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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27. 2021

이별루틴 routine

공간과 헤어지다

 삶과 농밀하게 지내다 보면 삶의 한편엔 루틴이 싹튼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이사를 꽤 많이 다녀 그런지 나도 이사를 많이 하고 살았다. 이사는 언뜻 보면 쉬워 보이지만 공간과 사람을 뿌리째 바꾸는 점에서 식물과 닮았다. 익숙한 사람, 익숙한 공간을 파헤치고 처음 태어나듯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인제로 이사 가서는 참 좋았다. 

 논두렁에서 아버지와 물고기도 잡고 밤에 보자기 펴고 불을 비춰 메뚜기도 잡았다. 잡은 물고기는 어죽 끓여먹고 한 보따리 메뚜기는 오목한 프라이팬에 뚜껑을 닫아 와두두둑 소리 들으며 구워 먹었다. 동심 가득한 먹거리보다 더 좋은 것은 아버지가 우리와 많이 놀아준 것이었다. 그때 기억은 지금도 뇌에서 꺼내면 싱싱하게 팔딱팔딱 잡혀 올라온다. 고향이 서울이지만 나는 그저 시골이 좋았다. 오죽하면 전주가 고향인 절친에게 신세한탄을 매일 했을까. "너는 좋겠다. 고향 가면 사람들이 널 반기지?" "그건 옛말이야." 친구는 내가 자기 고향을 부러워할까 봐 단번에 내 상상을 일축했다. 그래서 고향 없는 나는 고향 못 가는 명절을 싫어했다. 고향 없는 아버지도 " 덩거 장에 던깃불이 번떡 번떡 하드랫어, 야" 하며 이북 사투리를 썼다. 피난 때  실종된 당신 아버지, 중공군과의 전투, 수류탄에 찢어진 당신 다리, 북한에 큰집 두고 온 이야기까지 평양 사투리로 반복해서 말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지만 억센 사투리, 큰 목소리, 공산당, 나에게만 엄한 아버지, 그냥 다 싫었다.




 미국에서도 이사를 많이 다녔다. 유학은 서부로 오고 이민은 중부로 왔다. 남부에도 살고 동부도 살았다. 이래저래 전국구다. 지금 사는 시카고에는 일 년 가까이 지내며 부쩍 정이 들었다. 미시간 호 덕분에 수돗물로도 마시고 상상 속 고향 처럼 어머니 품 같은 아늑함 마신다. 막상 떠날 때가 다가오면 익숙한 공간들이 울상을 짓는다.




 

 오래전 그때, 모두가 부러워하던 특차대학에 입학하자 친구들은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나를 축하해 주었다. 비만 오면 노란 우비 입고 다녀 눈여겨보다 짝사랑하게된 M도 그해 서울 동선동 S여대에 입학했다. 서로 다른 대학에 가도 우리는 계속 우정을 이어갔고 그해 여름 M에게 정식으로 사귀자고 했다. "정말? 나? Of course" 그녀는 예상외로 너무너무 좋아했다. 서로 짝사랑?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다니던 특차대학은 기숙사 생활을 해서 한주에 한번 데이트를 했다. 우리는 주말마다 그녀가 다니던 S여대를 중심으로 싸돌아 다녔다. 그녀는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 또래보다 키가 아주 커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녀 한번 흘끗 보고 나를 쳐다봤다. (예쁜 개 데리고 다니면 애견 한 번 보고 주인 한번 보듯) 뭐가 그리 좋은지 우리는 만나면 웃고, 떠들고, 좋아하고, 놀리고, 장난치고, 키스했다. 한번 만나면 항상 두 번 이상 밥 먹고 늦게까지 헤어지기 싫어하며 헤어졌다.


 그러던 그녀가 관악 S대 다니던 세 살 많은 동네형과 눈이 맞아 이별을 통보했다.


  미친년...


  그때 가장 어울리는 심정의 단어였다. 그 형은 보란 듯 내 앞을 배회하고 다녔다.




