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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Sep 25. 2021

내가숨는 곳

 꿩은 위기를 만나면 머리만 풀숲에 감춘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렇다. 문제를 안고 사는 법에 익숙하지 않고 문제를 풀고 나서야 쉼을 얻는 성격 탓에 위기를 만나면 꿩처럼 허둥댄다. 꿩이 그런 것은 날지 못해서인데, 내가 허둥댈 때도 날만한 힘이 없거나 날지 못할 만큼 약해진 탓이라 그런지 모른다.   



 어려서는 잘못된 곳에  숨은 적이 있었다. 기껏해야 열 살 남짓 꼬마일 때, 오래된 기독교 집안의 유산을 따라 나는 교회를 다녔다. 어머니는 주일마다 헌금으로 십 원짜리 한 개를 고사리 손에 꼭 쥐어주었고, 어떤 더운 여름날 동생과 나는 교회 가다 십원에 열개하는 아이스케키 마귀에게 현혹되어 헌금 십원을 다 까먹고 말았다. 그날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주일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입가에 남아있는 흔적 때문에 조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여느 범인처럼 아니라고 했다. 엄마 수사관은 동생과 나를 대질 신문했고 맹세한 대로 우리는 끝까지 버티다가 동생이 수사관의 회유에 넘어가 그만 불고 말았다. 어머니는 기가 막힌 지 한참 웃고는 헌금으로 아이스케키 사 먹은 것보다 거짓말의 죄가 더 크다며 일하던 자 막대기로 입을 여러 대 가볍게 때렸다.  아프진 않았지만 거짓말이 창피했다. 그 후 나는 당분간 거짓말 안 하는 어린이로 살았다.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은 대학생 청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새파란 아이지만 그때 그 선생님은 하늘 같았다. 어려서 보이는 것이 전부 커 보이는 것은 어른이 되어 다녔던 초등학교를 가면 누구나 금방  깨닫는 일이지만 그때 우리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은 학교 교사만큼 권위가 있었다. 그때 나는 숫기 없는 아이였지만 가끔 리더 기질이 발동하면 아이들을 이끌고 들로 산으로 마구 뛰어다녔다. 하루는 교회 마치고 친구들과 귀가하는데 우리 반 교회 교사 둘이 다정하게 시내 쪽 아닌 야산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호기심이 발동해 로빈훗 일당처럼 논길을 달려 그들이 가는 길을 우회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미행했다. 그들은 나지막한 야산의 따뜻한 무덤 근처에 앉았다. 봄기운에 따뜻했고 숨어서 데이트 훔쳐보는 우리 가슴은 더 따뜻했다. 시간이 지나자 기대했던 장면, 수줍게 입맞춤하는 남녀를 보았다. 바로 그 순간 내 옆  친구 녀석이 코웃음 소리를 재채기처럼 허공에 터트렸다.


" 누구야?"


 무덤 뒤에 엎드려 숨어있던 나는, " 당아 당아 " 우리끼리 총싸움하는 척하고 냅다 뛰어 달아났다. 하지만 그 순간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러나 말거나 모두는 죽도록 달렸다.


 "세상에, 거룩한 선생님이 뽀뽀를 하다니."     


 한주가 지나 평소처럼 엄마는 십 원짜리 한 개를 손에 쥐어주며 헌금으로 "달고나" 사 먹지 말라고 당부하고 백 원을 더 주며 교회 끝나면 동생이랑 뭘 사 먹으라고 용돈까지 주었다. 그때도 돈은 신이었다. 횡제를 만나자 교회 가는 길은 신났다. 하지만  지난주에 뽀뽀하는 죄를 지은 선생님을 훔쳐본 것이  좀 마음에 결렸다. 출석을 부르는데 역시나 그는 나를 보고 웃지 않았다. 어린이 예배를 마치고 성경공부까지 마치자 그가 " 좀  따라와" 하며 나를 교회 창고로 데리고 갔다. 작은 창만 하나뿐인 창고는 밀양만 비추고 으스스했다. "너 지난번에 애들 데리고 나 미행했지?" 나는 겁에 질린 하얀 얼굴로 대답했다. " 아니요 우린 총싸움 만 했는데요?" 내 코는 피노키오처럼 커지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무서운 얼굴로 옆에 망가진 의자를 발로 내리쳤다. 그의 분기탱천이 의자를 박살 내고 그때 부러진 몽둥이를 내 코 앞에 갖다 대고 위협을 했다. " 내가 말이야, 네 아버지가 집사만 아니어도 너를 작살낼 수도 있어. 알아? 다음부터 한 번만 더 따라오면 죽을 줄 알아, 네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놀 테니까!" 그는 들고 있던 각목을 바닥에 무섭게 내동댕이치며 악마의 기운을 남기고 창고를 떠났다.(지금 생각하니 전두엽에 문제가 있는 청년 같다) 나는 너무 놀라고 무서워 한참을 벌벌 떨며 창고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가 교회에 숨어 있는 마귀 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내가 불려 가 위협당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날 이후 엄마가 준 돈을 헌금하지 않았다. 우리는 예배 마치면 성경공부시간에 출석을 부르고, 선생님에게 헌금을 냈다. 그는 헌금을 받으면 미소 짓고 칭찬도 해 주었다. 나는 그때 내가 그렇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교회 선생님이 입술에 침 묻히고 뽀뽀하는 것이 더 더럽다고 생각했다. 무덤 뒤에 숨지만 않았어도 안 걸렸을 텐데 하는 전략적 실수만 가슴에 후회로 남았다.

