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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24. 2021

나 다운 것

 자기답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의 지름길은 아닐까?


 영화 미나리 때문에 생각이 시작되었다. 봉준호 감독 이후 한국인이 한번 더 영화계를 들썩이게 한 이방인 이야기, 윤여정 선생이 중심을 잘 잡아 주었다. 잔잔한데 재미없었다. 하지만 감독의 삶이 영화 속에 녹아있는 것은 희미하게 보였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 은 마틴 스콧세이지 감독의 말이 아니라 봉준호의 말이다. 스콧세이지 감독의 평전을 써낸 작가가 한 말을 봉 감독이 다시 한번 요약한 것이다. 역시 봉 감독이 봉 감독했다. 나는 그 말을 "가장 자기 다운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다시 생각해 보았다. 글 쓰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래서 가장 자기 다운 것을 찾아 나섰다. 


 먼저 세상으로 들어가 보았다. 세상의 우리는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가식이라도 타인에게 나를 잘 포장해 대한다. 세상을 민낯으로 살면 상처 입을 것이 뻔하기에 인간사회 속에서 우리는 나답지 않게 산다. 타인에게 맞춰주는 나는 또 다른 나의 타인이다. 그나마 나신으로 대하는 사람은 가족과 절친이다. 가족의 울타리는 안전하지만 때론 위험하기도 하다. 가족의 갑은 민낯 토하고 을은 그가 토 세상 고뇌의 구토물을 받아 주어야 한다. 때론 가족도 민낯 말고 가면 쓰고 사는 것이  더 나을런지 모른다.        


 민낯의 언어도 옷을 입는다. 누군 화려하고 지적인 옷을 대화에 입힌다. 유식해 보이려 외국어도 섞어 쓰고, 고상한 척하려 비범한 취미, 전문 용어도 자랑한다. 집에 와서 " 배고파, 밥 줘" 할 때 언어는 알몸이 된다. 돈 많이 버는 남자는 바빠서 자기를 반성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는 감옥이나 가야 할 일이 없어 자기를 돌아본다.  그래서 바쁜 남자의 언어는 조급하고 거칠다. 그는 삶을 아다지오 Adagio로 조절해야 진심을 담게 된다. 민낯의 언어가 아름다운 사람도 많다. 그들은 부자가 아니라도 교양 있고 지적이며 세련되다. 마음은 말로 드러나기에 가장 나 다움을 알려면 자기 말을 자기가 들어봐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냥한 언어를 자주 듣는다면 자신이 그런 언어를 사용해서 반사되는 경우가 많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듯 다정한 말에도 욕 뱉기 어렵다. (물론 예외도 있다)  결국 자기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자기 언어다.  


 글도 옷을 입는다. 태생적으로 문장에 교활함을 입히는 글쟁이도 있다. 그런 글은 R&B 같지만 읽고 나면 느끼하다.  옛날 글 선배는 수필을 판소리처럼 적었다. 판소리는 구성지고 또 슬프다. 민족의 고결한 애환이 담겼다.  브런치 글은 대부분 경수필,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정보를 담은 기사나 생각을 가볍게 적은 글이 많다. 이곳에서 중수필은 인기를 얻지 못한다. 나는 수수한데 묵직한 글이 참 좋다. 글은 언어보다 더 진중하게 자기다움을 표현한다. 글을 잘 쓰는 것은 많이 읽어야 가능하고 많이 읽고 쓰는 것은 지성 없이 감당하기 힘들다. 영화 같은 내 인생에 감독이 나라면 내 글은 대본이고 내 말은 배우 같다.  


  가장 나다운 것?

 

  삼십 대에 나는 내가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삼십 대를 미국에서 보냈으니 망정이지 더 늦은 나이에 들어왔으면 좌우 살피고 눈치 보느라 마음껏 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요즘은 트럼프가 부셔버린 미국이 좀 힘들다)  나는 옛날부터 인생은 마흔다섯이 내리막길 초입이라 생각했다. 아마 그즈음 내가 철이 든 것 같다. 하지만 철이 들어도 내 맘대로 하고 살았다. 스스로 의롭고 혼자만 훌륭했다. 가족과 주변에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내 위치(혹은 직무의 권력)때문에 저항도 못하고 당하고만 살았을 것이다. 타인에게 언어로 고집으로 상처 주고, 장난으로 던진 내 돌에 그들은 매일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스스로 돌이켜 보면 그때가 참 한심해 보인다. 지금의 깨달음으로 과거를 다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과거에 잘못 때문에 "되로 주고 말로 받을 때"도 있다.


