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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y 18. 2021

Landing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날씨를 보고 항공기 레이다 앱을 켠다.


KE와 OZ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국적기 싸인이다. 시카고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는 위치를 추적한다. 어디쯤 오고 있을까? 비행기로 가득 찬 하늘길에 국적기를 찾아 도착지를 확인하면 내가 살던 미국 도시 공항들도 하나둘씩 떠오른다. "이걸 왜 하냐고?" 누가 물었다. "재미있어서" 그는 싱겁게 웃었다. 그는 나보다 수준 높게 대형 화면에 들어가 몇 시간씩 사람을 죽이는 킬러다. " 그걸 왜 하냐고?" 내가 묻자 그는 대답했다. "재미있어서..." 나는 싱겁게 웃었다.  내가 양반이네...


 지난번 한국에 있을 때는 인천 송도에 살았는데, 깨끗한 송도가 가장 미국 닮은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새벽이면 인천공항에 들어오는 미국발 비행기를 추적했다.  집으로 오는 비행기를 상상하는 일은 승객의 기분을 아니까 의외로 멋지고 설렜다. 타임머신을 타고 밤새워 시간을 거슬러 날아 얼마나 수고하며 왔을까? 조종석에 앉아 하늘을 보는 것과 승객으로 보는 하늘은 다르다. 레저로 자전거 타는 것과 배달하려 타는 것이 다르듯 사람은 각자 눈높이로 저마다 다른 세상을 읽고 이해한다.     


 내가 사는 시카고는 모든 도착 항공기가 윌리스 타워 상공을 직선으로 긋고 그위로 도심을 통과해 미시간호를 길게 돌아 반환점을 지나며 고도를 낮춘다. 보통은 4800피트 전후해서 내 머리 위를 지나고 반환점을 돌아 다시 한번 도심을 비켜지나 오헤어 공항에 사뿐히 내린다. 운이 좋아 파란 하늘을 가진 날에 내 머리를 통과하면 승객은 전혀 볼 수 없는 고래 뱃대기가 바다 같은 검푸른 하늘을 날아간다. 나는 어려서부터 알았다. 바다가 하늘이고 하늘이 바다인 것을. 착륙이 이륙이고 이륙이 착륙인 것을. 태어남과 죽음이 하나의 동일한 여정인 것을...




 주변에 절친 조종사가 많고 비행기를 좋아해서 착륙할 때 조종사들이 얼마나 긴장하고 집중하는지 어떤 고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기에 나에게 랜딩은 항상 경건하다. 가수 이 효리가 반려견 순심이의 무지개다리 건너는 랜딩을 동행하며 "생명의 떠남이 경이롭다"는 표현을 썼을 때  나는 경이로움 대신 경건하다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래도 그녀의 리딩에서 또래의 세속적 세상 살기를 벗어난 것 같은 성숙함에 다행스럽고 대견한 모범을 보았다.


그래서일까? 랜딩은 호스피스 시간처럼 늘 경건하다. 호스피스가 죽음을 아름답게 준비하는 멋진 곳이라는 상상은 곤란하다. 호스피스는 기다림에서 차라리 자가격리를 닮았다. 나랑 만난 것보다 한국의 자가격리가 기가 막혔는지 선배가 밤새 격리 무용담 들려주어 나는 그와 같은 피로감을 느꼈다. 죽음 앞에서 공간을 막고 죽음을 기다리면 두려움에 가득 차 착륙하는 비행기 승객 같다. 난 그리움에 가득 찬 기대감의 허공을 지나 기쁨으로 땅을 디디듯, 죽음 너머에서 활주로를 발견하고 부드럽게 착륙을 마친 후 안도하며 잠들고 싶다.




 슈퍼맨처럼 날고 있었다.


양손을 벌리고 아마 5천 피트 정도 높이를... 내 옆에는 나를 안내하는 수호천사 같은, 얼굴은 희미하지만 빛나는 존재가 아래쪽 땅의 풍경을 부드럽게 소개해 주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땅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붉은 용암 같은 기운들의 거대한 물결을 보았다. 그렇게 밤새 어둠을 날아 아침이 되자 땅은 초록으로 변하 착륙할 때 자주 보던 풍경이 펼쳐지고 사뿐히 신비한 땅에 내려 앉았다. 저 멀리서 먼저 떠난 루이가 귀를 흔들며 달려 나온다.


