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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13. 2021

타인의 죽음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무지 화난 듯 앙칼진 소리를 요란스레 질러대며 내 달리는 사이렌 소리는 미국의 대표 소리다. 시카고 한가운데 사는 나는 매일 이 소리를 듣는다. 소리 끝엔  타인의 죽음이 려있다.

 



 아주 오래전 시민권 심사 때문에 이민국에 앉아 있었다. 기다림의 긴장은 인생 최고 레벨로 내게 차고 들어와 숨 막히는 스릴을 뭉근히 맛보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 그런지 기다리는 동안 죽어서 천당 지옥 정하는 대기실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상상은 구체적으로 둥지를 틀고 점점 더 커졌다. 그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념을 녹여 먹으며 한참을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하얀색으로 덧칠한 사무실, 하얀 양복을 입은 하정우 배우가 나를 흘끗 무심하게 보고 말없이 한참 서류만 뒤적였다. " 아, 선생님 무슨 착오가 있나 본데요, 잘못 오셨습니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닙니다. 곧 다시 돌아가게 될 겁니다 " 늦잠을 잤나? 눈을 떠보니 나는 응급실 침대에 수많은 기계 호스와 함께 누워 있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죽음이었다.


" 다음 들어오세요"


상념이 그 소리에 놀라 "퍽"소리를 내며 터졌다.


 방에 들어서니 이민국 직원은 짧은 거짓 미소를 스치듯 잠깐 지어 보이고 하정우처럼 한참 동안 서류를  뒤적였다. 몇 가지 간단한 사실만 확인하고 바로 시민권 문제로 넘어갔다. 나는 달달 외우고 가서 무엇을 물어보든 자신이 있었다.     

 What is the supreme law of the land? (미국 최고의 법은 무엇입니까?)

나는 대답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 장난치지 말고 빨리하자, 뒤에 사람들 많이 기다려" 그는 약간 지루한 얼굴로 채근했다. 그런데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1번 문제는 시작 문제라 닳고 닳도록 외운 것인데 긴장하면 뇌가 하얀 얼음으로 변하는 그 병이 도진 거다. 못 참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 친구였다.  " C로 시작하는 단어 " " 아, Constitution (헌법)" 그는 갑자기 웃음보가 터져 낄낄 거리며 이상하게 웃었고, 나머지 문제는 몸짓으로 단어 맞히기 게임처럼 문제를 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재 빠르게 대답했다. 그때마다  이번엔 깔깔 거리며 웃다. 질문을 다 마치자 "곧 서류 작업 완료되면 편지가 갈 거야. 그리고 너, 앞으론 장난치지 마" (훗, 다양하게 웃기는 녀석, 앞으로 올 일도 없고, 장난 아니고 정신병이거든?) 나는 지옥으로 들어가 천국으로 나왔다.  문을 나서자 주먹 불끈 쥐고 미소를 머금은 채 낮게 소리 질렀다. " 앗싸~"

 지옥에 들어갈 수많은 대기자들이 극장에서 영화 먼저 보고 나온 사람 얼굴 쳐다보듯 보다가, "바본가?, 아니야 쉬운가 보지..." 자기네 나라말로 끼리끼리 뭐라 뭐라 웅얼거린다.  


" 남의 일이니까 쉬워 보이지? 들어가 봐라, 머리가 하얘지는 지옥을 맛볼 것이다"


 나는 내 얼굴의 미소도 채 닦지 못한 채 혼자 중얼거리며 이민국을 총총 빠져나왔다.




 남부에 살 땐 할머니 한 분을 도와드린 적이 있었다.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등지고 얼마 못가 그녀 몸에도 악성 종양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그녀는 일찍 발견해 의사 말로 간단한 수술이면 된다고 했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고, 죽는 것처럼 마취하고 받는 수술은 남의 아니면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도 어려서 수술받을 때  "자, 하나 둘 셋 하면 잠듭니다." 하는 마취과 의사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의식이 꺼져가며  " 웃겨, 최면 걸어?" 하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좀 지나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 얘, 마취 아직 안된 것 같아요, 좀 더 넣을까요?" 한참 지나 비로소 몸에 들어오는 느낌 (안 아픈)들었고 나는 죽은 듯 잠이 들었다.


 " 매니큐어를 지워야 손톱에 끼우는 장치가 작동합니다." 히스패닉 간호사는 친절하게 우리를 안심시켰다. 준비를 마치자 할머니는 얼굴에 걱정을 문신하고 긴 복도를 지나 수술실로 들어갔다. " 잘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는 네 말을 믿는다는 웃고 있지만 걱정을 문신한 얼굴엔 깊은 공포까지 한 줄 더 그려 넣었다. 


