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할까요? II

by 강노아

내 아버지는 새 아버지다.


내가 대학 졸업할 무렵 친 아버지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호스피스에서 지낸 21일 동안은 내 생애 아주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거의 매일 나는 그곳을 찾았고 이별은 생각보다 낭만적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한주는 혼수상태였다. 물론 조금 나았던 처음 일주일은 진통제로 통증을 이겨냈지만 시간이 가며 아버지는 초조해하셨다. 남아있는 우리뿐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제일 많았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모아논 재산이 없어 여동생과 나의 결혼에 대해 정신이 있을 때 가장 많이 말했다. 나는 그때마다 왜 결혼에 돈이 문제냐고 대답한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논쟁을 항상 피했다. 지금 생각하니 기력이 없어서 그런 거다. 그는 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책을 읽었다. 그 시간이 참 조금 이었지만 그땐 나도 그 옆에 앉아 책을 읽었다. 고시원처럼 작은 일인 병실은 우리가 가족으로 함께 남아 머물던 유일한 마지막 공간이었다.


우리는 온기와 사랑으로 그 방을 찬란하게 장식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웃음소리가 방 틈을 새 나가면 아버지는 "우리 여신이 호위무사 없이 어떻게 사나" 농담하다 급히 터진 눈물 때문에 그 방은 홍수로 터진 댐이 되었다. 편안한 임종을 준비하는 시설이 우리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이민 떠나는 애인과 몇 주간 인천 공항에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죽음의 정리보다 죽음의 슬픔이 더 많이 자리를 차지했다. 죽음의 상실이 너무 깊어 나중에 결혼하지 않는 것이 이처럼 떠나는 남자가 되지 않는 현명함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호스피스에서 정확히 3주를 보내고 떠났다.

남은 우리 세 사람은 울지 않았다. 통곡보다 더한 슬픔은 눈물도 말라 버린 실성한 마음인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아빠를 많이 사랑했다.


아빠는 다정다감하고 대화도 많이 했다. 어려서부터 노을 지는 오렌지 하늘이 왜 그런지 가르쳐 주었고 바다가 소금물인 까닭은 동화로, 빛나는 별이 가스로 가득 찬 항성인 것은 천문학으로 가르쳐 주었다. 아빠는 여행을 좋아해서 가족 모두가 자연스러운 여행 마니아였다. 가끔 기회가 되면 "제주 한달살기" 엄마의 동의와 우리 중 한 명의 재청으로 땅땅 가결되었다. 아빠는 지방대 교수였다. 나는 서울 대학에 성적이 되지만 아빠를 가까이 보고 싶어 아빠가 재직하는 그 대학에 입학했다. 나중에 대학원은 유학하자고 아빠가 말했지만 지방대학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4년 장학금은 가족에게나 나에게 큰 의미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우리를 떠나고 내가 군대로 삶을 도피하던 그 무렵 엄마에게 남자가 생겼다. 그 남자가 지금 법적인 내 아버지다. 오래전부터 엄마와 친분이 있었던 그는 상처하고 싱글로 지내며 사업하던 사람이었다. 아버지도 이분을 안다. 재산을 택한 것인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절박하게 우리를 부탁한다던 유언을 지키려는 것인지 엄마는 그와 혼인신고를 했다. 아저씨는 우리 집에 같이 살지 않는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자주 집을 들락거리고 어머니가 조금 미소를 찾은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새아빠는 자기를 아저씨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떤 약속을 한 건지 몰라도 새아빠는 우리 가족의 가디언이 되었다.


내가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아저씨는 학비와 생활비 모두를 부담했다.

아저씨도 두 아들이 있었다. 나에겐 형이지만 나는 그들을 형이라 부르지 않았다. 아니 그냥 아무 호칭으로도 말을 섞지 않았다. 내 친동생은 아저씨 강요에 서울의 사립여대에 입학했다. 여동생은 항공공학을 하고 싶어 했지만 아저씨 주장에 설득당해 살림할 여자가 교양 쌓기에 좋은 인문학, 사학 전공을 마음먹고 입학했다. 어차피 4년간 학비를 내는 사람은 아저씨였으니까.


너무 우울한 내 가족 이야기만 했다.


그녀의 첫인상은 너무 좋았다. 웃을 때 살짝 벌어진 입속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가 예뻤고, 제일 감동적인 것은 하이힐과 무릎에서 발목까지의 길이였다. 내가 전에 말했듯이 사랑에 빠질 이상형 외모였다.


