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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16. 2021

오래된 기억

 "선배 이 음악 좀 들어봐. 우리 중창할 때 생각나?"


" 그리운 시절이지"


 오랜만에 대학 선배에게 보낼 마땅한 안부 글머리가 안 떠올라 내 추억의 브런치 글 하나와 노래 파일을 곱게 싸서 문자로 보냈다. 선배는 "그리운 시절"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시절로 표를 서둘러 끊었다.




 그리운 시절, 나는 대학 동아리 남성중창단이었다. 나와 멜로디 파트를 맡은 동기는 성악과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중간에 그만두고 우리 학교에 재수하고 들어온 친구였그 친구 목에선 파바로티 소리가 났다. 그에 반해 나는 여덟 살 때 "그 어리신 예수"라는 노래로 교회에서 데뷔하여 음악인생을 시작했다. 교회 선생님은 참 잘했다고 껌 한 통을 상으로 주었고 나는 껌값이 뭔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 후 나는 항상 합창단이나 중창단이었고 곡 중 쏠로이스트 Soloist 였다. 그래서 옆 친구 파바로티가 견제되지만 나는 기죽지 않고 노래했다. 선배는 베이스를 담당했는데 묵직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신이 계시를 말할 때 사용하던 그 소리였다. 노래 때문에 우리 멤버 모두는 금방 친해졌다.      



 내가 어릴 땐 전축이란 것이 있었다.

 50인치 티뷔 스탠드 만한 전축을 거실에 들여놓은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어머니가 외출하기 전 미리 해놓은 간식이 뭔가 보려고 식탁보를 열었다. " 무슨 특별한 것이 없나 찾아!" 오늘 계란 프라이 두 개가 그것인 줄 알고,


 "뭐? 계란?" 


" 아니? 더 고개를 돌려봐 "  


 나는 몇 날 며칠 LP판을 바꿔가며 그 앞에 매일 앉아 있었다. 그때 알만한 성악가들과 사랑에 빠졌고 파바로티가 복근 힘만으로 그랜드 피아노를 민다는 글을 읽고 매일 윗몸일으키기 하던 도 있었다.  기타 사달라고 조르다 몇 주 동안 아버지 구두를 거울로 만들었고  나는 결국 기타 끈 어깨에 걸었다.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책도 가까이했다.

  만화책, 위인전부터 시작해 가리지 않고 읽었다. 헬렌 켈러가 되고 싶어 어떻게 해야 장애를 가질 수 있나 엉뚱한 고민도 했다. 아들만 둘이라 피아노 배울 사람이 없 아버지는 어머니만을 위해 조금 싼 오르간을 사 오셨다. 어머니는 교회 성가대 쏠로이스트 이자 마리아 칼라스였다. 오르간을 사우리 집엔 가족중창단이 창설되었다. 나는 테너, 아버지는 베이스였는데 아버지 저음은 별로였다. 내가 절대 음감이 있어 아버지를 지적하면 평소 무섭던 아버지가 신기하게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하셨다. 그래서 나는 노래가 좋았다.


  음악을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 덕에 학교 음악시간도 즐거웠다. 그때는 지금처럼 사지선다형 맞추는 기계인간 찍어내지 않고 낭만 인간을 생산했다.


 중학교 음악 선생님은 날라리였다. 서울대 음대를 나왔는데 음악 시간에 자살에 실패 안 하고 확실하게 죽는 법,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 걸리면 피하는 법등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 서울대가 나쁜 학교라는 것을  알았다.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은 은하철도 999 차장으로 나오는 성우(김기현)과

같은 목소리, 같은 외모를 가진 실력있고 자상한 예술가였다. 우리 학교는 서울에 몇 안 되는 사립이라 입시위주 수업보다 올바른 인간 만들기에 역점을 두었다. 그래도 인간이 되려면 아직 한참 먼 아이들이 많아서 체육 선생님은 매일 몽둥이 들고 우리를 쫓아다녔다. 1학년 때는 인간이 덜 된 선배들에게 맞고 3학년 때는  인간이 덜된 내가 후배들을 때렸다. 성적 떨어지면 아버지한테  맞고, 학교 가면 선생님에게 이유 없이 맞고(한 명이 수학 문제 못 풀면 대각선으로 앉은 애들이 단체로 나가서 맞았다. 재수 없는 날은 하루 종일 맞았다 ), 군대 가서도 맞고, 폭력은 그렇게 대물림되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동력이었다.  


