활어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다. 루이가 애기 때, 살아있는 게를 풀어주자 그 작은 몸으로 움직이는 괴생명체, 게를 향하여 요란하게 짖고 공격하던 생각이 들어서다. 바다 선상 낚시는 몰래 선장 주머니에 넣어준 팁 때문인지 후덕한 선장의 미소와 함께 시작되었다. 승선을 하자 “서프라이즈, 성공했어요”며느리가 엄지 척을 해 보인다. 배는 아직 출발 전인데 전부 싱글벙글하다.


“출항~”


아내가 해군처럼 큰소리로 외쳤다. 선장은 키가 작고 구리 빛 얼굴을 하고 있었고 누구나 처음 보면 호감을 가질 선량한 미소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목소리가 중 저음으로 안정감마저 있었다. 아내 외침에 크게 너털웃음 소리를 터뜨려 아내의 무색한 개그를 보조해 주었다. 선장의 잘생긴 중 저음의 웃음소리로 오늘 성공 예감은 틀림없을 것 같았다. 회를 잘 뜰 것 같은 기대, 물고기 포인트도 잘 잡아줄 것 같은 상상과 함께 깨끗한 배 안이 마음에 들었다. 목소리 하나에 너무 많은 기대와 위험한 상상을 싣고 배는 조용한 엔진 소리와 함께 바다로 나아갔다. “루이, 루이, 렛츠 고 루이, 고고고” 내가 이 노래를 부르면 루이는 늘 갸우뚱 나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루이가 응원가 마지막에 “우~~~~” 하고 소리를 내면 노래는 절정을 이룬다. 배안에서 루이 응원가를 계속 불렀다.


“낚시 포인트까지 얼마나 걸리죠 선장님?”

“네, 한 30분쯤?”


“좋아, 루이 응원가 떼창으로 한번 더 다 같이~”“루이, 루이, 렛츠고 루이 고고고” 또다시 행복을 빠르게 깊이 들이마셨다. 선장이 애용하는 포인트에 배가 도착했다. 근처에 작은 무인도를 끼고 있어서 경관도 좋고, 먼저 와있는 낚시꾼들이 멀리 바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하시면 됩니다. 여기는 여러 가지 많은 어종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운이 좋으면 육지에서 못 드신 것들도 낚을 수 있을 겁니다” 아내와 며느리는 바다낚시가 처음이었다. “선장님, 아녀자들 낚시 좀 도와주실래요?” “Sure” 선장의 능숙한 영어, 그 말 한마디에 또 전부 빵 터졌다. 낚시가 시작되자 모두 침묵에 잠겼다. 루이는 이제 배가 멈추어 있으니 슬슬 배 안의 탐색을 시작했다. 배 안에 마킹을 시작한다. 선장 눈에 안 띄게 적당히 마킹을 하면 될 것 같았다. “어이고, 잡았네요~~ 미녀 어신 강림이요!” 선장의 목소리다. 며느리 낚시에 고기가 걸린 모양이다. “돌리세요, 풀고…… 옳지!” 선장이 자기 가르침에 흐뭇해한다. “선장님 그것도 영어로 해야 며느리가 알아들어요” "오케이, 이케 이케.”


즉석에서 잡은 고기를 먹는 경험은 생선 숙성을 모르는 문화적인 습관이지만 그 맛은 더 좋았다. 우리가 잡은 생선회와 낙지가 들어간 라면 그리고 소주 한잔은 백색 외국인 며느리의 오감을 겨냥한 것 같았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녀의 혀가 돌아가고 있었다. “대디, 너무 맛있어요……”


***

한나가 좀 더 늦을 모양이다. 아직 섬에 들어오는 배를 타지 못했다고 연락이 왔다. 한나는 늘 일 욕심이 많았다. 미국 학교에서도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평소에는 약간 허당끼가 있어도 공부할 때는 눈빛이 달랐다. 대단한 집중력과 승부근성을 가졌다. 한나의 문자가 또 들어왔다. “놀고 싶어 죽겠는데 문제가 생겨서 해결하고 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이미 한나랑 같이 잘 만큼의 공간은 충분하고 하루 더 루이와 뒹굴면 그만이라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 줄어든 것과 추억을 함께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여보, 저녁에는 바비큐 말고 생선으로 구이를 합시다” “모자라는 거 있으면 한나 올 때 좀 사 오라고 하세요. 여긴 마트가 없네……”


해수욕장 앞 구멍가게 빼고는 섬에 어떤 마트도 없었다. 처음에 캠핑을 시작할 땐 전기며 화장실 개수 대등 잘 갖추 어진 곳들만 찾아다녔었다. 사실 늙어가면서 RV 하나쯤 장만해서 다녀야 하는데 차량 관리가 만만치 않아서 그냥 좀 더 늙으면 하지 하고 텐트를 장만했었다. 그렇게 다니기 시작한 캠핑은 애로가 많았다.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고 산이 있는 곳을 정하고 안전한 곳을 찾다 보니 갈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오게 되는 곳은 섬이었다. 오가는 수고를 감당하고 섬으로 들어오면 루이는 섬의 산속을 정말 좋아했다. 루이는 산 사내였다.

캠핑에서 루이를 행복하게 해 주고 그 행복한 얼굴을 보면 우리가 행복해지는 간단한 원리는 “애견의 법칙”이었다. 루이는 워낙 성격이 까칠해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다른 개들도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오직 가족 바라기다.

그러나 루이가 산에서 가족과 뛰기 시작하는 자유를 가지면 루이는 웃고 또 웃는다. 바로 내일을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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