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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y 12. 2021

사라진 나를 찾아서

  나는 나와 무척 가깝게 지냈다.


 내 생각 중의 벗이었고 최종결정의 한몫을 담당해 주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안에 사는 그가 어떤 모습일까 찾아보려 거울 앞을 한참 째려보며 기다렸지만 시간이 오래 흐르자 거울 앞의 나는 낯선 이로 느껴졌다.


 나는 미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사는 것일까? 정상적인 것은 세상의 기준으로만 살아야 하나?

 방송과 컴퓨터는 세상이, 인생이, 존재하는 이유가 뭔지 알기는 알까?

 조숙한 건지, 신경과민 인지 어려서부터 질문이 많아 나는 늘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범생이로 책에 빠져 살았다.


 어느 날, 삶이 지겨워 자살을 결심했다.


 미국 중부 한적한 마을, 산책하던 깊은 숲을 찾아 들어갔다. 산책로 한가운데 아담한 호수가 있었는데 그곳은 늘 어머니 품 같았다. 객지에 살면 불치병 Homesick을 늘 달고 살아야 해서 외국의 이방인들은 늘 외로웠다. 이왕이면 어머니 품에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오래된 마음 습관의 결과물 인지 모른다. 물에서 태어났으니 양수로 돌아가는 것이 옳아 보였다. 어쩌면 그 결정은 내 안의 내가 시작했고 내 밖의 나는 말렸어야 했다. 내 안의 나는 밖의 나보다 충동적이고 감성이 예민해서 가끔 사고를 치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떠오른 그날 바로 자살을 진행했다. 말이 공원이지 깊은 숲, 그곳은 무척 커서 길을 잃기도 하는 곳이었다. 어느 쪽 주차장에 차를 대면 야간 순찰 도는 경비에게 안 걸리고, 은밀하게 해치울 자신도 있었다. 지갑에는 신분증만 달랑 넣고 자동차 열쇠는 차에 두었다. 사건이 터지고 나면 견인차가 와서 차를 가져갈 것이고 지랄 같은 내 이성적 머리는 죽고 나서 일어날 일을 소상히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사고는 내 안의 내가 치고 밖의 나는 이성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자정 무렵 호수는 어머니 자궁 같이, 태초로 돌아간 듯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당연히 사람은 없고 약간 스산한 기운은 호숫물 마시러 호수에 들어온 달과 구름을 호위하며 바람처럼 흐르고 있었다. 배경 음악만 있으면 여기가 천국이었다.

 

 호수 한가운데 길게 데크를 만들어 놓아 내가 자주 앉아있던 호수는 무섭지 않았다.

나는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정말 이대로 이렇게 갈 거야?" " 왜? 겁나?" 내 안의 나는 당돌하게 맞받아쳤다.       
" 그게 아니라, 너무 성급한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 계획을 세워서 잘해야지"
" 넌 그게 문제야, 맨날 계획 계획, 때론 좀 아무렇게나 네 마음대로 살아봐!"


 내 안의 나는 단호했다. 여기서 싸우면 결과는 뻔하다. 아마 욱하고 행동할 것이다.


"내 말은 좀 생각 하자는 말이야, 나도 솔직히 이 세상이 우습기는 마찬가지야"






"조금만 시간을 줘" 내 안의 나와 논쟁하기보다 몸을 던질 내게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호수 데크 의자에 몸을 누였다. 밤하늘이 보였다. 호수 물에 누운 줄 알았던 보름달은 이제 하늘에 있었고 어려서 배운 북두칠성, 북극성, 금성 (고작 아는 게 이 정도다)  그 밖의 별을 헤아리다 세상 말고 우주는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별을 본 지가 얼마만이지?" 그렇게 명상인지 상념인지 모를 내 안의 나와 대화하지 않고 혼자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안의 나도 방해하고 싶지 않은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혹시 호수가 얕은 건 아닐까? 예를 들어 2m도 안 되는, 아니 나는 수영을 잘하기 때문에 깊어야 물속으로 빨려 들어갈 텐데, 얕으면 까치발하고 허우적거릴지 모르고 적당히 깊으면 야밤에 수영하다가 나올 수도 있어. 순간 나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데크 밖으로 걸어가 돌멩이 몇 개를 주워왔다. 얼마나 깊은지 알고 싶었다. 옛날 겨울 저수지 스케이트장 얼음이 단단하게 얼었나 보려고 내 머리만 한 돌멩이 몰래 던지다 주인에게 잡혀서 매 맞던 생각이 났다.  " 너 란 놈은 항상 짱돌이 인생에 끼는구나" 훗, 심각한 순간에도 웃음이 치밀어 올랐다.


