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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Oct 03. 2021

남이 된다는 것

 가족의 탈을 쓰고 어른이란 이유로, 아무 말이나 처음 생각을 마구 퍼붓는 그녀를 누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누나는 마음에서 시어머니를 지우기로, 남처럼 대하기로 은밀히 결심했다.


 " 지우는 게 어떻게 하는 건데?"


내 뜬금없는 질문에 누나는 멈칫하더니 긴 침묵으로 뜸을 들였다. " 그러게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네. 스마트한 동생, 네가 한수 가르쳐주라"  카톡이 무료라서 그런지 누나는 시차 넘은 국제전화로 무려 두 시간 넘게 혼자 이야기하다, 내 돌발 질문에 상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누나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톤을 낮춰 속삭이듯 대답했다. " 내 생각에, 시어머닌 치매 전 단계로 느껴져.  인지부조화라고 할까? 한말 또 하고 또 하고,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도 기억도 못할 거야. 감정 기복도 심하고 그 감정조차 아주 빠르게 잊고 마치 조울증 같아." 왜 남 얘기할 때 작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속삭이며 대답했다.  "그럼 누나는 마음으로 상대하지 말고 머리로 상대하면 어때? " 누나는 실소했다.  "네가 마치 우리 어머니랑 산 것 같구나, 훗. 머리로 상대하는 건 또 뭔데?" "예를 들면 그냥 듣고 '네네' 하거나 화제를 돌리는? 한마디로 정성껏 무심한 거지..."


 " 또 한 가지, 누나가 누구를 미워해서 남으로 만들면 본인 마음 또한 불편할 거야. 그냥 가족의 인격은 가족으로 놔두고 '어머니가 머리가 아프구나' 하고 생각해봐"




나는 신혼 초 한 해 동안, 출국할 때까지 전세로 산적이 있었다. 전세금이 없던 나는 아버지께 도움을 청했다. 그분은 돈이 있으면서도 자립하라며 아주 어렵고 까다롭게 굴었다. 나는 속으로 참 치사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럭저럭 그 일은 해결되었다. 그다음 에는 프레스토라는 마음에 드는 차를 생애 첫차로 구입할 때 연대 보증인란에 아버지의 서명이 필요했다. 돈은 내가 내는데 아버지는 서명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은밀하게 아버지를 남이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돈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 아버지가 더 늙으면 고대로 갚아 줄 결심도 했다.


 아버지는 칠순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 참 서럽게 울었다. 아버지 죽음이 그처럼 슬픈 이유는 불효 때문이 아니라 화해할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워서였다. 아버지는 치매도 아니었고 교양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성정이 강하고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크고 불안이 많아서 그런지 모른다. 어린 나이에 피난길에 올라 내 할아버지와 생이별하고 돌연 다섯 식구의 가장이 되어 부산까지 피난 오느라 삶이 버거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남아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인생 승자였다. 아버지가 떠나고 나 역시 아이를 키워보니 내가 아버지보다 몇 배 훌륭한 사람도 아니고 전쟁 없는 세상에서 몇 글자 더 배운 것이 겨우 전부였다.  



 

 사람으로 힘든 누나보다 시골집으로 명랑한 동생의 전화가 조금 더 반갑다.


 오빠, 시골에서 산책하기 좋은 길이 논 사잇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옆집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요즘 논농사는 정부에서 쌀 품종도 다 지정하고 모내기도 맡기면 알아서 척척, 때 되면 추수하고 정미소 가서 다듬어지고 농사꾼이 별로 할 게 없대. 그냥 때 되면 농사진 것이 통장에 입금된대. 뒷짐 지고 자기 논 구경만 하면 된대. 어디까지가 진담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만큼 논농사가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것 같아. 논 주변도 전부 시멘트 도로로 잘 포장되어 있어서 정말 깨끗하고 사람도 별로 없어,

  

그런데 말이야, 어제 동네에서 산책하려고 논 길로 들어서는데 어떤 여자아이가, 아마 중학생쯤?, 인사를 하는 거야. 신기했어 생면부지 사람에게 동네 어른이라고 인사하는 게 신기하고 기특해서 나도 모르게 " 아, 네~" 했지 뭐야. 기분이 좋아지더라. 그런데 막 골목을 돌아 나서는데 초등학생 같은 꼬마애가 나타났어. 우리를 보더니 이러는 거야 " 누구셔?" 하, 참 기가 막혀서, 나도 모르게 반사가 튀어나왔어. " 누구긴 누구야 동네 어른이지 자식아" 그녀는 말하다 말고 한참 자지러지게 웃었다. 녀석도 웃기고 나도 웃기는 거야. 애가 동네 어른들 말투를 고대로 배운 거야 글쎄. 아이들 때문에 냉탕 온탕을 왔다 갔다 한 거지. 아마 그 예의 바른 여학생의 싹수없는 동생일지도 몰라.  한배에서 나와도 사람은 그렇게 다르다니까...


내 동생은 노랗게 물든 가을 벼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잘 익고 무거운 고개 숙인 벼를 그렇게 가까이서 생애 처음 보고 묵직한 인간이 되는 중이라고 했다.     




 누나는 시어머니와 마음을 차단하고 겉으로만 예의 갖춘 남이 되었다. 사람 공유기를 비밀번호로 차단하고 이익도 지식이나 정보 아니 뭐, 사람 사는 정도 이젠 연결되지 않는다. 상대도 연결이 끊어진 것을 알고 멀어지겠지.


  나도 살다 보니 점점 남이 늘어난다.


 헤밍웨이가 말년을 쿠바에서 보내며 집필한 '노인과 바다'는 생생한 바다와 낚시에 대한 조예가 깊이 느껴지지만 나는 소년이라는 등장인물을 주목다. 말년에도 유대감을 공유하며 동행하는 사람이 사실은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소중한 가족 아닐까...

 

https://youtu.be/wZk1anj0Ui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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