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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19. 2020

추억의 눈물

필립 로스와 반스를 읽었다.


반스의 책 "연애의 기억" The only story에 나오는 열아홉 살 주인공 폴이 자기보다 20년 연상 유부녀와 사랑하는 글을 보다가, 나는 열아홉에 뭐 하고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검정 교복 입고 짝사랑도 했지" 오래된 기억이 말해 주었다. 아, 그래 맞아. 기억이 말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부터 나왔다. 폴처럼 사랑은 못해도 짝사랑은 했었네...


그날 K의료원에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부모님이 끔찍이 아끼는 장남을 위한 것인지  K 대학병원 아담한 2인실에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이었다.  


"이 환자는 비중격 만곡증 환자로서 수술 후 약 2주가량 입원 치료가 필요합니다. 보시다시피 코로 숨 쉴 수 없기 때문에 물로 충분히 적신 거즈를 입에 대고 호흡하도록 돕고 회복할 동안 자주 환부를 소독 해야 합니다"


간호사는 실습 나온 병아리 간호사들 앞에서 내 코와 입을 손으로 짚으며 브리핑하고 있었다.

병아리 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난 이래 봬도 열아홉이라서 부끄러워 눈을 질끈 감았다. 소란스러운 수습 간호의 방문이 지나가고 담당 간호사 누나가 들어왔다. "힘들었지? 실습대상 되느라"


누나라고 부르는 내 전담 간호사는 나보다 여섯 살 정도 많다. 나는 그때 집-학교-학원-도서관-집-교회만 다니는 착한 범생이였는데 고3이 수술을 급히 받아야 할 이유는 정밀 신체검사가 있는 특차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였다. 뭐 어차피 아버지에게 유전적으로 비중격 만곡증을 물려받아 겉으로 표시 나지 않지만 그대로 두면 축농증으로 발전할지 몰라 코의 안쪽 뼈를 갉아내 휘어진 부분을 바르게 펴는 수술을 해야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하나님의 뜻이라며 고3의 긴박한 수술을 정당화시켰고 나는 그 말을 그렇게 믿었다.  그때 어머니는 내 옆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더니 나도 모르게 새 성경책 한 권을 머리맡에 두고 가셨다.


"교회 다니니?"


간호사 누나는 내 병상 옆 호텔 기드온 성경처럼 보이는 검정 양장의 새 성경책을 보고 물었다.


"보니까 새 건데 성경책은 읽으라고 있는 거지 장식으로 놓으라고 한건 아닐걸?"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섞어 자기는 친절한 기독교인이며 같은 편이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말했다.


간호사 누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나는 사실 성경 전체를 한 번도 읽어 보지 않았다. 구약에 다윗 이야기나 신약의 동정녀 마리아를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마음속엔 " 목사님은 지난주에 한 얘기를 왜 또 하고 또 하지?  처녀가 애를 낳는 게 말이 돼?" 이런 생각만 했지 지루한 성경을 다 읽는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간호사 누나는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걸고 나자 내 병실을 드나들 때마다 친누나처럼  챙겨 주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제법 큰 의상실을 운영했기 때문에 바빠서 나는 간병인이 따로 없었다. 뭐 필요도 없었고. 아버지는 가끔 들러 그 귀한 황도 통조림과 바나나를 한 보따리 병실에 놔두고 입과 코를 막은 나에게 정말 먹으라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다 큰 아들이 알아서 회복되기를 격려하고 갔다. 결국 그림의 떡은 하나도 먹을 수없었고 성경책이 부적처럼 내 옆에 놓여 있듯 사람들에게 있는 집 아들이라는 표시로 남겨졌다.

 

간호사 누나는 키가 작고 가무잡잡한 피부에 아담하고 예뻤다.  그 당시 열아홉들은 다 비슷했지만 몸매보다 얼굴을 좋아했다. 게다가 누나의 상냥한 목소리와 절제된 태도도 예뻤다. 어쩌면 간호사 누나가 내 이상형 기준이 되었는지 모른다.  지독한 수술 통증으로 고통받을 때 가족처럼 도와주어 그녀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병실에 누나가 오는 시간을 항상 기다렸다. 누나가 혈관을 찾을 때 집중하는 눈빛이나, 투명한 매니큐어로 정돈된 손톱, 가볍게 느껴지는 살 냄새까지 황홀했다. 누나가 상처 드레싱을 마치고 돌아가면 잠에 취해 누나가 다시 꿈에 들어와 상처를 드레싱 해 주었다. 왜 내가 저 누나를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난 이미 머리가 커서 아기가 어떻게 나오는지도 알고 성에 대해 알만큼 아는데 가당치도 않게 누나랑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넓은 초원을 나 잡아봐라 뛰며 돌아다닌다. 매일 그런 꿈을 꾸었다.


입원 며칠 후 내 옆자리 환자가 퇴원했다. 그 자리엔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입원했다. 귀 수술받고 나처럼 회복하려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간병인이 있었다. 아이가 고모라고 부르는 여대생이었다.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 S여대 2학년 학생이에요. 그쪽은?"초면 인사가 구체적이다. " 고3이에요" "동생이네, 앞으로 누나라고 불러요" 뭐 이렇게 말을 놓고 시작했다.