 중학생 때 나를 짝사랑하던 교회 여자 애한테 고백을 받고 사귀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교회 중등부 회장이었는데 우리 아버지가 교회일도 열심이고 장로가 되고 싶어 목사님께 심하게 아부하며 살아서, 목사 아들이던 교회 형이 회장 후임으로 나를 찍어 반 강제로 회장이 되었다. 교회 학생회장은 참 불편했다. 모범생처럼, 믿음이 좋은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부 형이 나랑 사귀던 그녀에게 찍쩝대서 몹시 화가

그 형에게 결투 신청을 했다. " 형, 한판 붙자. 내가 이기면 형이 물러나고 형이 이기면 맘대로 해" 그러자 그는 썩소를 머금고 뒷산에서 보자며 정확한 결투 장소를 알려주었다.


 기세가 중요했다. 길게 가면 덩치 큰 상대에게 체력이 달릴지 모르니 단칼에 없애버리기로 했다. 집에 무딘 과도가 있었다. 찾아보니 칼 가는 숫돌도 있었다. 나는 숫돌로 매일 과도를 갈았다. 한 이삼일 갈자 과도가 회칼이 되었다. 조금 무서웠다. 격투하다 칼을 뺏기면 내가 죽을지도 몰랐다.


 노트를 찢어 편지를 썼다. "그동안 키워주느라 고생했고, 고마웠고 내가 혹시 집에 안 오면 엄마는 이 편지를 보게 될 거야. 용감하게 살다가 죽는 거니 걱정하지 마. 행복해라" 동생만 좋아하는 아버지에게는 아무 내용도 쓰고 싶지 않았다. 물론 동생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죽어도 남동생 가문의 대를 이을것 같았다.

 

 집에 있는 붕대로 칼집을 만들었다. 정보부 요원들이 가슴에 권총 차듯 종이로 과도를 한번 싸서 가슴에 붕대로 고정했다. 옷은 뭘 입을까 하다 교복이 좋겠다 생각하고 검정 교복을 찍찍이로 깨끗하게 해서 입었다. 볼펜심 넣은 모자도 게슈타포처럼 쓰고 거울을 보았다. 멋있었다. "그래 장렬히 싸우다 죽는 거야."



 집에서 뒷산까지 걸어서 30분. 보무도 당당하고 용감하게 국군처럼 걸었다. 그런데 교회 앞을 지나가야 했다. 미쳐 생각 못한 것은 하나님이 다 지켜볼 텐데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도 교회 여학생 때문에 결투하다 죽을 수도 있다? 첨탑 교회 십자가가 내 상념에 반성의 불을 지폈다. "그래도 결투는 약속이라 지켜야 해" 그 생각이 내 발걸음을 막 재촉하는 순간 뒤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하나님 음성이었다.



" 학생! 칼 떨어졌어!"


"네?"


 아뿔싸 과도가 떨어졌다. 


 아주머니는 매우 의아한 눈빛으로 "저 녀석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는 얼굴로 내 위아래를 흩어보았다. 우리 교회 다니는 집사님일지도 모른다. " 아, 네. 이게 왜 여기서 나오지?" 뭐라 한지도 모른다. 창피하고 쑥스러웠다. 나는 동네 쓰레기통에 칼을 버렸다. 하필이면 교회 앞에서 칼 떨어진 것을 신의 계시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당황한 채, 칼 없이 약속 장소에 갔다. 결투하는 형도 교복 입고 나왔다. " 준비됐어?" " 잠깐! 생각해 봤는데, 후배가 싸우자고 한 것은 잘못인 거 같아. 내가 결투 취소할게. 미안해. 형" 그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우리는 영화처럼 잔디에 누웠다. 그 후 그는 아주 오랫동안 친동생처럼 나를 품어주었다.


 여자 애는 우리 둘 모두에게 영문 모르고 차였다.     



 그것봐라, 나는 여자를 차면 찼지 채인 적이 별로 없었다. M에게 차인 것은 그만큼 충격이었다.  그 무렵 중간고사도 망치고 주말마다 만나던 그 시간이 죽을 만큼 힘들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싸돌아 다니던 모든 곳을 혼자 싸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술도 잘 못 마시는데 머리 아프게 "나는 술이야" 하며 퍼 마셨다. 그녀와 만나서 하루 두 번 밥 먹던 식당에 가서 혼밥 먹고 혼술 하기를 반복했다. 한강에도 혼자 갔다. 그렇게 취해서는 이제 장로님 되신 버지 집에도 갈 수 없었다. 내가 술 먹은 것을 아버지가 알면 분명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하며 부자관계 의절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탕자였다. 취한 김에 소주보다 더 막강한 양주 한병 더 사서 몰래 동생 방을 두드렸다. " 혁아, 혁아 문 열어" " 누구야? 형이야?" " 나 술 취했어. 조용히 문 열어!" 새벽 세시였다. 부모님이 깨지 않게 살금살금 기어들어갔다. 동생 방은 집 마당 끝 별관이라 소리만 줄이면 아버지가 안 깨실 것 같았다.

