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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un 25. 2021

말은 귀에게 이야기한다.

 바쁜 시카고 말고 한가한 동남부에 살 때, 이맘때가 되면 나는 산책로에서 올챙이를 자주 보았다.


그때만 해도 계절이 딱히 바뀌지 않던 서부에서 한동안 살다와 그런지 한국처럼 계절이 요란하게 선을 긋고 변하는 모습이나 생명체들의 변신하는 광경을 보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고 나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실감하던 때였다. 그만큼 미국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에서 아름다운 품위를 느꼈다. 거의 매일 웅장한 숲을 산책했다.  많은 분이 알겠지만 미국의 시간은 한국보다 느리고 하루의 양도 많다. 그것을 다 쓰기 위해 나는 산책을 통해 숲에서 건강뿐 아니라 막연했던 신의 물리적 느낌과 자연의 치료를 동시에 받았다. 누구나 그렇지만 인간은 신경증과 정신병 사이를 요령 있게 외줄 타듯 걸어야 해서 미친 듯이 일하면 미친 듯이 힘들어지는 잠재적 광인의 경계선에 서있는 것도 그때 알았다.


 올챙이는 내가 삶에 좌절하고 있을 때 내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산책로 주변 그리 깊지 않은 웅덩이에 태어났지만 웅덩이라봤자 발목 정도밖에 안 되는 깊이에 지름 2미터 정도의 작은 물구덩이 었다. 한동안 장마처럼 내리던 폭우에 생긴 웅덩이에는 꼬물이들이 바글거리며 하루만 더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매일 그곳에 멈추어 아이처럼 쭈그리고 그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다시 길을 걸었다. 그때 문득 그들이 어려서 과학시간에 배운 수컷의 정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 된 거나 저들이 개구리 되는 운명은 많이 닮아 보였다.


 나는 그때 그 올챙이 때문에 김치냉장고를 얻었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글짓기 대회가 열렸는데 재미 삼아 올챙이 이야기를 에세이로 냈다가 덜컥 대상으로 뽑히고 말았다. 난 원래 부끄럼이 많아서 주최 측에 시상식에 안 가도 김치냉장고를 주냐고 전화했더니 안된다고 해서 고심 끝에 시상식에 갔다.  인사 나누고 어색한 덕담 주고받다 후원사에서 목에다 대상이라고 적은 리본을 주더니 목에 걸고 사진 찍으라고 했다. 나는 사진은 싫다고 거절했다. 그들은 지역신문에 낼 사진이 필요했지만 나는 한우 타고 사진 찍는 천하장사 같아서, 결국 상을 포기할 테니 알아서 하시라 하며 성질만 내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참 별나기도 하지 김치냉장고 안 받아 왔다고 가족들은 나보다 더 성질을 낸다. 얼마 후 예상을 깨고 집으로 냉장고가 배달되었다. 나는 그때 처음 글로 돈을 벌고 공짜 좋아하는 가족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원래 나는 말로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강연은 항상 긴장되고 재미있었다. 청중은 내 말 한마디에 울고 웃고 느끼고, 나는 그들을 어떻게 하면 웃길지 어느 지점에서 예화를 사용해야 하는지, 느낌 있는 교훈은 어떻게 배열할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강연자는 가수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청중의 귀를 향해 진정성을 전달하는 일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당분간 머물 때 한번은  프린터가 잘되지 않아 원격으로 상담원이 내 컴퓨터에 들어와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었다. 상담원은 전문적이고 상냥했다. 물론 미국에서 영어로 상담하면 생기는 기술적 용어의 충돌도 없었다. 그녀 덕분에 컴퓨터와 노트북 사이의 문제가 사라지고 일을 마치자 서로 감사인사를 나누었다.


" 일도 잘하시고 목소리가 좋으세요"

 내 칭찬에 상담원 웃으며 대답했다.


" 아뇨, 고객님이 잘 도와주셔서 원격수리가 쉬웠고, 전 지금까지 고객님처럼 좋은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오늘 즐거웠습니다. "


 덕담으로 마치고 이어 날아온 평가 설문에 최고점을 선물함으로 훈훈하게 일을 마무리했다.

그때 생각했다. 강의든 상담이든 귀에게 이야기하려면 선천적으로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야겠구나. 물론 그 좋은 목소리에 좋은 콘텐츠, 진정성을 담아야겠지...  




