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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Sep 27. 2021

버려지는 것들

 그러니까 별로 잘하지도 못 하는 요리 때문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방송이 요리 프로그램으로 국민들 관심을 끌기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미 요리를 시작했다. 그로 인해 가정의 CPU, 주방을 재탈환 하자 집사람은 바깥사람이 되고 내가 안사람이 되는 신천지도 체험할 수 있었다. 가족들은 내 요리에 대해 "좀 하긴 하지" 하는 정도로 인색한 평을 하지만 그러나 말거나 나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요리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음식이든 할 수 있는 실력과 재료와 양념의 양을 스스로 결정할 줄 아는 감이다. 인생살이처럼  처음에는 남의 것을 따라 하다가 때가 되면 자기만의 주장이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아직도 스마트 폰 앞에서 요리를 한다면, 음악으로 칠 때 음치 거나 음악에 막 입문한 사람일 수 있다.  


 내가 한국음식에 염증을 느낀 것은 미국 어느 도시에서도 몇 개 안 되는 한국 마트를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가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시작되었다. 시카고는 내가 미국에서 살아 본 다섯 번째 도시인데 여기서도 라면을 끓이고 김치찌개 (정말 냄새나서 하기 싫은) 삼겹살, 수육을 한 달에 몇 번은 먹는다. 밖에 나가면 스테이크, 햄버거에 콜라를 달고 사니 이대로 가다간 고깃기름을 뱃속에 풍선처럼 저장하고 제명에 못 살고 일찍 가시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아주 조금씩 오랫동안 식탁 혁명을 설계했다. 혁명은 가족의 동의가 필요한데 빠르고 간결하게 밀어붙이려고 했다. 마침내 아내가 친정에 가서 집을 비운 사이 식탁 쿠데타를 일으켰다. 서양 음식에 몸을 적응한 아이들을 포섭해서 자연밥상을 설득했다. 녀석들은 관심도 없을뿐더러 저항 없이 순순히 투항했다.


 오늘부터 집에서는 한국음식을 재해석해서 먹기로 한다. 굳이 말하면 절밥이라 할까 육식은 최대한 줄이고 주로 식물성 식재료들을 먹는 것이다. 내 생각에 한국음식은 말이야 밥이라는 백지에 반찬이라는 붉은색을 마구 칠하지? 고추장, 고춧가루. 거기다가 노란색 된장을 더해. 또 검은색 간장, 하얀색 소금, 설탕, 미원을 더하면 " 하, 맛있다"는 음식이 되지. 난 이것이 틀렸다고 봐. 원래 식재료를 전부 달고 짜고 맵게 만들어서 탄수화물로 달래는 식이지. 거의 모든 음식이 그렇고 그런 라면 맛이야. 요즘은 감칠맛을 조미료 없이 한다고 방송에서 만들기도 하는데, 솔직히 밥하는데 한 시간, 먹는데 십분, 치우는데 한 시간이 얼마나 시간낭비냐? 주유소에서 개스 gasoline 넣는데 한 시간 기다려 삼분 동안 넣고 다시 네 시간 타고 또 개스 넣으러 간다면 어때? 차 안 타고 말지? 밥이 그렇다. 하루 종일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차라리 우주 식량을  개발해서 하루에 한 번 알약을 먹거나 한번 주사하면 일주일 안 먹고사는 시대가 오면 좋겠지만 또 그러면 사람들은 옛날이 그립니 어쩌니 하면서 옛날 밥 달라고 아우성치겠지?

말이 좀 길어졌구나.     
 내가 식사를 준비하면 밥은 현미와 잡곡 위주로 백미는 아주아주 조금 섞어서 할 거야. 김치는 싱겁게, 국도 싱겁게(때론 생략) , 그래서 소금, 설탕, 탄수화물을 많이 줄이고 반찬도 줄이고 한 접시의 요리 중심으로 한식을 만들려고 한다.
 

