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혼할까요? II

by 강노아

마누라는 나의 누님이며 전에 다니던 회사 팀장님이다.


그녀가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침착한 척 변호사는 알아봤냐고 했다. 그 말의 의미를 그녀는 모르지만 내가 이혼을 호락호락 안 해줄 작정이라는 뜻이다, 아니 이혼하기 싫다. 우리가 사내 비밀연애와 사랑에 빠져 간절히 지낸 세월을 생각하면 이혼의 '이'자도 꺼내면 안 된다. 어떻게 만나고 사랑한 건데 결혼 10년 만에 이혼이라니 지금 그녀는 이혼으로 시위하는 거다.


나는 눈곱만큼도 잘못이 없다. 여자에게 한눈 판 적 없고 일 안 하고 집에서 논 적도 한 번 없다. 결혼 초기에 집안 청소부터 빨래, 요리까지 전부 내가 다했다. 굳이 스스로 네 죄를 물으라면 우리 딸 낳고 소홀한 것은 맞다. 아내는 애 낳고 살찐 것이 싫다고 불평한 것을 트집 잡는데 솔직히 뚱뚱해서 싫었다. 출산 후 부지런히 운동이라도 하지 돼지처럼 처먹고 변한 건 누군데. 게다가 정말 아이 낳고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 많이 했다. 그녀가 내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가 된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어머니라는 상징은 거룩하지 않은가? 정말이다. 그때는 어머니와 몸을 섞는 듯한 기분이 죄악스러웠다.


아내는 화장실에 큰 거 보고 물 안 내리고 나갈 때도 자주 있다. 치약은 밑에서부터 안 쓰고 꼭 중간을 누르고 뚜껑도 안 닫는다. 요리를 자주 했던 것은 아내 음식이 너무 맛없어서 그냥 내가 했다. 성질은 지랄 같아 집에서 부하직원처럼 나를 대한다. 그녀에게 나는 아직 우리 부서 부하직원이고 동생이다. 그녀 친동생도 나랑 동갑이다. 모든 집안 의사 결정은 자기가 다해야 직성이 풀린다. 나는 결정권 자체가 없다. 정말 아주 가끔 그녀가 집안일할 때는 "이건 왜 이렇고, 저건 저렇게 놓으면 안 되고" 잔소리가 먹구름 되어 온 하늘을 잿빛으로 가득 채운다. 지적할 때는 핏대 섞어 화난 것처럼 말한다. 애 혼내는 엄마 같다. 가끔 때리기도 한다. 등짝을 휘갈겨 치는데 진짜 아프다. 내가 아프다고 화 내면 그거 가지고 화내냐고 더 크게 화낸다. 싸우기 싫어서 입 다물면 며칠 동안 서로 말 안 한다. 나는 포기하고 산지 오래다. 무슨 여자가 술도 너무 좋아해 회식 마치면 내가 업고 들어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부인 전용 대리운전 노비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다. 코도 곤다. 사내처럼 "드르렁 그르릉 푸아~"


내가 사랑한 그녀는 죽었고 지금은 마누라 라는 가죽만 남았다.


일도 전문성이 부족하다. 어떻게 팀장이 되고 진급했는지 몰라도 솔직히 컴맹이다. 아니 그냥 컴 유져다. 컴에 작은 문제가 생기면 여보~ 콧소리 섞어 부른다. 저런 소리로 부르면 컴에 문제 생겨 부르는 것을 나는 바로 안다. 문서작업은 잘하는데 정보 리서치는 엉망이다. 야근하다 가져온 기획안은 초고만 그녀가 쓰고 내가 퇴고한다. 창의성도 없고 글솜씨도 별로다. 전공은 한국무용이다. 아이러니다.


책도 안 읽는다. 집에 오면 드라마 삼매경이다. 아침 드라마는 다시 보기로 보고 저녁 드라마는 지금 보기 한다. 눈치는 더럽게 빠르다. 아주 쪼금 아는 것을 뻥튀기해서 다 아는 척한다. 그동안 회사에서 눈치로 일해서 진급한 것 같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정말 좋다. 목소리도 좋고 말을 잘한다. 직원들 애경사 챙기는 거나 부하직원 상담도 잘한다. 사람들은 그녀가 매우 착하고 배려심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모르는 사람한테만 그러지 친해지면, 나처럼 같이 살면 무장해제하고 다 자기 마음대로다. 집에서 걸걸하게 말하다가 직장상사에게 전화 걸려오면 갑자기 목소리 톤이 바뀐다. 비음 가득하고 상냥하게 "아, 이사님, 네~네~" 내가 듣다 "나한테도 그러지" 하면 "지랄" 그런다. 부부 싸움하고 단 한 번도 자기가 먼저 '미안해' 하는 법이 없다. 백이면 백 내가 먼저 사과하고 전쟁을 마감한다.


