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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25. 2021

Hi,  Christmas!

 잘 지내지?

 금아, 혁아, 내가 너희들한테 동시에 손편지 써서 보내는 게 처음이네. 

 

혁이 너에겐 복사본이 갈 거야 섭섭해하진 마.  원본은 금이에게 보냈어. 오랜만에 손으로 편지 써보니 모든 게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성탄절이라고 카톡으로 문자 없이 카드 한 장 달랑 보내는 사람보다 손편지가 훨씬 낫지...  


참 인사 잊었네. Happy Christmas!


 난 한국에 나왔어. 오늘은 2021년 성탄절인데 오랜만에 눈이 오려나 봐. 게다가 산타가 북극한파 타고 썰매 끄는 바람에 여긴 추워서 난리다. 강원도엔 폭설도 예보되어 있고 내가 머무는 여기, 시골 아지트는 "곧 눈이 옵니다" 하고 휴대폰에 뜨더라. 금이 네가 있는 캔자스시티는 날씨 찍어 보니까 22도 나온다. 하하. 거기는 다음 주나 돼야 정상적인 겨울 날씨로 돌아오더라고.


 날씨고 뭐고 다 이전 같지 않아. 기억나지? 우리 땐 크리스마스에 새벽송 돌고 그랬잖아? 여기 한국은 오랜만에 한파가 찾아와서 멋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아. 물론 코로나 그놈이 문제지만 오늘은 그놈 이야하고 싶지 않다.  


겨울은 역시 추워야 제 맛인 것 같아. 난 작년 이맘때 시카고에 있었잖아. 얼음왕국 기대하고 있다가 정말 망했어. 세상에 살다 살다 시카고가 그렇게 더운 건 처음 봤거든,


 아무튼 올해는, 한국의 어느 멋진 겨울날에  내가 시골집에서 꼭두새벽에 눈을 뜬 거야.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후후 웬 새벽 기상? 웃지 마. 수도가 동파될까 봐 걱정이 많은 거야. 어제 마당에 있는 수도계량기를 꽁꽁 싸맸어. 텃밭 마늘이랑 양파도 부직포로 한번 더 싸고, 완전 Labor day, Xmas Eve였어. 쌈채소는 아주 조금인데 미니 비닐하우를 부직포로 한번 더 두르고 틈새 다 막느라 하루 다 보낸 거 있지?  사실은 말이야, 그제 부스터 샷 맞고 아파야 하는데 "한파 성탄" 준비하느라 아픈 것도 잊고 난리 친 거야.


 여기 시골집은 내가 엄청 많이 고쳤어, 인부들 사서 해보니까 맘에 안 들고 돈만 줄줄 새더라고 그래서 인터넷 보고 공부해서 태어나 처음 미장도 해보고 벽도 쌓고... 너 그런 거 모르지? 악취 맨홀이라고. 하수구 끝에 작은 맨홀을 묻어서 악취나 쥐가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장치야. 포클레인 기사하고 배수관 공사할 때 땅 파고 파이프 자르고 해서 얼마 전에 만들었어- 여긴 내 집 이냐고? 아니 동생 꺼야- 그런데 그거 맨홀 안쪽에 항상 물이 차있거든? 그거 얼까 봐 보온재로 막고 공사하느라 어제 또 종일 고생했다니까?


 그래도 내가 미국에서 헛살지는 않았더라고. 왜 알잖아 우린 미국에서  혼자 다 수리하고 고치는 게 익숙한 거. Home Depot, Lowe's 가 그립더라고. 미국 어디나 그곳에 가면 건축자재 천진데  여기 한국은 그런데가 없어, 철물점이나 건재상을 가야 하지.


참 인간은 간사한 거 같아. 여기 가면 저기가 그립고 저기 가면 여기가 그리운 거. 아마 결혼해선 첫사랑이 그립고 첫 사랑하고 살면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은데 내가 너무 일찍 정한 거 아닌가, 후회할 거야... 후후


 암튼 새벽에 갑자기 눈을 떴는데 수돗물 안 얼었나? 하다가 너희들 생각이 난 거야. 