 아내가 없으면 혁명 선언이 쉬울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 대답이 없다. 어색한 침묵이 지나자 예쁘게 생긴 딸이 웃으며 말했다. " 그럼 어디 한번 먹어볼 테니 오늘 저녁부터 시작해봐, 난 아빠요리를 지지해"  이어 말없고 어둡게 생긴 아들은 반항했다. " 아빠는 그럼 밥 먹을 때 콜라 안 드실 거예요? 난 먹어야 하는데..." 나는 비웃듯 교활한 거짓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먹을 수는 있어 하지만 보리차를 먹자, 진짜 맛있더라." 사실은 보리차가 혈압에 좋다고 해서 이미 구상해 놓았다.  

자, 오늘 저녁 메뉴를 기대해보자.

 

 아이들은 맛있고 심심한 자연밥상으로 식탁의 혁명 동지가 되었다. 밥 먹고 둘이서 수군수군 "엄마가 맵고 짠 이전 식탁을 원하면 어떡하지?" 나는 그녀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녀는 위와 장이 약한데 늘 맵고 짜고 얼큰한 국물을 좋아했다. 내가 만약 한국이라도 나가면 식탁 혁명은 실패하고 또 이전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아내는 친정에서 2시간 남짓 비행해서 공항에 내리자마자 나의 식탁 혁명 설명을 무표정으로 말없이 듣고 있었다.  다 듣고 나자 그녀는 아이들과 똑같은 말을 했다.


 " 어디 한번 해봐, 먹어볼게, 뭐가 다른 건지"

 "아니, 오늘은 외식할 건데..."


 "지랄"


" 이 사람아, 고상하게 생긴 사람이 지랄이 뭐야? 요새 해나도 그 말 쓰더라"


"당신한테 배웠네요"

"..."



 

식탁 혁명 일주일이 지나자 느낌상 내 몸이 부쩍 가벼워졌다. 산사의 스님처럼 음식 한점 남기지 않고 먹었다.

가족들도 잘 따라온다. 물론 아내가 요리하면 (딸도 스마트 폰 보고 우니 파스타를 가끔 만든다 ) 그때마다  내가 몇 가지 조언은 하지만 우리 집 식재료는 흰색이 엄청 줄었다.


 식사를 완전히 비우다 보니 적당량의 음식을 준비하는 경험도 축적되고 점점 음식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다. 다 아시겠지만 미국은 쓰레기 폐기 시스템이 후진국이다. 물론 큰 쓰레기 통에 마구 버리면 되니까 편하다. (거리에 쓰레기통 없는 한국을 보고 충격을 먹었었다. 적당히 좀 하지 ) 하지만 푸른 지구를 생각하면 늘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더군다나 동양인의 음식 쓰레기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갈아서 싱크대로 배출하는 것은 죄책감을 느끼고 가끔 남는 요리와 반찬은 여전한 문제였다. 멀쩡한 음식이 음식쓰레기로 던져지는 보면 서 늘 마음이 아팠다.



   

 식물들은 흙에서 뽑혀 식탁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경쟁을 이겨야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다. 쌀을 씻을 때도 싱싱한 낱알 몇 개는 수채로 들어가고 상추도 작은 잎은 물과 함께 떠내려가고 콩나물은 많이 잃어버린다. 그렇게 씻어져서 요리되고 죽어서 접시에 얹히면 거기서 끝이 아니다 어떤 재료는 안 먹고 남겨지고 버려진다. 그에 비하면 육류는 그다지 버려지지 않는다. 돈도 돈이지만 그들은 죽어서도 요리의 주인공 이기 때문일 게다.



 

 얼마 전 오징어 게임이 해외에서 높은 시청률을 가지고 있다기에 일부러 찾아보았다. 결과적으로 난 별로였다. 만화 같은 소재에 멜로와 연민, 해학과, 암튼 오징어 종합 선물세트다. 외국인에게 흥미로운 것은 한국적 게임 정도? 이 드라마를 이끌고 가는 힘은 죽음이다. 엄밀히 말하면 살인이다.  작가를 찾아보았다. 감독이 작가다. 뭐 돈 벌었으면 그만이지만 여운이 찜찜했다.


 우리 식탁에 오르기 전 무심하게 버려지고 죽어가는 식물세포를 보다 드라마 오징어가 오버랩되고 연민에 빠지는 것은 무슨 까닭 일까?  오징어에서도 주인공은 살아남았다.


            



 

주인공 아닌 변방의 우리 역시 번호가 매겨져 때가 되면 버려진다.


