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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11. 2021

후회

  그녀 떠오른 것은 요즘 내게 정신병이 찾아온 듯한 증세 때문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예를 들어 샤워를 하거나 집안 청소를 할 때 느닷없이 과거에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고 그 기억을 아주 상세하게 복기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반복 되니까 불면증처럼 불편하기 시작했다. 뇌가 충분히 쉬지 못해 그런 것 아닐까? 아니면 코로나에게 감금돼서 일까?  조울증도 생겼다. 날씨 따라 기분 오락가락하고 작은 일로 섭섭해지면 바로 울이 찾아온다.


 글감이 떠올라 하던 일 멈추고 자판에 앉으면 갑자기 또 우울해진다. 다음에 써야지 하고 물러나서 나중에 메모를 보면 글 감에서 쉰내가 나는 것 같다. 그러니 글 요리도 하기 싫다.  그렇게 버린 글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뿐 아니라 회사 기획안도 손봐야 하는데  무기한 미루어 놓았다. 그렇게 우울의 한가운데 서 있다 갑자기 그녀가 머릿속에 찾아왔다.


 킴은 165cm 정도 키에 계란형 얼굴, 아몬드 눈을 가진 서구형 미인이다. 타고난 건지 후천적인 것인지 그녀는  호방한듯 진중했다. 남의 말을 잘 경청하며 과묵하고 자기 자랑도 하지 않았다.

  대학원 유학시절 알게 된 백인 학생과 캠퍼스 커플로 연애하다 결혼했고 그 둘 사이에는 아직 아이가 없다. 그들 덕에 비슷한 또 한 커플이 탄생했다. 킴의 남편 친구 죠셉이 킴 덕분에 한국 여자 케이와 결혼했다. 그들은 같은 동네 살면서 자매처럼 지냈다. 우리 가족이 그들 틈에 들어간 것은 우연이었지만 모두가 잘 어울렸다. 남편들은 자기들 틈에 나를 끼어주었다. 골프도 함께 치고 주말엔 음식도 나누며 어울렸다. 케이는 민항기 승무원이었고 킴은 미국 보험회사에서 제법 높은 관리직에 있었다.  


 그해 추수감사절, 킴의 초대를 받아 우리는 모두 모였다. 미국식 뷔페처럼 주방에 요리를 가득 채워 놓았고 전날부터 하루 종일 터키 굽느라 고생한 희생을 킴 부부는 기쁨으로 감당했다. 와인과 맥주, 잡담, 요란한 웃음소리, 할리우드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국제정치, 종교, 스포츠 등 다양한 화제와 대형 스크린에서 곧 튀어나올듯한 근육질 미식축구 선수가 뒤섞여 있었다. 남자들이 떠드는 동안 여자들은 한쪽 구석에 모여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구수한 한국말 냄새를 쫒아갔다. 붉은 조명이 자못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킴은 진지하게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 나는 정말 그 일이 아직도 후회돼"  킴은 슬픈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에서 대학 마치고 미국 계열 회사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했어. 유학자금도 마련하고 영어도 좀 배우려는 심산이었지. 그런데 회사 일이 늘 많아서 자주 집에 늦게 들어간 거야. 그때 내가 홀 어머니를 모시고 둘만 살았거든.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어. 참다 참다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해보니 이미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서 가망이 없고 수술보다 집에서 편안히 쉬라는 거야. 그땐 엄마랑 참 많이 울었어. 엄마는 자긴 괜찮으니 회사 열심히 다니고 평소처럼 살자 하시더라고. 어차피 죽는데 청승 떨 거 없다. 그냥 평소처럼 살다 죽음 모르게 쓰윽 죽으면 되지 뭐. 우리는 정신 차리고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는 노력을 했어.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난 엄마한테 내 나름 은밀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했어. 한다고 하는데도 자주 늦게 퇴근하는 것이 문제였지. 엄마는 일찍 주무시고 나는 엄마 잠 안 깨시게 조용히 들어와 엄마 옆에 잠들곤 했어. 그날도 너무 늦어서 조용히 씻고 잠들었어. 그런데 아침에 눈떠보니 늦잠을 잔 거야. 엄마는 계속 주무시고... " 엄마, 우리 너무 오래 잤어, 나 출근 늦었으니까 서두르자. 엄마 아침 머 드실래요?" "..." 엄마가 기척이 없어. 그래서 주무시는 엄마 등을 돌려 얼굴을 보았는데, 엄마 얼굴이, 엄마가 돌아가신 거야."  이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킴은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기가 차서 슬픔에 젖고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잠시 후 그녀가  숨을 고르자 이어서 말했다. " 엄마가 밤에 돌아가신 거야. 난 그것도 모르고  쿨쿨, 아니 그날은 좀 추워서 엄마 등 뒤에서 엄마를 안고 잔 거 같아. 돌아가신 엄마 시신을. 내가 왜 몰랐을까? 엄마가 떠난 것을 바보처럼 모르고 무심하게 자고 있었어" 낮고 무거운 톤으로 오래된 일인데 어제 일처럼 그녀는 스스로 자기를 꾸짖으며 말했다. " 그게 정말 후회되는 거야. 엄마 임종을 보지 못한 거. '엄마 안녕'이라고 인사도 못했어. 혼자 가시게 놔둔 거야." 살짝 취해서 풋볼 경기에 집중하던 킴의 남편이 우리 쪽을 보았다. 그는 자기 아내가 엄마 이야기하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숙연한 표정으로 다가와 그는 아내를 안아주며 머리에 입을 맞추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오랫동안 그녀의 후회하는 눈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차분한 그녀에게 그렇게 깊은 상처가 담겨 있는지 몰랐다. 미국에서 이민 수속 중에 내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지시면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상처가 어떻게 아픈지, 얼마나 후회되는지 나도 분명히 알았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후회를 숙명처럼 지고 살아간다.    

