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할까요? III

by 강노아

솔직히 남자로서 나는 결혼에 대해 낭만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다.

blur-bouquet-bridal-bride-wallpaper-preview.jpg


내 이상형 조건에 맞는 여자가 나타나면 결혼해서 아이는 가능하면 딸 하나 아들 하나 (혹은 세명까지도 좋다) 낳고, 여자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금상첨화고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면서 저축 좀 하고 주식 좀 투자하고 부동산 하나 정도 청약 들어가면 지금 수입과 그동안 부모님께 지원받던 돈하고 하면 평생 고생 안 할 자신 있다. 지금 그녀는 내 이상형 외모에 학력 좋고 성격은 싸워 봐야 하고 일단 내가 더 좋아해서 노예 모드로 사귀지만 왠지 돈에 약해 보이는 그녀에게 황제 모드로 전환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번에 BMW 새로 뽑으면서 그녀가 보인 의미심장한 미소랑 내가 사주는 비싼 선물에 보이는 반응을 종합하면 그녀는 돈에 약한 것이 틀림없다. 어차피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아닌가?

게다가 새아버지가 가진 재력을 생각하면 어찌 되었든 뭐하나 떨어지겠지, 솔직히 내 지방대 학력으론 회사가 대기업이지만 어느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는 일찍 일 그만두고 부동산 세 받아 살면 될 것 아닌가? 선배는 내 미래전략 듣더니 배부르고 한량한 놈이라고 질투 어린 시선과 비난을 던졌었다.

배가 아플 것이다. 선배 부인은 선생님 딸이고 그저 그런 평범한 가족이 결혼했으니 그저 그렇게 평범히 살아가겠지. 나는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안 하는 지금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혼이 뭐가 어렵지?






솔직히 여자로서 나는 오빠와 달리 결혼이 두렵고 걱정스럽다.


벌써 수십 번 친구들 결혼식에 다녀왔다. 내가 가장 정말 끔찍이 싫어하는 결혼 풍경은 예식장이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저렴한 예식장부터 호텔 예식장까지 그저 그런 비슷한 풍경은 진절머리가 난다. 갈비탕, 뷔페식사는 어떻고 무슨 축의금 내고 밥 먹으러 온 것도 아닌데 사람들 식탐을 보면 그냥 싫다. 난 결혼식 가서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아주 친한 친구 아니면 돈 내고 사진 찍고 축하받을 사람 앞에 가서 크게 확 웃어주고 "오우, 축하해, 멋진 결혼식이야" 한번 날려주고 집에 온다. 가끔 종교시설에서 하는 것은 좀 거룩한 모습 때문에 낫긴 한데 사회 보는 애들, 좀 웃겨 보려고, 튀어보려고 멘트 날리는 건 교회가 더 심하다. 결국 그게 그거다.


내가 결혼식에 제일 부담스러운 건 우리 부모다.


이혼한 부모가 결혼식에 어떻게 참석하고, 양가 부모 촛불은 어찌하고, 입장은 누구랑 하고, 아 몰라 모르겠다. 오빠는 좀 낭만적이고 태평스러운데 내가 하는 이 고민은 전혀 모르고 "우리 결혼할까?" 개 간식 씹어먹는 소리 하는데 난 좀 비관적이다.


게다가 말 나온 김에 애는 무슨 둘 아니면 셋이라고 하는데 오빠 가정 형편 보아 뭐 키울 수 있겠지, 애는 네가 낳나? 내가 낳는다. 아, 임신 상상만 해도 무섭다. 지금 슬슬 똥배가 나오는데 여기 더해 배가 산 만해지고 출산하면 얼굴 붓고 몸 관리하는 거 (거기다 무슨 쑥 찜질한다 하고) 정말 무섭다. 내 거기로 아이가 나온다니 이게 상상이나 돼? 만약 세명을 낳거나 쌍둥이가 두 번 걸리면 네 명 누가 키우는데, 난 회사 안 다니고 집에서 애만 키워? 솔직히 직장은 내가 더 쎄고 연봉도 내가 더 좋다. 오빠는 집안이 조금 낫지만 학교는 지방대 출신에 회사에서 크려면 좀 아니다, 우리 둘 다 사실 회사원 아닌가. 잘리면 바로 세렌게티 초원에 가서 백수들과 어울려야 하는데.