 

나는 글쓰기가 수려한 글솜씨라고 오해한 적이 있었다. 브런치에도 한 문단 안에 빼어난 단어와 유려한 문장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는 글을 많이 본다. 나는 그런 글을 볼 때마다 그것이 모창가수의 노래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훈아를 모창 하는 너훈아 같은 글, 물론 선천적으로 그렇게 글을 쓰기도 하고 후천적으로 노력을 해서 그렇게 쓸지 몰라도 그런 글을 만나면 한 번쯤 검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다, 읽기를 멈추게 된다.


 내 글도 그렇다. 다 쓰고 읽어보면 주술 관계가 엉망일 때도 있고 단어들은 어디서 주워 왔는지 촌놈처럼 거무튀튀하기도 하고 시골집 아저씨 냄새도 난다. 아무리 글에 향수를 뿌려도 회생이 힘들면 나는 그냥 불태워 버린다.  아쉽지만 그렇게 삭제된 글은 웅덩이가 말라서 개구리가 되지 못한 올챙이처럼 생을 마감한다.

 

 나는 글이 독자의 눈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내가 올챙이 글로 김치냉장고를 받았을 때 산책로 웅덩이에 올챙이는 다 죽었다. 폭우가 내려서 만들어진 웅덩이에 알을 난 녀석들의 에미가 멍청하고 한심한 출산을 한 것이 원죄이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문제는 만물의 아버지 태양이었다. 웅덩이 물은 강력한  아버지 얼굴빛에 하루가 다르게 말라 줄었고 올챙이는 가뭄에 줄어든 강에서 기어코 살아남는 세렌게티의 악어나 하마를 닮았었다. 좁아든 물속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메기처럼 모여 있다 곧 멸종하겠구나 하면, 또 한 번의 소나기가 그들을 살렸다. 그 짓을 몇 번 반복하더니 결국 김치냉장고 받던 날 내 글 속에서 이야기로 살아남고 현실에서는 지구에서 한 번뿐인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나의 돈 되는 올챙이 글은 그렇게 엉망이 된 새드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이야기 장르에서 소설이 한 인간 정신에 위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더 커서 알았다. 


 창작자의 글에는 건축가의 품위가 서려있고 우주를 창조했다는 신도 닮았다. 우리 눈은 작가의 혼이 새겨진 글을 보고 그가 창조한 세상에 입문하여 시각을 통해 전달된 그 세상 정보가 내 뇌를 자극하면 내 머릿속은 상상력, 창의력, 논리력과 추상력등 영장류가 느끼는 최고의 영적 확장이 일어남을 보게 된다.       


나는 독서를 통해 노련해졌으며 내 삶의 템포를 되찾았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바보스러운지 어떤 경우에 분노하는지, 머리가 하얘지는 순간은 왜 생기는지, 언제 스마트해지는지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기 계발서를 피하고 소설을 읽으며 자기 혁신을 이룬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고 한참 모자라지만 가끔은 훌륭하다. 더군다나 나는 내 부족한 나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타인의 시선으로나 자신의 시선으로 외부의 어떤 저항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를 만난 것 같다. 사실 더 젊고 더 에너제틱할 때는 이런 것을 아무것도 모른 채 제 잘난 맛에 가짜 먹이를 보고 달리는 경주견 같이 살았다.



 

 글을 쓰면서는 독자라는 대상을 인식하게 되었고 내 글의 표현이 말보다 미숙함도 깨달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동안 돈 받고 해왔던 내 말들이 전혀 퇴고해보지 못한 미숙한 원고처럼 거칠게 청중에게 전달되었음도 알아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의 교훈을 타인에게 듣기 원하고 읽으려 한다. 하지만 내 삶의 해답이 내 속에 있는 것을 모른 채 아까 언급한 모창가수처럼 삶을 노래하다 자기 것은 한 번도 맛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한국의 여동생이  농가주택을 구입해 수리하다 지붕 속 대들보가 부러진 것을 보고 혼비백산해서 전화를 했다.


 " 오빠! 망했어 속아서 산 것 같아. 대들보가 부러져 있고 집도 주방 쪽이 기울어져 있어. 왜 살 때 몰랐지?"


보내온 사진을 보고 나도 아연실색해서 위로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한마디 말이 툭 튀어나왔다.


" 전문가 찾아 고치고 살아. 문제 해결하는 재미도 느껴보고... 나는 네 삶의 과정이 즐거웠으면 좋겠어"  


동생은 내 반응에 볼멘소리를 냈다.


 " 참나, 바다 건너 불구경하시네. 송금이라도 하시던지. 문제는 돈이야 돈, 바보야!"


우리는 타인의 눈과 타인의 귀에 자기  삶을 이야기하고 오늘을 퇴고하며 산다.  



https://youtu.be/g29R0Ool1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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