" 풍덩, 꼬르륵"


돌이 나보다 먼저 죽었다. 돌을 던지고도 깊이를 잘 모르겠다. 얕은가? 에라 모르겠다. 얕으면 깊은데로 수영해서 가운데로 가서 숨 멈추고 들어가지 머. 여기까지 왔는데 안 죽고 가면 창피하잖아...


마침내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 순간, 고요한 호숫물 구석  아주 아주 큰 소리가 났다.


"철퍼덕~"


순간, 누군가 나보다 먼저 물에 뛰어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죽으러 왔는데 내가 하도 안 죽고  얼쩡거리니까 먼저 한 것이 틀림없었다. " Who is it!"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달빛이 환해서 모든 것이 잘 보였다. 분명 생명체가 헤엄치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였다. 오른쪽 구석에서 뛰어든 녀석이 내쪽으로 헤엄쳐온다. 사람인지 동물인지 구분이 안 가는 순간 확 두려움이 밀려 들어왔다. 아까 물 깊이를 가늠하려고 주워온 남은 돌을 집어 들었다. 점점 가까이 오는데 보니까 엄청 큰 수달 같다. 헤엄치는 물살이 빨라서 네스호에 사는 괴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나를 공격하러? 말리러? 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돌멩이 하나를 그놈 앞에 냅다 세게 던졌다. 놈은 잠시 놀라 주춤하더니 방향을 바꾸어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 휴, 수달이 살고 있었네"  등골이 오싹했다.


 "어쩌면 내가 완전히 죽기 전에 물속에서 나를 아작아작 씹어먹을지 몰라."

  생각을 바꿔 집에 가고 싶어 졌다.


사형수가 사형 집행하러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하자  "아~씨, 하마터면 죽을뻔했네"와 같은 모양이 된 셈이다.



그때부터 내 안의 나와 나는 대화가 없어졌다.


세상은 여전히 멍청하고 지루하고 틀에 박혀 있는데 삶을 더 의미 있게 살아야지 반성하고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 세상은 아름다운 거야" 내속의 나는 나를 비꼬며 말했다. "죽는 게 겁이 난 게지, 아직 진짜 위기를 못 만난 거야".


 그날 이후 내 안의 나는 나를 떠났다. 

 나는 자아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요령만 늘어 살아가는, 이기는 기술만 늘었다. 남 눈치는 더 잘 읽고 손해보지 않는 판단과 결정은 매우 세련되어 갔다. 손익계산이 빠르고 한심한 놈들과는 되도록 말을 조금 섞고 지루한 이야기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세상을 사랑하는 세속적 사람이었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그때 이야기를 와인 안주로 벗들과 농담하는 소재가 되었지만 솔직히 어리고 한심했던 나와 대화해주던 내 안의 내가 지금은 그립다. 어디서부터 나를 다시 찾아야 할까? 내가 좀 더 어리숙하고 겸손해지면 그가 돌아올까?  조금씩 나이 들며 이성적이고 단단해진 세상 경험을 경멸하면서도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내가 아직도 부담스럽다.


 남은 세상은 좀 더 차분하게 새로운 벗을 다시 만나고, 내 안의 내가 나를 다시 찾아 준다면 치매 걸리기 전까지는 순수한 그와 마주하며 살고 싶다.

                                        

  https://youtu.be/nQVsOJKEK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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