내가 결혼하면 엄마는 누가 키우나 우리 여사님 비싼 사료 먹여, 강아지 고급 미용시켜 때 되면 애견 캠핑 가야 돼, 홈쇼핑 한 번씩 눌러, 외식비는 누가 감당하지? 계속 같이 살면 싫어할 텐데. 아 몰라 몰라. 오빠한테 부모님 이혼 말해 버릴까? 무시할지도 몰라, 하면 안 돼.


그러니까 "결혼할까요?"가 토 나오는 말이다. 어차피 나중에 이 글 보면 오빠는 다 알게 될 것이다. 괜찮다, 내가 다 계획이 있다. 오빠는 나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 요 시기에는 무슨 짓거리를 해도 남자들은 콩깍지가 쓰여서 다 넘어간다. 저거 벗겨지면 본색이 나오겠지. 그래도 오빠는 그거 해달라고 치대지는 않는다. 친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그런 면에서 조금 성숙한 면이 있다. 우린 아직 손만 잡았다. 스킨십을 강요하지도 않고 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잠깐, 혹시 거기 이상 있는 건 아냐? 임포 뭐 이런 거?

아 정말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 정말 싫다.




내가 그녀에게 치근덕 대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전에 사귄 두 여친과 설렘과 흥분에 취해 몇 초 만에 끝난 사건 때문이다. 이번에 아무렇게나 대들었다간 좀 쎄 보이는 우리 그녀가 실망하고 헤어질 것 같아 결혼 후에 첫날밤을 로맨틱하게 하자는 계획을 세운 거다. 그리고 내가 하나 파악한 것은 스킨십보다 돈으로 그녀에게 감동 주기가 쉽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자기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으로 돈을 쓰면 이상하게 감동받는다. 그러니까 5만 원 쓸 곳에 50만 원 확 투자하면 좋아서 운다. 이거 웃기지 않나? 돈보다 사랑이라는 인문학자님들 한번 해석해 주라. 난 철저히 이 기술을 가지고 있다. 돈을 언제 붙잡고 풀어야 하는지 어디서 누구에게 쓰고 어디서는 신발끈 매야 하는지. 내가 회사에서 조금 풀어보니까 사람들이 나 매우 좋아한다.

그녀는 탁 부장이라는 그놈 말을 자주 하는데 우리 견 부장님은 나한테 나이스 가이다. 내가 그분 명절이랑 생일에 따로 챙겨드리니까 항상 위에서 깨지고 지나가다가도 나랑 마주치면 " 어, 그래!" 하고 환하게 얼굴 핀다. 위엣놈들은 한 번에 부담스럽게 두둑이 챙겨주면 안 되고 야금야금 뇌물은 아니고 최선의 성의 로운 가격으로 가족들 기념일에 넣어주면 솔직히 회사 놀러 다니는 거다. 내가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좀 더 나쁘게 살 수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충격을 받아 인생은 좀 잘 살아야겠다는 결심 하느라 이만한 거다. 그래도 세상을 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사나, 그냥 백성으로 천민으로 사는 건 억울하잖아.


군대에서 사실 권력과 서열의 함수를 배웠다. 우리 내무반 말년 병장은 고졸 출신에 나보다 어렸다. 그런데 군대가 말 그대로 조폭 세상, 일진들의 세상이었다. 먼저 온 놈, 힘센 놈, 계급 높은 놈의 서열이 정해져 있다. 나랑 같이 내무반에 배치된 신병 남 이병은 나이도 어리고 순진하고 한마디로 약간 푼수였다. 최고참 남궁 병장은 내가 키도 좀 크고 고급스럽게 생긴 외모와 나이를 알고 나를 건들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 불쌍한 남 이병 얘는 좀 모자라는 데까지 있어 복명복창은 무지 큰소리로 하고 좀 어리바리하고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 내무반을 매일 웃긴다. 이러면 타깃이다. 나는 돈도 안 썼는데 예우받고 얘는 시키는 거 다 하는데 맨날 죽어라 얻어터진다. 하루는 그에게 물었다. " 남 이병 힘들지 않아?" " 아닙니다. 아니 미안, 안 힘들어" 습관이 되어 다나까로 나에게 대답하다 자기가 스스로 놀랐다.


