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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y 10. 2021

오디세이 Odyssey

경험이 가득한 여정

 전쟁영웅 오디세우스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나는 Odyssey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이 단어는 "오디세이"라고 표기하지만 사실 나는 "오디씨" 라고 발음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 단어를 여정이라는 국어로 써도 느낌이 좋다. (그래서 여정이란 이름도 정감을 느낀다.)

 

 오디씨 odyssey를 처음 만난 것은 골프채 퍼터 putter 때문이었다. 골프 치는 분이면 다 아는 명언 "드라이버는 폼이고 퍼터는 돈이다"라는 말. 어느 정도 핸디가 되면 인간은 누구나 <폼과 돈>을 다 갖고 싶어 한다. 나도 그랬다. 보기 boggy 플레이어가 되고 나서 새로 만난 퍼터가 오디씨 였다.  오디씨는 한 타에 1불 내기하면 항상 두툼하게 뒷주머니를 1불짜리 지폐로 채워 주었다. 오디씨처럼 든든한 요술 막대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몇십 년동안 오디씨는 그렇게 나에게 봉사하다 요즘 거라지 garage에 때론 실내 수납장에 봉인되었다. 그러다가 오디씨를 떠나보냈다. 코로나 때문에 골프 칠 지인과 만날 수도 없고 미국 골프채를 한국으로 가져가자니 운송비도 만만치 않아서다.


 "정말 싸게 가져 가시는 겁니다"


한인들만 사용하는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테일러 메이드 한 세트와 골프백까지 내놓았다. 녀석들을 입양 보내려면 깨끗하게 씻겨 보내야 해서 마지막으로 채 한 개 한 개씩 정성스럽게 닦았다. 드라이버부터 차례대로 샌드웨지를 지나 퍼터, 오디씨에 다다랐다. 손에 녀석을 잡는 순간, 감전된 듯 과거로 순간 이동했다. 처음 싱글을 치던 그때, 어쩌다 홀인원 하던 그 순간, 동료들의 애매한 그 표정 (웃는데 축하하는 건지 화가 난 건지)등 주마등처럼 퍼터에 새겨진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순간 마음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팔지 말고 그냥 가지고 있을까? 아니야 언젠가 버리게 될지도 몰라. 지금 새 주인을 만나는 게 나아"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내게 인사 건네는 중년 구매자를 만났다. 그는 미국에 오래 살았고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골프 새내기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적어도 내 소울이 새겨진 내 물건을 정성스레 관리해 줄 인품으로 보여 안심되었다. (사실 또 팔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 제가 한국 오가느라 시카고에 골프친구가 없는데 언제 라운딩 한번 하시죠?" " 네, 전 좋습니다"      


 나는 골프채 입양 거래를 마치고 떠나는 그의 차창밖으로 소리쳤다. " 우리 애들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내 퍼터 오디씨는 내 손을 떠났다. 나는 골프 여정도 접었다. 골프채 오디씨가 떠나자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연스레 골프 오디씨도 잊었다.




 

오디씨를 다시 만난 것은 친하게 지내던 선배 때문이었다. 선배는 나와 같은 경계인 이면서  한국을 선호하고 나는 미국을 선호했다. (요즘은 미국이 점점 싫어지고 있다) 선배는 이번에도 한국에서 몇 년 장기 체류하려다 갑작스러운 집안일로 백신도 맞을 겸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시카고 오헤어에 내렸다. 여기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데 내 만류에 하루를 나와 보내고 환승하기로 했다. 만나자마자 그의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졌다. 보따리 속에 처음 이야기는 한국의 <자가격리>였다.


 " 아휴, 말도 마. 자가격리는 무슨? 강제 격리야. 공항까지는 친절하고 생각보다 나이스 해. 그런데 자가격리 주소지 보건소에 가면 PCR 검사 또 해야 하는데 거기부터는 내국인과 섞여서 "줄을 서시오"야. 난 해외 입국자가 이 동네 이렇게 많은가 해서 접수하고  검사 대기줄에 또 한 시간 기다렸는데, 보니까 이 동네  아무나 코로나 사연 있는 사람은 다 온 것 같더라고. 그래서 뒤에 교복 입고 있는 여학생에게 말을 걸었지. " 저기 학생, 나는 해외 입국자라 검사하러 왔는데, 학생도 입국자예요?" " 아니요, 전 학교에서 몸이 안 좋다 했더니 선생님이 조퇴하고 검사 맡으라고 해서 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을 홱돌리고 거리를 두었지.  