게다가 그녀는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서 바로 대기업에 입사해 귀국한 인재였다. 아무리 이상형이지만 신중하게 결정하고 사랑에 감염되지 않으려고 사회적 거리 2미터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 향수가 내 코에 걸려있었다. 그 냄새는 내가 좋아하는 향 "베르사체 브라이트 크리스털"이 틀림없었다. 코가 서서히 마비되고 신경계 문제가 찾아왔다. 이건 사랑에 감염되는 초기 신호로 경험해 보아서 안다.


빨리 소개팅 주선자 선배를 돌려보내야 했다. 선배에게 눈을 두 번 빠르게 깜빡깜빡 모르스 신호를 보냈다.


선배는 알면서 말했다.


" 왜, 눈이 아파?"


" 그러게 혹시 일회용 눈물 있어? "


" 아, 저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저 응큼한 선배는 다음번 밥 사 주며 응징하고 눈물 있다는 그녀 말에 기분이 업됐다.

억지로 눈에 눈물을 넣었다. 장난을 마친 선배가 일어선다.


"나, 간다. 재미있게 놀아"




그가 인공눈물 넣을 때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여자처럼 생겼다. 분명 그의 어머니가 미인이었을 법 한 선이 굵은 산맥 같은 오뚝한 코와 움푹 들어간 눈이 서양인을 닮았다. 아까는 몰랐지만 그는 피부가 하얘서 하얀색 와이셔츠와 감색 양복이 잘 어울렸다. 목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중저음이다. 남자의 중저음은 그가 차분하다는 증거다. 목소리 톤이 높은 남자는 정서가 불안하거나 집안 유전자에 이물질이 들어 있기도 한다. 내가 생물학을 전공해서 그런 것에 관심이 많다.

이 남자 일단 물건 같다. 조금 지켜보면 알겠지.


우리 엄마 아빠는 평생 사이가 안 좋았다. 둘을 평가하라면 아빠가 질이 더 안 좋다. 엄마는 예민해서 까탈스럽긴 해도 심성이 착하고 연민이 많다. 나를 위해 평생 희생하고 나만 보고 살았다.

내가 졸업하고 직장 가지면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려야지 결심해 놓고 요즘 같이 살기 시작한 엄마에게 좀 무관심하다. 나이 들어가며 기력이 옛날 같지 않다. 회사일도 좀 많고 탁부장한테 안 깨지려고 야근도 많이 한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투닥거린다. 엄마는 가끔 화가 나면 핏줄은 못 속인다며 유전자 욕을 한다.


엄마 용돈도 드려야 하는데 내 유지비가 많이 들어서 엄마한테 드리지 못한다. 아마 엄마가 그것도 엄청 불만인 거 안다. 난 커서 아빠 닮지 않은 남자를 꼭 만나려고 결심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동안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함량미달이다. 아직까지 난 숫처녀다. 누구도 내 몸을 만져만 봤지 들어온 적은 없었다. 솔직히 내가 이상한 건지 섹스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거 말고 따뜻한 감성이나 냉철한 지성을 가진 남자를 만나면 좋겠다.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속물이라 만나면 손잡고 키스하고 섹스하려고 열을 올린다. 무슨 짐승도 아니고 애를 낳고 싶어 환장한 건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양의 발이 늑대 발로 변한다.


탁부장 저놈도 미란이 오기 전까지 유부남 주제에 나한테 아주 애매한 경계를 넘었다 말았다 하는 회색지대에 있었다. 남자 중에 젤 치사한 놈은 좋아하면서 아닌듯하고 슬쩍 접근했다가 내가 언제 그랬냐고 꽁무니 빼는 놈이다. 차라리 이혼하고 나한테 온다면 그게 용감한 기사도 일텐데 대개는 비겁하다.


지난번 치마 입고 회사에 출근해 결재를 마치고 깨지는 날인데 웬일로 부드럽게 말했다.

잠시 후 인사하고 나가는데 " 최프로, 오늘 옷이 예쁘네" 어깨 뒤로 말이 날아들려왔다.

돌아서서 "아, 네 감사합니다" 하고 나왔지만 가자미 눈으로 내 다리 쳐다보는 가자미를 내가 보고 말았다.

아, 남자의 몰래 쳐다보는 비겁한 눈길 " 그냥 쳐다봐, 이 쪼다야!"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다음번 깨질 때를

대비해 침묵을 저금해 놓았다.


후, 이거 오빠랑 2회만 쓰자고 했는데 길어져서 오빠한테 물어보니 반응 보고 정하자고 한다.

다음에 봐야겠다. 노트북 덮는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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