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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un 05. 2021

감정 폭력배

 그냥 깡패는 주먹으로 때리지만 감정 깡패는 말로 때린다.


 맞으면, 손에서 나온 주먹도 아프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더 아프다. 말로 맞은 상처는 잘 낫지 않을뿐더러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흉터가 남아 불편하다.


 젊을 땐 감정적 언어를 맘대로 휘두르며 살지만, 나이가 들어 철이 들고 차분해지면 참고 살던 가족에게 감정 폭력을 당한다. 아이들은 자기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를 떠나고 아내는 월급을 못 받게 될 무렵 무서워진다.  때론 무관심으로도 때린다. 바빠서 무관심하다지만 그까짓 밥벌이가 얼마나 대단하지 않은 것쯤은 이미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만할 때는 밥벌이 아니, 조직에서 인정받고 안정된 수입을 얻는 것만 최고의 가치라고 여겼지만 지나고 나니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기껏해야 자동차의 부속품만도 못한 젊음의 열정은 필요한 만큼 이용당하면 폐기되어 버려지는 것을 나도 어릴 때는 바빠서 몰랐다.


 무심한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마누라는 이즈음 감정 폭력배 보스다. 신은 이 빌어먹을 호르몬 조정을 교묘하게 자동으로 설정해 놓아 사랑에 미쳐 동반자를 찾을 때만 해도 달콤했던 그 감정이 지금은 애물단지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몸에서 아름답던 곡선이 사라지고 직선만 남았다. 감정은 예민해지고 내가 아닌 아이에게만 관심이 향한다. 세월이 더 흐르자 한 가지 더 알았다. 내 몸의 남성 호르몬이 아내에게 다 흘러가고 내 세포 속으로 여성호르몬이 흘러들어옴을.  아내는 직선적으로 용감해지고 나는 곡선처럼 둥글둥글해졌다. 남자 사람은 결국 생존과 생식의 돈벌이 기계장치임을 깨달을 땐 너무 늦었다.


 내 아내는 젊어서 감정에 무식하고 용감했던 내가 되고, 나는 그녀가 된다. 그래서 그녀의 안타까운 시절을 배우고 느낀다. 이 빌어먹을 호르몬 교환 죽음만큼 정교하게 계산된 신의 외통수임을 알게 되면 종교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감정 폭력을 주고받는 우리네 가족이 공평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 익명을 가진 남들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가족을 넘어가면 직장이든 동창이든 전부 남이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구호에 갇혀 나라가 가족인 줄 알지만 그 나라를 벋어 나면 체감온도는 다르다. 매 맞고 사는 동양인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이야기고 아직까지 머릿속에서 한국말 번역해 영어로 말하고 사는 이민 1세대는 머릿속에 든 만큼 표현 못하고 살다 세월이 흐를수록 말수도 적어진다. 한국말하는 아내는 무서워 말도 걸지 못하고 아이들은 내게 관심 없어 말 섞기 싫고 현지인들과는 신경 써서 영어 하기가 귀찮다.  

 

그래서 조용히 살고 싶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개 짖는 소리만 조용히 남은 곳에서 남은 삶을 살고 싶다. 이제 도시는 내 삶의 관심지역이 아니고 시카고도 예외는 아니다.


                   



 동생네가 나보다 먼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아이들도 다 크고 해외출장이 잦은 남편은 시골로 이사 가면 이사 간 주소는 알려 주라하고 벨기에로 출장을 떠났다. 여동생은 혼자 모든 한국 시골을 뒤졌다. 그녀는 일찍부터 삶을 깨우쳐 별장이든 럭셔리 전원주택에는 원래 관심이 없었다. 조용한 농가주택이나 구입해 천천히 고쳐가며 살 작정이었다.


어차피 우리네 인생이 내리막길에는 헐거워질 테니
헐거운 집에서 고장 난 내 몸처럼 고장 난 것들을 상대하며 살고 싶다 했다.
 