그녀는 간호사 누나보다 키도 크고 서구적 미모에 차가운 지성이랄까? 약간 도도하고 냉소적인 분위기를 가졌다. 처음부터 말을 트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예쁜 여자들의 도도한 특징인데 남자들은 도도한 그녀들의 도발에 항상 관대했다.


좀 헷갈렸다. 작은 2인 병실에는 서구적 미모의 이웃과 동양적 미모의 간호사 누나가 들락거렸다.

간호사 누나는 올 때마다 성경을 얼마나 읽었니? 믿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질문했다. (요즘은 이런 종교적 대화가 금지되었을 것이다. 그땐 모든 관계에 낭만이 있었다. 1차 세계 대전 전투기 조종사들이 적기를 격추하고 낙하산으로 탈출하는 상대 조종사에게 경례하던 시절에서, 지금 보이지 않는 적에게 스텔스로 접근해 손가락으로 살인을 결정하는 낭만의 차이만큼)




내가 혼자 누구를 좋아하는 거지?  두 여인에 대한 감정이 혼자 흔들리고 있는데 내 신앙의 도덕성을 점검해야 했다. 뭐, 헤밍웨이도 네 번이나 결혼하고 말년에 자살했잖아? 그래도 위대하다고 하는구먼, 혼자 변명하고 혼자 회개하고 혼자 궁리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두 여자를 다 짝사랑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그때 성경보다 헤르만 헷세의 "싯달타"를 정독하고 있었다. 문학 작품인데도 불교 책을 읽는다는 죄책감도 가지며 내속에 훈련된 "종교적 강화 inforced"와 씨름하고 있었다. 독서 탓일까? 간호사 누나의 종교적 압력은 부담스러웠고 (나중에 알았다. 간호사 누나는 CCC 출신으로 대학원 준비하며 일했고 약혼자가 있었다는 것을) 내 관심은 조카 옆에 하루 종일 책 읽는 부담 없는 그녀에게 옮겨가고 있었다. 점점 간호사 누나는 꿈에 나타나지 않았고 가슴도 설레지 않았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웃 그녀가 읽던 책은 내가 좋아하던 헤세였거나 고전이었던 것 같다.


"누나라고 하기 좀 그러니까 이름 부를게요"


내 심사숙고한 제안에 그녀는 미소만 지었다. 며칠 동안 긴 시간을 무료한 젊은이 둘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같은 시대에 먼저 대학을 간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했다. 문학에서 클래식 음악, 정치, 종교, 문화 등등 , 경제 얘기 빼고 다 나눈 것 같다. 그녀는 도도한 외모만큼 고급진 지성을 소유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고급진 것을 무척 좋아한다. "세련되다"라고 하기도 그렇고 "깔끔하다"로 표현하기 그런 "고급짐"은 돈이 많아서 비싸게 치장하는 여자에게 해당되지 않고, 유전자의 축복으로 탁월한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고급짐"은 그 사람 전체다. 어떤 옷을 입던 옷태가 살고( 아마 코디하는 능력 차이도 있겠지만) 대화할 땐 교양과 지성이 안에서부터 흘러나오고 돈 씀씀이에 인색하지 않은 남녀를 "고급지다" 고 생각했다. 반대로 외모는 뛰어난데 머리가 텅텅 비어 있거나 (학력보다 독서가 없으면 텅텅 소리가 난다) 인색하게 돈을 쓰거나 상대를 자기보다 낮게 취급하는 사람은 거지 같다.


그녀는 내 기준에 고급스러웠다. 서로 대화가 많아지자 눈에 띄게 가까워졌다. 간호사 누나가 나를 치료하러 들어올 때 그녀가 성경을 가지고 잔소리 같은 심화 전도를 하면 웃음을 참고 있다 그 누나가 나가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간호사 누나를 싫어하거나 경멸하지 않았다. 좋아하고 존경했다.)


시간은 우리 상황을 모르고 KTX처럼 빠르게 달렸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챙겨놓은 성경책을 퇴원까지 한 번도 읽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 신앙이 헤세의 싯다르타 때문에 손상되지도 않았다. 성경 때문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간호사 누나를 얻었고 그 누나는 퇴원 후 한참 지나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녀의 약혼자도 함께 만나 식사도 했다. 누나는 참 좋은 크리스천으로 내 기억에 영원히 남았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덕분에 나는 아버지처럼 수술 없이 평생을 킁킁 거리며 살 일도 없어졌고 원하는 특차 대학에도 합격했다.


퇴원하던 날 초겨울을 무색게 하는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병원 정문까지 배웅 나온 이웃, 그녀는 나보다 며칠 더 병원에 있어야 할 조카 때문에
나중에 한번 보자며 손을 반쯤 들었다. 다시 뒤돌아 보니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들어가" 그녀는 나를 아쉽게 쳐다보며 손을 다시 흔들었다.

병원 앞 레코드점에서 이문세의 "기억이란 사랑보다"가 함박눈을 맞으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도 그때 그 노래 들으며 걷다  눈물 흘린 것 같다.  

인생에 유일하게 짝사랑한 두 여인은 지금 잘살고 있으려나 갑자기 보고 싶다.   



오늘 밤 이문세 들어야겠다.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지? 

죽기 전에도 추억 때문에 이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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