                    




   미국에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치 못하고 뒤늦게 귀국해 묘지에 갔다. 그때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과 어릴 때 숨어있던 무덤이 떠올랐다.


 그렇게 어린 시절이 서서히 망각에 묻힐 무렵, 세상에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민항기 조종사 선배는 자기가 숨는 곳을 소개해 주었다. " 여기가 우리 아지트야 " 지하실 전체를 개조해서 만든 비밀의 장소였다. 15평쯤 보이는 아지트는 리모델링해서 만든 넓은 거실과 복도를 따라 난 각자의 방으로 꾸며져 있었다. 네 개의 작은 방에는 각자의 개성이 새겨져 있었다. " 네 명의 레지스탕스다 이거지?" 내 엉뚱한 질문에 선배는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 그렇지 나 포함해서 넷이고 한 명은 K항공 조종사, 한 명은 식당 주인, 또 한 명은 목사. 전부 악기를 하다 만났어" 그래 방마다 현악기나 관악기가 있었다. 그들은 자기 시간 날 때마다 아지트에 와서 연습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치킨 시켜 먹기도 했다. "한해 한 두 번 정도 해외여행도 가, 우린 서로 만나도 간섭 않고 뭘 묻지도 않아, 얼마 전엔 한 명이 이혼했는데 새 여자 친구 데리고 와도 아무 질문도 안 해, 자유지대야. 하하" 선배는 그동안 자랑하고 싶어 견디지 못한 사람처럼 은밀한 아지트를 자랑스러워했다. 우리는 거실의 고급스러운 노래방 기계를 틀고 가수들이 녹음하는 마이크 같은 것에 얼굴을 대고 옛날처럼 노래를 불렀다.(그와 나는 학창 시절 중창단이었다) "소리가 이전 같지 않네? " 그간 한 번도 노래 안 한 나의 갈라진 음색을 선배는 금방 알아차렸다. 우리가 헤어지며 내가 아지트를 부럽다고 하자 선배는 고백했다. " 처음엔 신선하더니 요즘은 잘 안가. 우리끼리 출석부 만들고 표시하는데 다 들 안 오더라고. 그냥 혼자 있고 싶을 때 숨는 곳이지..."


 내가 웃으며 말했다 "하긴 처음 같은 게 세상에 어딨어?"         


                



  나도 아지트가 있다.


  그곳은 지하실도 아니고 한적한 시골도 아니다. 그곳엔 헤드폰과 휴대폰만 있다. 그곳엔 친구들도 많다. 흔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모차르트와 쇼팽, 슈베르트 베토벤을 그곳에서 만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네 사람이다. 그들과 음악의 숲을 거닐면 그곳은 미국과 한국을 초월한 세상이다. 시카고 시간 저녁 7시에 한국의 아침 방송 KBS 클래식을 김미숙 배우의 안내를 받으며 만난다. CBS 클래식도 같은 시간에 강석우 배우의 안내를 받아 듣는다. 나머지는 뉴욕의 클래식 방송과 유럽 방송국 하나를 즐겨 듣는다.


 집에서 10분이면 만나는 그랜드 파크 앞에 바다 같은 미시간 호수 벤치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클래식을 들으면 심장마비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엑시타시 ecstasy를 느낀다. 그렇게 내 아지트는 어딜 가도 만들어진다. 비행기 안에, 타주로 장거리 운전하는 차 안에 한국이든 미국이든 상관없이 존재한다.


 나는 그곳에 숨는다.


 숨어서 머리의 공회전을 멈추고 몸도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도 포기하고 문제도 덮어 놓는다. 그곳엔 작곡가의 영혼이 영혼의 천장에서 발견한 우주의 소리를 만난다. 내가 얼마 안 가 이 행성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생명의 그라운드 제로 소리를 듣는다. 나는 헤어지는 날 나를 사랑하던 이들이 내 곁에 있다면 그들에게 잔잔한 실내악을 틀어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아주 천천히 긴 호흡으로 이 별을 이륙하고 싶다. 만약 호흡이 엉켜 몸의 리듬이 망가지고 급하게 떠나기라도 한다면 베토벤을 부탁할 것이다. 나는 나이로 보면 아직 한참을 살아야 하지만 백신 맞고 잘 죽는 지병(고혈압)을 가지고 있어 뭐든 맞다 죽으면 원인은 지병일 게다. 그래서 평소에 착실하게 준비 해 놓아야 당황하지 않고 마지막을 떠날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지트는 한국 갈 때 만나는 38000피트 상공과 숲길이다. 창공에서는 쇼팽을 만나고 숲에서는 모차르트를 만난다. 그리고 더욱더 좋아하는 침대에서는 슈베르트를 만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에 있으나 미국에 있으나 아지트에 문 열고 들어서면 동일한 평화를 맛본다.  시공을 초월한 세상을 갖는 것은 아직 이 방법 말고는 없다.


나는 이렇게 숨어 있을 때 심호흡을 하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오직 내게 온정을 베풀며 나만을 위해 힘쓰고 나를 사랑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적자생존의 긴장을 이겨내기 힘들다.      

나는 어릴때 처럼  또 무덤곁에 숨었다.  하지만 무덤속에 오래된 음악가들은 내게 힘을 주어서 좋다.


            

                    https://youtu.be/12kG3Njjr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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