 그날 아침, 입에 묻은 꿈의 달콤함을 맛보느라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이유 없이 그냥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Powerball이라도 사야 하나?" 돈맛을 아는 세속적인 너 때문에 경건한 길몽은 개꿈이 되고 말았다.






 송도에 살 때 주변 공사장에 타워 크레인 두대가 있었다.


내가 지내던 곳이 25층이라 나는 그곳 아파트 기초공사부터 레미콘 차량의 콘크리트 타설과 양생까지, 하늘에서 소상히 볼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면 인부들은 임시 조립식 막사에서 나와 현장으로 출근했다. 그들은 작게 보여 마치 일개미들 같았다. 숙소 너머 현장에 거대한 크레인은 로봇팔 막대기를 느리고 위엄 있게 돌렸다. 대형 철근 구조물 무섭지만 천천히 이동했다. 크레인 높이가 족히 10층쯤 되어 보이는데 저 공간에 갇혀 로봇을 대신하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소변은 어쩌지?


새내기 공군 방위가 물었다. 전투기에서 임무 중에 오줌이 마려우면 어떡합니까? 선임 공군병장이 대답했다. " 아 그건 말이야, 사이드 브레이크야. 날다가 오줌 마려우면 잠시 하늘에서 멈춰, 그리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 정말 멈추지? 그다음, 날개로 걸어 나와, 오줌을 시원하게 발사해, 밑에서는 안보이겠지? 어때? 으흥?" " 아~ 그렇구나..." 새내기 공군 방위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단한 것을 배운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퇴근해서 배운 것을 가족들에게 말했고 가족들은 말없이 오랫동안 그를 쳐다보았다.  




 

운동신경이 둔한 친구는 항상 나를 부러워했다. 


"넌 좋겠다. 축구, 족구 되지, 배구, 농구, 당구, 볼링, 테니스, 골프..., 난 아무것도 못해"


그 친구는 거기 더해 술도 못했다. 그래서 친구는 혈기 왕성할 때 그 당시 또래들이 전혀 하지 않던 행글라이더를 탔다. "이건 비행기와 다르더라고, 말하자면 오토바이 타는 기분이랄까? 하늘이 더 싱싱해!" 친구는 자랑반 자부심 반으로 썰을 풀었다. 족구장에서 가볍게 뛰어올라 네트 위를 날아 상대방 구멍 선수를 향해 공을 내리 꽃으면 경탄과 함성이 동시에 들렸다. 상대방 구멍이 늘 그 친구였다.


그 구멍이 행글라이더를 타자 분위기는 바로 역전되었다.


" 언제 한번 나도 데려가 주라" "알았어, 기회 되면..."


그때 잘난 척하던 그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추락했다.


 그는 팔과 가슴에 깁스를 하고 병실에 누워있었다. 주스 박스를 들고 온 나를 보자 겸연쩍은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아니 누워있어 주욱 영원히..." 그는 내 허접한 유머에도 좋아서 싱글벙글 웃었다. " 사고 경위를 보고해봐" 모든 환자가 입원에서 퇴원까지 브리핑을 반복하듯, 그는 사고부터 입원까지 경위를 소상히 말했다.


" 이륙하는 순간 돌풍을 만났어"그는 추락할 때 아픔과 기분까지 섬세하게 설명했다.


" 불행 중 다행이다. 중요한데 안 다치고 갈비뼈랑 손하나만 부러져서..."


 친구는 웃으면 아프다면서 기어코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요즘 그 친구가 어쩌다 부자가 되어 동력 비행기 면허증을 땄다.


 추락하지 않고 무사히 착륙한 솔로비행 무용담도 들려주었다.


그는 부자가 되자 높은 곳만 날아다녔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추락하지 말고 잘 내려야 할 텐데...


                                             

https://youtu.be/QazDUeJMa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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