 환자 보호자가 갈 수 있는 경계선, 삶과 죽음의 DMZ, 나는 그곳을 넘지 못하고 병원 한쪽의 기도실로 향했다. 아까 들어갈 때 할머니 얼굴 보느라 수술실 가는 복도를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오면서 보니 길고 곧은 복도는 형광등 한 개가 깜빡거리고  하얀 천장에 하얀 벽 (미국의 벽은 시멘트로 마감하지 않고 그냥 색을 입힌 벽이 많다)이었다. 그때, 우리가 죽으면 몸에서 나와 이런 복도를 혼자 걸을지 모른다는 상상이 밀려 들어왔다. 작은 기도실에서 홀로 기도할 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남의 죽음이 아닌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자 하얀 형광등 끔뻑거리는 하얀 복도를 나와 그녀는 여러색을 가진  밝은 세상으로 들어가 건강해졌다.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먼저 떠난 분들을 보내며 단단해진 마음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던 시절을 넘어 이젠 담담해졌다. 가수 바비킴이 툭 던지 노래하면 가사와 음색이 어우러져 감칠맛 나듯, " 이젠 죽어야지" 거짓말하는 노인처럼, 그만 살아도 이젠 원이 없다는 조숙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어려서 그렇게 훌륭해지고 싶었는데 그것이 전부 허상이라는 사실을 일찍 깨닫고 나자 난 더 이상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았다.        



 몇 페이지 남겨놓고 읽지 못한 철학자 마크 롤랜즈의 " 철학자와 늑대"라는 낡은 책을 어제 다 읽었다.

" 삶의 의미가 소유할 수 있는 무언가에 있다는 생각은 추측하건대 무엇인가를 쟁취하려는 영장류적 영혼의 유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는 문장에 꽂혔다. 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삶의 의미를 소유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나는 시간이 미래에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간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해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건 그렇고 그는 늑대개 이야기하면서 솔직하고 폭넓은 인문학적 통찰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삶은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이는 듯하다.  내 생각도 인생은 삶을 탐구하러 왔지 돈을 연구하러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직까지 집이나 땅의 미래 차액을 노리는 원시적 행태는 삶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 " 돈 없어봐, 자식도 무시해 이 사람아!" 그 말은 맞는 말인데 틀린 말이다.

 

 바이든이 입금한다니 잔고를 들여다본다. 공돈 생기면 뭐하지?  재개발 지역 땅을 백 불어치 살까?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고 힘 빼고 삶을 느끼다 보면 나름대로 뭔가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아직 삶에게 배울 것이 너무 많다. 나는 앞으로 더 힘들어도 돈, 네가 최고라고 말해주진 않을 거다. 살면서 미안했던 사람, 어려울 때 신세 진 사람들에게 "네가 그때 나에게 최고였어" 라며 선물하고 싶다.


오늘도 남에게 잘 보이려고,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내 글에 공감해 웃어주고 눈물짓는 한 사람 독자만 생각하며 쓰고, 타인의 인생 아닌 내 인생을 살며 나의 길을 찾아 걷는다.

    

어제 힘들고, 어제 실직하고, 어제 이별하고 누구나 그렇게 힘들게 오늘을 만난다.

힘들 때는 힘쓸 때지 힘뺄 때가 아님도 알고 지나가면 좋겠지. 


 타인의 죽음처럼 내 죽음의 순서가 되면 그때는 힘빼고 인생을 놓을만한 용기가 생기겠지?

아마...

  


                    

 

<시소 타기- 안단테>


해진 저녁 텅 빈 골목을 너와 둘이 걷다가 어릴 적 추억으로 찾아낸 조그만 놀이터     

외등 하나 우릴 밝혀 작은 시소 타고 구름보다 더 높이 올라가지요    


네가 별을 따오거든 난 어둠을 담아올게 너의 별이 내 안에서 반짝일 수 있도록     

너의 미소가 환히 올라 달로 뜬다면 너를 안아 내 품은 밤이 돼야지     


네가 별을 따오거든 난 어둠을 담아올게 네가 별을 따오거든 난 어둠을 담아올게

너의 별이 내 안에서 반짝일 수 있도록 너의 미소가 환히 올라 달로 뜬다면

  

너를 안아 내 품은 밤이 돼야지 밤이 돼야지


  https://youtu.be/2 KlQ6 va906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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