어느 날 남 이병이 총으로 자살했다.


수군대는 소리로는 남궁 병장이 따로 불러 얼차려를 주는데 모욕적으로 한 시간 동안 화장실에서 굴렸다는 것이다. 수사관들이 다녀가고 나도 조사를 받았다. 나는 딱히 남궁 병장이나 남 이병과 접촉이 없어할 말이 없었지만 동료의 죽음에 대해 아버지의 죽음과 오버랩되어 막연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수사관들은 뭐라 증거가 없으니 신병비관 자살로 사건을 몰아가는 듯했다. 그 주말 저녁 나는 남궁 병장님을 잠깐 보자고 했다. " 뭔데?" 퉁명스러운 그의 대답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수줍게 대답했다.


우리 부대 내무반 뒤에 낮은 언덕에 둘이 앉았다. 내가 나지막하게 그에게 말했다.


" 남궁 병장님, 제대도 얼마 안 남았는데 힘드시죠,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우리 동기 사건 그쪽 때문이라고 말이 많아요" 남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욕을 던졌다.


" 이런 씨 XX이 그런 말 하자고 보자고 한 거야?"

나도 일어서며 말했다. " 앉아, 이 새끼야 "

나보다 5센티는 작은 그가 내 이글거리는 항명에 기가 죽었다.


"그거 때문에 보자 한 거고, 너 앞으로 제대하는 날까지 아가리 꼭 닥치고 행동 조심하고

없는 듯이 살다가 나가 알았어?" 만약 내 말 위반하면 내가 너 죽여 버릴 거야, 이 개 쇠끼야! "


그는 대답 대신 얼굴을 피하며 급히 자리를 떴다. 나는 지금도 선임의 폭력에 동기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건달도 아니고 우리나라에 이상한 조폭문화가 남자들 세계를 지배한다. 내가 그때 깨달은 것은 힘을 가져야 이 세상을 제대로 대우받고 산다는 것이었다. 그 힘은 부드럽게 혹은 강하게 필요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

나에게 힘은 업무능력과 귀공자 스타일?, 돈 씀씀이, 소신과 배짱이다. 난 그래서 결혼하자고 하는 거다.




오빠에게 대답을 해야 하나 망설였다.

정식 포로포즈도 아닌데 예, 아니요 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오빠가 갑자기 싫어지거나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표현받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좀 이상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이것이었다.


" 오빠, 나도 오빠 좋은데 결혼은 아직 생각이 없어. 하지만 결혼할 수도 있어 "

" 오빠, 그래 결혼하자 " " 오빠 미안해 결혼은 아닌 것 같아"


요새 쥐어뜯느라 내 머리털이 한 움큼 빠졌다. 그래 결심했어, 그거로 하자. 내가 확정한 대답은


"오빠, 결혼 요청해서 고마워 난 2년 정도 사귀면서 서로를 좀 더 알고

그러고 나서 결혼하면 좋겠어. 이혼하고 싶지 않아 "


그래 결혼을 유예하는 것이다.

이걸 이 간단한 걸 말하면 되는데 며칠씩이나 고민을 하다니 참 나도 어리석지.







그녀와 헤어졌다.

결혼 문제로 대판 싸웠다.

다시는 보지 말자고 했다.

길에서 스쳐도 아는척하지 말자고 했다.

내가 주로 화를 내고 내가 찬 거다.

그녀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앞으로 혼자 살 거다.

내 인생에 여자는 삼세판이면 끝 아닌가.


후~~



keyword
이전 02화우리 결혼할까요?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