 하지만 예술인 선생님은 많이 달라서 음악시간에 클래식을 틀어주었다. (수학 시간에 맞고, 다음 시간에 음악이면 낭만적이었다.) 독주 파트에 악기가 무엇인지, 작곡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반복되는 파트는 화성학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런 것을 매 맞지 않고 배웠다. 악보 읽는 법도 배우고 노래 시험도 자주 봤다. 나는 음악 선생님의 총애를 받고 사랑을 받으며 고교 중창단에 뽑혔다. 음악을 좋아하던 나는 음악 덕분에 남보다 빠르게 인간이 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때가 되면 담임선생님에게 봉투를 주셨다. 선생님은 가끔은 나를 불러 "요즘 아버지가 뜸하시다"며 서랍을 두 번 열고 닫았다. 아버지에게 본 그대로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다음날 학교를 다녀 가셨다. 그 후 한동안 담임선생님도 나를 사랑했다.

 



 음악과 함께 했던 나의 학창 시절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기억이 그리워  당시 친구들을 만나면 어른이 된 친구들은 모르는 사람처럼 변했다.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한국 갔을 때 크게 실수한 것 중 하나는 기억 속의 그들을 과거의 그들로 기대한 것이었다. 추억의 인물들과 "어제"는 통하는데 "지금" 막혀 있었다.  그래서 추억, 오래된 것은 그냥 두기로 했다.  


 나는 요즘 내 오래된 물건에 애착을 느낀다. 이유야 잘 모르지만 손때 묻은 물건을 경건하게 대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 구입해 신던 운동화를 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 산 새 운동화 때문에 밀려난 것이다. 조금 더 신을 수도 있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하나를 버려야 다른 하나를 산다. 내 삶의 생존 중량을 제한해서 그런가? 그런데 쓰레기 통에 버린 운동화를 다음날 다시 찾았다. 한참 동안 운동화를 바라보다 마음으로 안녕, 인사하고 떠나보냈다. 왠지 운동화가 죽은  사람 몸 같아서.   


  내 외장하드에는 내 머릿속 기억보다 더 크고 방대한 양의 기억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곳엔 냄새가 없다. 향기를 간직 못하는 인공 화초 같다. 그러나  내 머릿속의  기억은 그때그대로 보고, 느끼고, 맡는다. 그래서 난 소중한 기억을 만날 때마다 한 개의 악기로 연주하는 클래식을 듣는다. 음악은 습관적으로 친밀한 것이라 오래된 기억으로 가는 접을 돕는다. 기억 속을 다니면 달콤한 것만 만나지 않는다. 지우고 싶은 것, 부끄러운 것도 만난다. 오랫동안 애써 외면하다 기억 갈피에 남아있는 슬픈 기억도 만나면 당황스럽다. 기억은 때로 스스로에게 조작되고 자기가 원하는 것과 자기가 믿는 것을 편집한다.  "연애의 기억"에서 반스는 자신의 기억으로 타인의 기억을 기억한다. 어른의 기억으로 소년을 설명한다. 어른의 기억은 유리한 것만 남기고 불리한 것은 지워버리는 특징을 갖는다. 그래서 어른들은 불리한 사유로 법정에 서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할 무렵 나는 반항적인 녀석들을 미워했다. 워싱턴 DC에 사는 친한 교수님 집에 놀러 가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 교수님, 아이들이 말 안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교수님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 그래도 사랑해야지 " 나는 실망스러운 어투로 되물었다. " 그런 건 알지만 못하는 거잖아요?" 스승님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다시 말했다. " 아이들한테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어. 잘못해도 실수해도 부모 생각과 달라도 사랑하다 보면 아이들이 변해"


 나는 "그럼에도 해야 하는" 그 사랑에 성공하지 못했다. 

 누군가 말했다. "아이들 에게 뭘 바래요? 아이들이 어릴 때 이미 다 보상받았잖아"


 그럼에도 어릴 때 아이들 기억을 만나면 한없이 행복하다.

 큰 애는 내 목에 올려놓고 키웠고 작은애는 편애하며 살았다. " 나는 우연히 길에서 아버지 마주칠 때 용돈 하라고 만원 주던 때가 정말  행복했어" 둘째는 나에 대한 기억이 겨우 그 정도 인가보다.


 나는 아버지 주머니에서 지폐 훔치다 걸려서 죽도록 맞은 엄청난 기억이 있는데...


 오래된 기억 다시 한번 정리해야겠다.


그냥 두면 아픈 기억, 버리고 싶은 기억이 소중한 기억을 만나 상처 줄지 모르니까...


남아있는 시간 동안  좋은 기억  많이  만들어야겠다.

        


          https://youtu.be/gUGMXMPMC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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