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혼할까요? I

by 강노아

사실 이혼은 내가 먼저 하자고 했다.


남편은 의외로 심각하지 않게 나를 바라보더니 자기 눈앞에 펼쳐진 이혼 서류를 보며 말했다.


"변호사는 알아보고?"


우리가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한 지 꼭 10년을 넘었다. 나는 지금 딸 하나 키우는 가정주부다. 같은 회사에서 연하남인 그를 사랑하고 직장상사인 내가 그와 연애하자 친구들을 극구 말렸었다. 남자가 더 나이 많아야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는 말에는 콧방귀를 뀌었다. 여자가 연상이면 늙어봐, 네 주름 피는 만큼 남편 바람피우지.

이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결정한 것도 나였다. 나는 그보다 세 살 연상이다.


그가 좋은 이유는 성격 때문이었다. 내가 팀 장으로 있던 우리 부서에 그는 말이 없는 성실한 타입이었다. 소심한 건지 내성적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입사동기에 비하면 회식자리나 노래방에서 조용하고 진지한 스타일이었다. 일은 무척 꼼꼼하고 완벽했다. 나는 그의 일 스타일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좀 적극적인 편이라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호통도 치는데 이 친구는 그 무엇 하나 결점이 없었다. 질문하면 다 대답하고 심지어 기안한 서류의 더 큰 그림까지 가지고 아이디어를 나에게 제공하였다.

당연히 진중하고 차분하니 여자들이 다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내가 돌싱이라 더 그렇다.


나는 결혼사기를 당했었다. 그 말 다 하면 기억이 아파서 다시 꺼내기 싫지만 결혼사기 같은 거짓말 잘하는 남자에게 넘어가 딱 결혼 두 달 만에 전부 원위치하고 다시는, 절대 다시는 남자 놈들한테 넘어가는 일은 평생 없을 것이라 혈서를 마음으로 쓰고 정리했었다.


그렇게 나의 돌싱 이력이 구차한 것이 아님을 꼭 말해야 한다. 물론 돌싱이 진 돌싱과 가 돌싱이 있어 구분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인생에 억울한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은 정말 싫다. 물론 회사에서 청첩장 돌리고 축하인사 다 받아서 그 사건을 두고 한참 말이 많았었다. 주변인들 결론은 "어우 어떡해 너무 불쌍하다 얘" 딱 열두 글자로 정리되었다. 그가 입사할 때 사건이 다 조용해진 뒤라 내가 돌싱인 것을 신입들은 몰랐다.


아무튼 남편과 가까워진 계기는 스타킹 때문이었다.


회식을 마치고 2차로 노래방 가서 단판승부로 그 밤을 끝낼 불금이었다. 요즘 2차, 3차 가면 돈도 더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려 대부분 식사하며 필 tipsy 올리고 노래방서 입가심 겸 필 안 떨어지게 노는 추세였다. 그날 나는 좀 짧은 치마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춤추며 놀기에는 이상적이었다. 번쩍번쩍 휘황찬란한 그날 밤을 간지 나게 즐기는데 노래 한곡 끝나고 들어오니 컴컴한 데서 그가 작은 가방을 하나 건넸다.


" 화장실 가서 열어보세요"

" 뭐..고?"

"화. 장. 실!"


좀 취해서 일단 뭔지 모르지만 오줌도 마렵고 그가 건넨 가방 들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앉아서 가방을 열었다. 읍쓰, 스타킹과 박카스다. 깜짝 놀라 신고 있던 스타킹을 들여다보았다.

오 마이 갓, 가관이다. 허벅지에서 무릎까지 옆으로 길게 경부선처럼 두줄이 내려와 있다.

와, 이런 이걸 본거야?

얼른 박카스 한 병 마시고 스타킹도 갈아 신었다. 그날은 그 일로 기분이 정말 좋아서 그 친구에게 다리를 슬쩍 들어 보이며 엄지 척을 날려주었다. 그는 슬쩍 미소로 답했다.


그 은밀한 와중에 그의 입사동기 김 군은 넥타이 끈 머리에 동여 매고 코에 화장지 끼운 채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을 열창한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왜 다 저러고 노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기 시작했다. 물론 답례로 밥 사준다고 내가 제안하고 그러면 그가 또 술 사고 얻어먹고

다음에 내가 술 사고 그가 밥 사고 뭐 그런 공식으로 우리 만남이 이어졌다.

참 좋은 시절이었다. 우리는 비밀스럽게 사내연애를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1년 넘게 이어오다. 그가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서 본격적 연애를 6개월쯤 더 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협의 이혼 서류에는 이혼사유를 전 국민의 모범답안 "성격차이"라고 적었다. 그는 너무 자기 자신 에게만 충실하고 한마디로 이기적이다. 그는 완벽주의자답게 집안 모든 것이 다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가 정한 곳에 어떤 물건도 위치를 벗어나면 곤란하다. 나는 어떠냐고? 나는 그에 비하면 비 완벽주의자다. 대충 정리도 나중에 하고 좀 지저분하다. 회사 나갈 때 딱 한번 깨끗하게 정리하고 집에서는 추리닝에 머리 들어 올리고 대충 산다.


처음 결혼해서 남편은 출장 노예처럼 다 해주었다. 차 세차도 하고 집 청소도 하고 심지어 밥도 해주었다. 이 남자 보기보다 요리도 꽤 잘한다. 그거 아는가? 내 손톱, 발톱도 칠해준다.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시작은 아기가 들어서면서부터 였다. 남편은 성생활도 완벽하게 하는 편이었는데 그의 완벽이란 그가 하고 싶을 때 나도 하고 싶어야 하는 것이었다. 임신을 하니까 그는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우리 딸을 낳자 기뻐는 했지만 내 헝클어진 몸매에 매력이 없다며 완전히 아주 완전히 변해 버렸다. 그의 답변을 듣자면 우리 애가 나온 그 성스러운 곳에 어떻게 성스러운 행위를 하냐는 것이다. 이건 무슨 변명 같기도 하고 정신과적 문제 같기도 하고 아이 낳고 성도 사라지고 이젠 집안 청소도 하지 않는다. 부부생활이 남자들에게는 욕구의 배설 일지 모르지만 여자에게는 사랑의 적극적인 교감이며 정신적인 위로다. 솔직히 살기 힘들 때 그걸로도 위로받지 무슨 성욕이 충만해서 좋아 죽겠다 하는 것은......, 있기는 하겠다. 호르몬 빵빵 터지고 그거에 목매달고 사는 친구도 보긴 봤다.

암튼 사랑과 위로가 사라졌다.


완벽한 놈이 등 돌리니까 완벽한 웬수가 되었다.

아 진짜, 난 이러면 두 번째 이혼인데 이러면서 "우리 이혼할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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