 이미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가 존엄한 생명이 아니라 통계 숫자에 불과한 것을 알았다. 백신으로 목숨을 잃어도 나 아니면 그만이고 부작용에 의한 인과관계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로부터 버려진다.  직장은 먹음직할만할 때 우리를 구입하고 냉장고에 모셔지다 시간이 지나면 버려진다. 여자는 아름답고 쓸만할 때 남자에게 선택받고 아이를 낳으면 부인에서 파출부로 신분을 바꾸어 살다 버려진다.  이제는 미국처럼 우리나라 여성도 남자와 동등하고 당당해야 한다.

 ( 비행기 탈 때마다 미국 항공사 여 승무원은 보안요원 같고 왜, 한국 승무원은 비서 같은지...)   


 버려지는 식물과 버려지는 우리 같은 동물들을 생각하며 글을 잠시 멈추고 음악을 들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문득 배움을 멈추고 내 생각을 진지하게 정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는 글쓰기와 닮아서 참 좋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요리를 했다. 한 개도 버리지 않고 빠른 시간에 해서 전부 먹을 수 있게...


제목: "닭볶음탕 하다 생각이 바뀌어 만든 닭갈비"


@냉동 닭가슴살

찬 물에 녹을 만큼 내놓았다. 해동된 닭 가슴살을 소금 약간 넣은 물에, 끓을 때 넣었다. 

계란 삶듯 3분 정도 끓이고 불을 끈 뒤 가위로 칼집을 내주고 그대로 둔다.


@그사이 야채를 다듬는다.

감자는 껍질채 씻어서 잘라두고 양파 한 개를 썬다.(모양은 자유롭게) 파 한 개를 잘 씻어서 약간 두툼하게 썬다. 양배추는 세모 네모로 마구 자른다. 당근 있으면 넣어도 되고.


@양념장을 만든다.

간장 적당히, 고춧가루 적당히, 피시소스 조금, 맛술 조금, 참기름 조금 청양고추 한 개 썰고 , 마늘 적당량 뭉개고 , 설탕 적당히 넣고 함께 마구 젓는다. 나는 연습 삼아 먼저 먹어 보려고 가슴살 두 개 분량의 양념을  작은 종지에 넣고 만들었다. 양념이 그리 많지 않다. ("적당히?"- 2스푼가량- 가 힘드실 텐데 나는 감으로 하는데 감이 없는 분은 여러 번 해봐야 한다)   


 자 준비가 끝났다.


이제 씻어 놓은 감자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전자레인지로 감자 한 개 당 3분 돌렸다. 속이 완전히 안 익어야 볶을 때 식감이 남는다. 닭은 꺼내서 먹기 좋을 크기로 썰어놓는다.


@반드시 오목한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센 불에 가열해 파를 먼저 넣는다. 파 향이 날 때쯤 편 마늘 투하  양파 투하 양배추 투하 1분쯤 볶다가 감자 투하 닭가슴살 투하 소금 후추 살짝 뿌리고 3분쯤 더 볶는다.(식용유도 조금 더 추가) 마지막으로 양념장 투하. 중불로 2분 정도 더 볶는다.  익었다고 느끼면 고춧가루 조금 뿌려서 색감을 살리고 간 보고 참기름 살짝 더하든지 깨를 살살 투하한다.


남은 열에 그대로 두고 식탁을 차린다.

(대충 15분정도 걸린것같다)




 

최근 한 달 동안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닭볶음탕이 닭갈비로 변한 기형 요리 맛에 놀라 숨쉬기 힘들었다.  어디서 배우거나 본 것이 아니라 혼자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절밥은 아니지만, 여러분도 한번 해보시라. 간단하고 빠르고 쉽고 다 먹어치울 수 있다.  "요리는 빠르고 강렬하게"  


요리를 먹다가 아래 음악이 클래식 방송에 나와서 가슴이 촉촉해져  함께 올린다.


오늘 저녁  내 요리와 내 음악을 먹고 마시고 여러분이 조금 더 행복해져 슬픈데 웃으면 좋겠다.


버려질 때 버려지더라도...

  

      https://youtu.be/JrLtrDnLj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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