 

나는 엉금엉금, 수돗간 바가지라도 건들면 멈추고 다시 비틀비틀 기어들어가 혼자 또 양주를 한 병을 원샷했다.



 동생은 옛날이야기 할 때 항상 웃지 않고 한심하다는 듯 심각하게 말한다.


 " 형 그때 인사불성 돼가지고 내가 다 죽을 뻔한 거 알아? 아버지한테 걸리면 안 되지, 방에다 다 토했지, 막 울지, 아프다고 또 울지. 너는 완전 미친놈이었어!"


 동생은 깊은 새벽 신음소리 내며 죽어가는 나를 살리려고 굳게 잠긴 여러 군데 약국 문을 간절하게 두드리다 간신히 약을 구해왔다. " 쿵쿵쿵, 저기요! 문 좀 열어주세요! 제발 우리 형 좀 살려주세요! 우리 형 죽어가고 있어요! 아저씨!" 마침 어떤 약국 주인이 깊은 새벽 소란을 듣고 빠끔히 셔터문을 열었다. " 무슨 일이요?" " 우리 형이 술 취해서 죽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아무 약이라도, 좀 주세요." 약사는 비실비실 웃으며  약 한 봉지를 주었다. "술 취한 건 약도 없어. 토하고 물먹고 자라고 해." 대충 이거라도 먹이고..."


형도 참... 사랑은 무슨...



                                               

그때 그녀와 함께하던 공간과 헤어졌다.

아마 몇 달을 그녀와 다니던 공간과 이별하며 지냈다. 공간과 헤어지자 그녀를 마음에서 보낼 수 있었다.

대학 졸업할 무렵 그녀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 잘 지내지? 보고 싶다. 우리 다시 만날래?"


아마 그때부터 어딘가를 떠날 때 공간과 이별을 준비하며 지내는 루틴이 생긴 것 같다.


세월이 더 지나 내가 죽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랑하던 공간과 헤어지는 여행을 평소 루틴대로 할 작정이다.


호스피스에서 마지막을 보내긴 싫다...  


https://youtu.be/KfeRdH4Q_sg

Falling Slowly (영화 Once OST)


I don't know you
날 널 모르지만

But I want you
널 원해

All the more for that
널 위해 더 이상의 것을 바치겠어

Words fall through me
사람들의 말이 나를 관통 하고

And always fool me
항상 나를 속여

And I can't react
그리고 난 그에 대응하지 못해

And games that never amount
본래 의미하는 것보다

To more than they're meant
더한것을 절대 못 담는 게임들은

Will play themselves out
자기들이 알아서 게임을 해나갈거야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이 가라 앉는 배를 가지고 집을 향해 돌려놔

We've still got time
우린 아직 시간이 있어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너의 희망찬 목소리를 높여, 너에겐 선택권이 있어

You've made it now

지금 만들거야


 

Falling slowly, eyes that know me
천천히 떨어지네, 나를 아는 시선들

And I can't go back
그리고 난 돌아갈 수 없어

Moods that take me and erase me
나를 가져다가 지우는 감정들

And I'm painted black
그리고 난 까맣게 칠해져있어

You have suffered enough
넌 충분이 시련을 겪고

And warred with yourself
너 자신과 싸웠어

It's time that you won
이젠 너가 이길 차례야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이 가라 앉는 배를 가지고 집을 향해 돌려놔


We've still got time
우린 아직 시간이 있어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너의 희망찬 목소리를 높여, 너에겐 선택권이 있어


You've made it now


지금 만들거야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이 가라 앉는 배를 가지고 집을 향해 돌려놔

We've still got time
우린 아직 시간이 있어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너의 희망찬 목소리를 높여, 너에겐 선택권이 있어

You've made it now

지금 만들거야


 

Falling slowly sing your melody
천천히 떨어지네, 너의 멜로디를 불러

I'll sing along내가 따라 부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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