 

대부분 교포 자녀들은 부모보다 영어를 잘한다. 내가 아들에게 되로 준 것은, 녀석이 대학 갈 무렵 재정보조를 받기 위해 팹사(FAFSA)– Free Application for Federal Student Aid -를 신청할 때였다. 나는 혼자 힘으로 해보다가 모르면 물어보라고 12학년 아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어떤 학부모는 전문가에게 돈 주고 의뢰한 경우도 있었다. 아들은 너무 많이 고생했을 것이다. 그 일은 마음에 두고두고 오랫동안 반성했다. 그런데 최근 좀 어려운 의료 보험 관련 서류가 귀찮아 아들에게 해달라고 했다. " 아빠, 혼자 하실 수 있잖아요? 해보시고 어려운 거 있으면 그때 물어보세요 "  "..." 나는 말로 받았다.     

 

 가장 나 다운 것, 자기를 반성하고 돌아보는 지점에서 싹이 는 것을 보았다. 


 내가 가진 약점이 무엇인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중에 어떤 기질이 나의 삶에 암적 요소인지 구분해야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시작한다.

 얼마 전 아마존에서 스포츠 전자시계를 구입했다. 가볍게 쓰다 버려도 되고 잃어버려도 길에서 강도 만나도 옛다! 하고 아깝지 않은 그런 목적으로 샀다. 시계가 도착했는 데 사용설명서가 여러 나라말로 되어서 두껍다. 한국말은 없고 영어로 된 아주 작은 글씨를 바늘에 실끼듯 읽었다. 전혀 필요 없는 기능, 세계시간이 네 곳이나 나온다. 조작을 잘 못하겠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전자상거래의 가장 문제는 사진과 실제가 다르다는 점이다. 나의 아마존 만족도는 70점 정도다. 이번에도 망했다 생각하고 카우치 Couch에 시계 던져놓고 벼룩 똥만 한 글씨를 휴대폰으로 촬영해 크게 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 A를 길게 누르고 B를 누른 뒤 세 번..." 이해하고 나자 다시 시도했다. 쉬운걸 낑낑 헤매다니.(나는 조립식 가구도 무척 싫어한다.) 네 개 국가 시간을 성공적으로 맞추고 나자 입에 미소 달고 손엔 시계 달고 다닌다.

 

 우리도 자기 사용설명서를 이해 못해 실패할 때가 많다. 

 자기 사용설명서는 집에 있다.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다. 진지하게 날 잡아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에 대해 물어봐야 한다. 내가 움직일 때 당신은 무엇이 불편한지? 나의 어떤 점이 반복해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자기 사용설명서를 알고 나자,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성찰의 자리에선 마침내 나를 대면했다. 내속의 나는 생각보다 초라하고 낡아 있었다. 코로나가 선물한 가택연금을 기회로 재활을 결심했다. 혈압약은 끊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다.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고 나쁜 것은 거의 먹지 않았다. (콜라는 조금...)      

    

 중요한 건 기세야.

 건강해지기 시작하자 집 나간 자신감이 돌아왔다. 자신감이 돌아오자 불면증과 우울증이 짐 정리 하기 시작했다. 방 뺀다 하길래 그러시라고 했다. 원망과 분노도 분위기 보더니 말없이 떠났다. 젊은 철학자 마크 롤랜즈 가 "행복은 감정"이라던데 나의 존재만으로 행복을 느끼자 행복의 기세가 밀려들어왔다. 사실 환경이 좋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잘 안다. 소유로 행복을 추구하면 그리 살다 고만고만 죽는 것도 알아버렸다.

        

 나는 요즘 나답게 사는 것에 많이 접근했고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정리되었다.  

 나 답게 사는 것은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사는 것과 닿아있고 현재를 살라는 말과도 친하다.


 나는 나의 약점과 장점을 잘 알고 있으며 사람들을 대하는 법과 세상을 똑똑하게 살아가는 법, 나보다 부족한 사람과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이해한다. 삶의 목적과 죽음에 대한 정리도 마쳤다. 누가 들으면 완벽한걸? 오해하거나 비웃을지 모르지만 한마디로 나를 정리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어수선한 내 안을 정리하고 나니 나답게 살아갈 일에 용기를 가졌다는 소리기도 하다.  


마음이 어수선할 땐 대청소가 제일 좋다.  


다음엔 오지에서 살아봐야겠다.


 https://youtu.be/fNU-XAZjh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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