 


 

 한국에서 검정 교복 입고 학교 다닐 때 우리 동네에는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동네 불량배들이 있었다. 그들은 학교와 동네 개천을 잇는 다리에 진을 치고 앉아 학생들에게 통행세를 요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뒷골목에 끌려가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다리에는 제일 작고 어린 불량배 한 명만 나와있었고 큰 형들은 골목 뒤에 숨어 있었다. 우리는 항상 통행세를 내려고 잔돈을 가지고 다녔 그들은 의리 있게 큰돈 내면 거스름 돈도 주었다. 어떤 주말에 나는 절친과 함께 그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그날은 주말이라 그런지 지키는 애들이 없어 무료로 건너는 줄 알았다. " 야! 거기!" 하필 난 그날 돈도 없었다. 고개를 슬쩍 돌려 돌아보니 아는 얼굴이다. 친구에게 속삭였다. " 나, 저 놈 알아. 무지 아프게 때려, 그러니까 우리 도망가자" 그들은 이쪽으로 다가오며 " 이노무 자슥들이 뭐라코 씨부리나?" " 자 지금이야!" 우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둘이 한 방향으로 튀었다. " 어디로 가지?" " 우리 집! 우리 집에 아버지 계셔" 내 친구가 소리쳤다. 우리는 장동건이 나오는 영화 <친구>처럼 숨이 턱밑에 찰 때까지 달렸다. 뒤를 흘끝보니 따라오는 놈들이 꿰 많다. " 헉헉, 야, 다섯 명도 더 되는 거 같아!" 우리는 점점 그들에게 따라 잡히고 있었다.


이 골목만 돌면 친구네 집이다. "쾅쾅쾅, 아버지 문 열어요! 아버지! 아버지!" 친구 아버지가 아들 목소리를 듣고 "지잉"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그때는 "지잉"하고 자동으로 문을 여는 장치가 많았다.) 우리 둘은 마당으로 뛰어 들어가고 아버지는 그걸 보고 너무 놀라서 " 무슨 일인데 왜 그래?" 하고 소리쳤다. 순간 놈들이 이 집을 알았다. " 쾅! 쾅! 쾅! 문 열어! 너네 좋게 말할 때 나와라! 안 그러면 쳐들어가서 다 부신다!"


 친구 아버지가 소리 질렀다. " 너희 이놈들 뭐야! 왜 남의 집 부수려고 해!" 철 대문 사이로 먹이 앞의 야수처럼 빛나는 놈들의 눈이 보이고 아버지의 엄포에도 아랑곳없이 문을 발로 차고 있었다. " 여보! 파출소에 전화해! 강도들이 쳐들어 왔다고! " 친구 어머니가 파출소에 신고하는 사이 놈들은 고구려와 당나라의 안시성 전투처럼 그 견고한 철문을 떼로 부수기 시작했다. 마당에 있던  우리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버지가 말했다. " 너희들 어서 피해! 내가 상대할 거야!" 친구 아버지는 성주처럼 죽을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나는 마당 옆 부엌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쾅!!!" 철문이 넘어진 것 같았다. "이놈들! 뭐하는 놈들이야! 왜 남의 집에 와서 행패야!" 아버지 목소리가 잠시 들렸으나 " 이 새끼들 어디 갔어! 찾아!" 하는 소리에 묻혔다. 주방에 숨어 있던 게 패착이었다. 급할 땐 머리를 잘 써야 하는데 난 참 멍청했다. (꿩처럼 머리만 숨기고 몸은 다 보이는 ) 게다가 난 싸움 경력이 전혀 없는 범생이 교회 오빠였다.  나는 금방 발각되었다. "퍽!" 주먹이 날아왔다. 지난겨울 얼음 얼었나 보려고 돌멩이 던지다 잡혀간 저수지에서 기절한 이래 평생 두 번째 기절이었다. 놈의 주먹은 돌멩이로 머리를 깐 것 같았다. 바로 정신을 잃었다.  내가 의식을 잃고 있는 사이 파출소에서 경찰이 출동했단다.  호루라기 불고 순경이 방망이 휘두르고, 이번엔 놈들이 도망갔다고 했다.  


 며칠 뒤 나는 난생처음 파출소에 출두했다. 거기에는 놈들도 잡혀와 있었다. 형사가 피해자 조사를 시작했다.


 "저놈들 맞아?"


" 네"


"저놈들 중에 누가 때렸어?"


"기억이 안 나요"


" 맞은 놈이 기억 못 하면 누가 하냐, 인마?"


"..."


형사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가락 두 개를 들고 타자기만 노려봤다.


 " 자, 저놈들 처벌을 원해?"  


 경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내 눈퉁이가 밤탱이가 되었는데 처벌을 원하냐고?


 놈들의 아부지는 우리 아부지와 친구 아부지한테 찾아와 싹싹 빌고 내 치료비며 집 마당의 장독 때려 부순 것과 그 안의 간장, 된장, 김치 그리고 현관 마루 유리창과 철대문 수리비를 손해 배상하고 합의했다.

" 동네 사람끼리" 이것이 용서의 이유였다. 다행히 " 너네들 얘네 한번 더 건들면 영창 가는 줄 알아!" 파출소장의 엄포로 우리 신변 보장되었고, 하하, 그 후 친구와 나는 다리 통행료를 내지 않고 건너 다녔다. 깡패들이 "애프터 쏴비스"라고 했다.    


 머릿속 지나간 후회들이 점점 차오르다  더 이상 채울 곳이 없어지면 비로소  삶 마치게 된다.      

                                                

바리톤 석상근-친구의 이별 (꼭 들으세요 Guarantee!!!)

https://youtu.be/CwmQczQvQ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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