 

마치 꿈꾸는 것 같았어. 침대에서 멍하고 있는데 옛날 성탄절 새벽에 우리 교회 청년부 애들이랑 새벽송 돌던 게 침실 벽 스크린에서 영화처럼 돌아가는 거 있지?


 눈이 엄청 많이 온 겨울이었지, 여자애들은 부츠신고 여기저기 자빠지고 새벽 내내 까르르 깔깔, 그땐 우리나라가 참 순진했다. 그 시끄러운 성탄절 새벽에, 자기 종교도 아닌데 어떤 집은 따뜻한 차를 대접해 주기도 하고, "메리 크리스마스!" 하면 옆집 불 켜지고 " You too" 하고 영어로 소리치던 노인도 기억나. 왜 너도 알잖아, 요즘 미국은 "해피 할러데이!" 하지 " 메리 크리스마스"는  잘 안 하잖아?


 그 새벽송 영상 끝나고, 두 번째 영상 도는데  


 그 장면은 내가 고3 때 코 수술받느라 경희대 의료원에 일주일 입원했던 성탄시즌 영상이야. 그때도 함박눈이 내렸지. 거리에는 이문세의 감미로운 겨울 노래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고 내가 퇴원하던 날  병원 현관에서 누가 손 흔들고 있는지 알아? 내가 입원했던 2인실 꼬마의 고모야. 그때 그녀는 모여대 2학년이었고, 자기 조카 간병하다가 나랑 친해졌지. 나도 그 누나 보살핌을 받았어. 눈이 많이 오고 퇴원하던 날, 조카를 안고 병원문 앞에 눈시울 적시며 그녀가 손을 흔들었어. 나도 뒤돌아서서 몰래 눈물 훔쳤지.  한 주 동안 부모님보다 그녀에게  더 사랑받았던 것 같아. 우리 아버지는 바나나랑 과일 통조림 깡통 가지고 한번 오셨어. 생각이 없는 거지. 아들이 코 수술했는데 뭘 먹어? 암튼 그녀를 대학 가서 몇 번 만났나? 너 알잖아? 그 진수 선배, 내가 그녀를 소개해 줬는데 둘이 잘 안 되더라고. 생각해 보니까 그녀가 날 좋아한 것 같아. 나도 좋아했고. 참 멍청하지. 내가 사귈걸. 난 왜 여자하고 사귀면 결혼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몰라. 연상이라 결혼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아. 어린 노무 자슥이...


 카르르 돌던 영사기 풀리고 추억의 영화가 끝나자 정신을 차렸어. 이어서 난 너희들 생각이 났고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항상 성탄절 새벽이면 같이 돌아다니던, 금이 너, 참 많이 보고 싶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거긴 그래도 안 추워서 다행이다. 

 네가 영면한 그곳이 추우면 나는 괜히 가슴이 아파.  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뇌사상태라는 연락을 제수씨에게 받았을 때, 나도 뇌가 마비되는 줄 알았어.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넌 이미 떠나버렸지. 야속한 친구야. 제수씨가 네 옷 하나 못 버리고 영원히 젊은 너를 안고 사는 거 보면, 난 챙겨주지 못한 죄책감만 빚덩이처럼 늘었어. 아, 이제 그만, 다 잊자, 친구야.


친구야, 메리 크리스마스다.


너무 춥지 않게 옷 잘 입고,  따뜻하게 잘 지내고 있어. 내 마음에 항상 너 있다. 안녕!






혁아, 많이 기다렸지?


금이가 우리보다  떠나서 금이에게 먼저 안부 전했어.


 우리가 대학동창인 게 우연 같지만 난 참 감사했어. 너희들 덕분에 학창 시절이 행복했어. 우리 셋다 축구를 좋아해서 그 기억이 제일 많이 남아. 내가 과 대표할 때, 축구 시합하기로 했다가 비가 억수로 와서 취소할 뻔했던 거 기억나지? 내가 수업 끝나고 일장 연설을 했다며? 비와 축구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 내 연설에 급우들이 손뼉 치고 우리는 우천 축구를 했지. 땅은 질퍽거리고 폭우가 쏟아지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 깔깔, 넘어지고 공은 빠지고, 그날 우리는 축구 마치고 사우나로 직행했지? 아~, 그때 온탕에서 몸이 녹는데, 난 미국에서 한국 목욕탕 상상 많이 했다. 그게 아마 그때 좋은 기억 때문인 거 같아.