 한국에 새로 등장한 X세대 알파 노인들은 자기를 충족시켜줄 수준 높은 공간(요양원)이 없음을 알고 낙향을 이미 시작했다. 도시는 아이들 에게 내어주고 백 살까지 지겹도록 살아남아야 할 젊은 노인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 오빠 집값이 꽤 올랐어. 철탑, 무덤, 축사, 교통, 원하는 가격, 텃세 없는 마을, 이런 거 다 만족하는 동네 찾기 힘드네" 동생은 한 달이나 찾다 결국 나에게 전화를 했다. " 오빠가 찾아줘" 나는 웃으며 말했다. " 내가 미국에서 어떻게 찾아? 가서 보지도 못할걸" 동생은 어려서부터 항상 내가 정보를 찾아주면 고르는 걸 참 잘했다. 그래서 나는 장님 문고리라고 그녀를 놀렸고 내가 그녀보다 공부를 조금 더 잘해서 정보를 가진 내가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하지만 그녀가 고르면 성공률이 높은 것은 속으로 항상 부러웠다. 그녀는 대학 입시도 찍어서 좋은 성적이 나왔고 대학도 찍어서 좋은 곳을 다녀왔다.  남편도 잘 찍어 지금 놀고먹고 살고, 아마 태어날 때도 우리 가족을 잘 찍어 잘 태어났을 것이다. " 알았어 내가 알아볼게" 어차피 우리 회사가 신 노인들의 <공간과 죽음에 관한> 영역이라 나도 관심이 많았다. 허나 정보가 부족했다. 아니 총체적으로 부실했다.  하는 수 없이 너튜브의 평범한 정보를 골라 동생에게 직접 현장을 답사하라고 말했다.




 


문제는 집이 아니라 시골 부동산 업자였다.  " 오빠, 미치겠어 나는 좀 더 자세히 살피려고 한 오십만 원만 걸고 며칠 뒤에 계약하자고 했는데 화를 내면서 10%를 내고 지금 당장 하든지 말든지 하라는 거야" 동생도 화가 나 있었다. "맞는 말 이긴 한데 양해가 안되면 안 한다고 하지 왜 그랬어" 동생은 빠르게 대답했다. " 아니 맘에 들기도 하고, 요즘은 금방 없어지더라고, 리모델링도 생각해봐야 하고, 알잖아 우리 아는 건축가 그분도 와서 보여주고 나중에 결정하려고 했지" 동생은 오래 알고 지낸 리모델링 전문가를 염두하고 있었다.

       

 시골 부동산 업자는 감정 미숙아였다. 나이는 육십 대 후반, 언사가 거칠고 고객을 자기 맘대로 지배하고 으름장을 놓으며 좌지우지하려는 사람이었다. 도시와 지방의 수준차이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았다. 동생은 결국 계약금을 10% 지불하고 건축업자의 감정을 뒤늦게 받았다. " 사모님 죄송합니다. 이 집은 아닌 것 같네요" 동생은 아연실색해서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 나 어떡해. 계약금 그냥 날리고 포기할까? 집터가 낮아서  배수문제와 리모델 공사비가 집값보다 더 든데" 그녀 고민은 내 일처럼 느껴졌다. "계약 전에 누구랑 상의 좀 하지..." 그녀는 또 목소리를 높였다. " 아 글쎄 로이(반려견)를 차에 두고 일처리 하는 바람에  애가 차에서 짖는 소리도 마음에 걸리고, 서울로 올 때 차 안 밀리려고 서둔 것도 있고 게다가 부동산 그 자식 완전 깡패야, 무슨 질문하면 눈을 부라리면서 윽박지르듯이 말하고 조금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살거려, 미친놈 같아"


 




 나는 며칠 동안 등기부 등본과 지적도로 그 집의 정보를 면밀히 검토하고 건축업자의 견해도 분석했다. 종합적으로 단점이 장점보다 좀 더 나왔다. 부동산 업자의 미숙한 태도도 불편했다. 잠깐이지만 감정 미숙아로 늙으면 주변인들은 얼마나 불행할까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단톡 방에서 가족들과 긴 토론 끝에 부족한 집을 그대로 사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한국에 들어가도 사용할 수 있는 집이라서 나는 시골집 공사 견적과 공사일정을 기획해주고 DIY로 천천히 하라고 조언했다. 가족을 동원해서 시간 날 때 만들면 그 역시 삶의 재미라고 말했다. 마침내 우리는 자기 빠르기를 찾았다.  난 아다지오 Adagio로 동생은 알레그로 Allegro로...


            




나는 길이든 집에서든 감정싸움이 시작되면 조용히 자리를 피하거나 말을 멈춘다. 나도 예전에 분노조절장애가 있어서 그다음 일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똥이 무섭고 더럽 고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감정에 의해 추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감정은 휘발성이 있어서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문제는 감정에 의해 행동을 결정하는 순간 돌이키기 힘든 늪에 빠지는 것이다. 나도 감정 폭력배의 전과자로  분노를 제어하기 위해 이성이란 전자발찌를 차고 다닌다.  


나보다 먼저 해탈한 친구가 말했다.

지난번 공원에서 걷고 있는데  건장한 사람이 좁은 길에서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거야.
좀 당황했는데 바로 뒤에서 욕이 나오더라.
" 야, 이xxx아" 친구는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
나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난 못 참아 나도  돌아서서,!@##$$$#!^$#xxx아, 하겠지"
친구는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 넌 나랑 달라서 용감하구나, 난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씩씩하게 계속 걸어갔어"


...
그날 밤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https://youtu.be/ThzkLGeV3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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