그 순간 내 폭소가 터져 나왔다. " 하하, 학생 입장에선, 저 배신자 그러겠네, 말 끝나자마자 휙 돌려서"

 "아냐, 코로나 앞엔 장사 없어, 난 미국에서 출국할 때 음성 갖고 한국 들어갔는데 근본을 알 수 없는 사람들, 저 뒤에선 막 기침도 해, 게다가 6ft 거리도 안 두고" 선배는 한국 가족들 부담주기 싫어서 공항 근처에 자가 격리하는 집도 얻었다. "왜 있잖아 2주 동안 이것저것 정리하고 책도 좀 읽고 하려고 계획했는데 말짱 꽝이야. 언제 나가나, 수감자 같아. 좁은 오피스텔에 갇혀서 형제들이 택배 보내오면 그거 주워 먹고 하루하루 즐기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죽이더라고. 선배는 자가격리와 백신 이야기하느라 한국정치 이야기는 생략했다.


" 빨리 백신부터 맞아, 난 이미 맞았어"

 

 선배 몸애 배어있는 한국 냄새, 그것은 선배가 찾던 삶의 오디씨였다. 우연이 인연처럼 미국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선배는 쏘울 메이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는 나이 들면서 찬란한 한국의 성공을 다시 꿈꾸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지난 삶의 오디씨odyssey를 그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그 여정 끝자락, 죽음에 대한 소신을 말해주었다. 선배는 충격받은 것 같았다. 총명한 그는 변하기 시작했다. 소중한 삶의 여정이 세상의 성공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알았다. 그도 남은 시간을 새롭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독서가 많아지고 사색이 깊어졌다. 마지막 삶은 한국에서 마치고 싶다며 일을 접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선배의 풀어헤친 한국 이야기보따리 속 오디씨를 접하며 밤새 하얀 눈이 쌓이듯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그는 졸면서 집으로 날아갔다.




 선배 덕분에 나의 오디씨를 생각했다.


 한국에 살 때 나는 라는 독립적 존재가 우리라는 우리에 갇히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어찌 보면 집단으로 살아가는 한국 풍토에 격렬한 반항심을 가졌다. 나는 어리고 불완전했으며 경직되고 보수적이며 자기중심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미국은 그런 나에게 자유를 한 아름 주지 않고 혼란만 선물해 주었다. 새로운 문화, 가치관의 혼돈, 언어, 사고방식, 가족에 대한 관점 등이 송두리째 서양식으로 초기화되고 나는 이제 겨우 미국식으로 정신적 자유를 찾았다.


 나로부터 가족, 직장, 종교, 이웃, 마을, 국가 등의 관계 동심원에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내 가까이의 사람을 소유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전처럼 내 중심으로 관계를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아직 잔재가 조금 있긴 해도) 이전에는 아내와 자식을 내 맘대로 지배하는 대상으로 인식했다면 지금은 곁에 있는 유익한 상대로 이해한다. 지나친 관심도 자제하고 지나친 무관심도 경계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동행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요즘 별에 관심이 많다.  세상과 단절하고 친구도 지우고 좀 조용히 살고 싶어 졌다. 한국 뉴스도 끊었다. 시끄러운 세상과 거리를 두면 내 머릿속도 다시 우주를 닮아 갈지 모른다. 올리버 색스가 죽음을 앞두고 관심의 영역이 달라진 모습들이 요즘 이해가 간다. 혼자만의 우주를 창설하는 일은 그래서 나의 새로운 삶의 여정이다. 어쩌면 이 말은  승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싸움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니 패자도 아니라는 말일지 모른다. 요즘은 많은 것을 지우고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다 보니 음악이 제일 좋다.



  https://youtu.be/C415drznv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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