그리고 우리, 삼계탕 먹으러 갔지? 너 기억나니? 스님 한분이 우리 옆에서 삼계탕 먹던 거.

그때 유행하던 구식 유머도 있었지?

 "스님 한분이 냉면집에 왔다. 종업원이 물었다. '스님, 냉면 고기 사리는 어떻게 할까요?" 스님은 말없이 종업원을 바라보다,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밑에 깔아' "                                      

우리가 삼계탕 집에서 스님 봤을 때, 우리끼리 눈 마주쳐서 막 웃었잖아. 내가 너한테 그랬지? "눈 깔아" 너 또 빵 터져서 먹던 물 입에서 터트렸잖아? 난, 이제 그 스님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어.


 생각해 보니 우리가 다 일찍 미국에 들어온 것도 운명 같아. 네가 나 처음 미국 들어왔을 때 도와준 거 정말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무진 고생했을 텐데. 니 덕분에 내가 빨리 자리 잡고 살았던 것 같아.  그리고 네가 LA로 이사 가면서 우리가 좀 뜸했지?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났나? 아무튼 LA 쪽은 내가 처음 유학 때 살던 곳이라 너를 생각하면 그림이 떠올라서 멀리 있다고 생각 들지 않았어. 왜 많은 한국사람이 미국에 우리랑 통화하면 영상은 없고 음성만 있잖아. 여기를 안 와봐서 모르니까. 우리는 한국 그림을 느끼며 통화하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부모님도 내가 안 보였겠다...


 넌 나보다 성격도 좋고 부지런하고 친구도 잘 만들어서 네 분야에 성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 이제 와서 솔직히 말하는데 난 네 성격이 부러웠어. 금방 적응하고 부지런 떨고, 난 좀 소심한 데가 있어서 네가 유난 떤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내가 질투한 거야. 사람마다 다 자기 관점에서 평가하고 판단하잖아. 성숙하다는 것이 나와 다른 타인을 수용하는 능력의 크기라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더라. 지금보다 그때 나는 많이 미숙했던 것 같아. 하긴 늙어도 변함없는 어른들도 봤어. 난 인생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거지. 미숙에서 성숙으로 변하지 않는 건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죽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 결국 늙어서 미숙한 채로 치매 오고, 소중한 기억 다 날리고 자기도 잃고 살다 허무하게 삶의 여행을 마치는 것 같아.


혁아, 여긴 성탄절이야. 거긴 어떠니?


 네가 말기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난 허탈해서 웃었어. 더 이상 신을 원망할 힘도 없더라. 넌 바쁘고 부지런해서 자기 생각 안 하고 일만 하다 멍청하게 간 거야. 자기 몸 하나 관리 못하면서 부지런하면 뭐하니? 난 너 때문에 요즘 피검사하고 결과 달라고 해서 하나하나 수치를 따져봐. 의사는 컴 앞에 앉아 내 수치엔 관심 없고 간단히 말하더라. "혈압 약 드셔야 하고, 간이랑 신장 뭐 정상치 범위에 있네요.  콜레스테롤 안 좋고..."  그냥 약 먹고 "니 인생 네가 알아서 사세요" 하고 들리더라고. " 네 감사합니다" 하고 나왔지. 속으로 뭐라 했는지 알아? " 약. 장. 수." 그랬어.


 내 건강 수치를 보다가 또 잠시 멈췄어. 하, 인생이란 놈. 참 쓸만한 애들은 이유 없이 떠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만 남는가 보다 하는 생각에 허무하더라고.


혁아, 조금만 기다려 우리 곧 만나자.


거기서 금이랑 너랑 우중 축구 한번 더하자. 아니 눈 위에서 축구하면  더 재미있겠다.


항상 성탄절이 오면, 아니 오늘 특히 너희들 생각 많이 나서 눈물 난다.


모든 죽은 이들과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하늘에서 걱정 없이 따뜻하게 우리를 기다려다오. 잘 지내고...         


안녕...


 

우리가 합창단에서 같이 렀던 노래 남겨놓을게...


  https://youtu.be/-xON2cqEJ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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