누가 유책 배우 잔가?


내가 지금까지 참고 산건 언젠가 그녀가 깨닫는 날이 오겠지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지금 그녀가 이혼 서류 가지고 심각한 표정으로 성격차이 들고 나온 건 이번에 나 군기 잡으려고 시도하는 일로 느껴진다.

사실 연애할 때 어느 시점에 내가 존댓말 쓰다가 말 놓고 팀장 누나 아닌 아내 될 내 여자에게

"내가 그린, 가정 그림"을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말이야 가정은 따뜻함 가득, 휴식 공간으로 깨끗하고 여유가 넘치고 맛있는 집밥도 있고 웃음소리 나는, 머 이런 울타리? 그런 것 같아. 당신과 결혼하면 내가 열심히 이런 공간으로 만들고 잘 살아볼게. 아참 내가 클래식 음악 좋아하니까 항상 집안에는 피아노 음악 깔고 말이야 (아내는 판소리와 트로트를 좋아한다). 그리고 아이는 하나만 낳자 당신도 힘들고 육아로 지치기보다 우리 둘에 집중하고 싶어. "

한 여름밤의 꿈이었다.





나는 분명히 이혼 안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녀는 매일 하자고 설득한다. 아니 강요한다.


" 너 장로교회 구역장 이잖아? 그런데 거기서 이혼하라든?' "나 신천지야" " 너 남자 생겼니? 남자 생겼으면 내가 물러나 줄게" "남자 좋아하시네" " 그럼 그거 안 해준다고 내가 너 뚱뚱하다고 놀려서 그래?" "이제 그거 관심 없거든?" " 그런데 왜 이혼하고 싶어?" "그냥"


이것 봐라 아내는 자기 논리도 없고 내용도 없다. 평소에도 감정 기복 심하고 의사결정도 기분 따라왔다 갔다 한다. 남편을 교환 환불하려는 건지 코로나 마시고 취한 건지 왜 저러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내 말을 듣다 못해 내가 한소리 했다. " 당신 대화할 때 특히 이런 중요한 말 할 때 생각 좀 하고 말해, 반사 치지 말고" 아내는 말을 잘해서 그런지, 금방 말이 생각나서 그런지, 아니면 여자들이 다 그런지, 방사포처럼 즉각 대응하는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한 번만 더 생각하면 좋은 말로 바꿀 수 있고 상대를 설득할 수도 있는데 말다툼할 때마다 그 점이 참 아쉬웠다. 생각 없이 말하는 거.

"암튼 알았어 시간 좀 줘" 나도 진짜 이혼 생각에 들어갔다.


우리 딸은 어떡하고 부모님껜 뭐라고 말하지? 회사엔 숨기면 되고 친구들은 몰라도 되고 서로 직장이 있으니 사는 거야 뭐 당장 문제는 아닌데 집 팔면 대출 까고 얼마 남지 않네, 난 오피스텔 알아봐야 하나? 그럼 애는 엄마 키운다 치고 양육비는 얼마나 줘야 해? 저 큰 가구는? 집은 하나 마련해 줘야 하지 않을까?

밤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결혼 동맹이 이처럼 우리 집 아래 깊은 뿌리를 내리고 뿌리 잔가지들은 서로 엉켜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이혼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자 갑자기 우울해졌다.


아내와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안 하게 되었고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는 둘 사이를 오가며 자주 하던 부부싸움 냉전 정도로 이해하는 것 같지만 눈치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이 어둠이 가득 찬 집안 공기를 바꾸려고 아이가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 아빠 아빠 이것 좀 봐 봐, 예쁘지?" " 엄마~, 엄마 좋아하는 미스터 트롯 해!" 아이가 안쓰러웠다. 저 어린것이 뭘 안다고 각방 쓰는 부모 앞에서 저럴까? 정말 알기는 아는 걸까? 사실 내가 이혼을 적극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부모님이 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혼해서 그렇다.

아버지가 나를 키웠고 어머니는 고향으로 돌아가 얼마 뒤 재혼하셨다. 아버지는 무섭긴 하지만 자상 해서 동생과 내가 자는 이층 침대에 밤마다 찾아와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나는 침대 2층에서 잤는데 거기 동그란 전등 밑에 엄마 사진을 숨겨놓았다. 아버지가 자장가를 마치고 나가면 나는 엄마 사진을 한 번 보고 잠들었다. 나는 그래서 이혼이 싫다. 눈물이 나서. 우리 딸도 나처럼 울게 해선 안된다. 아니 애가 좀 커서 정신 있을 때 이혼하면 차라리 날 텐데 지금 저 여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다. 뇌가 망가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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