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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26. 2021

처음 가는 길

 가끔 조용한 시골집에 내려오면 나는 항상 자전거를 탄다.


 마땅한 교통수단도 없거니와 탈것에 매달려 있는 것에 심리적 안정을 느낀다. 여기서 가까운 읍내까지는 자전거로 삼십 분 거리인데 네비가 삼십 분이지 흐느적거리며 밟으면 한 시간도 더 걸린다.


 그래도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길은 금강 자전거 길이다.


 금강에 들어서면 청둥오리와 여러 철새들의 장관이 펼쳐진다. 느린 강물의 애잔함도 철새와 운명을 같이한다. 그 모습은 회색 문명을 끼고 철새 품은 한강과 달라 보여 그냥 대로가 좋다.


 하지만 차 없는 강변, 자전거길까지 가려면 폭이 좁은 차도를 몇 번이나 바꿔 타야 한다. 차도 옆은 하천이라 대형 트럭과 심지어 작은 트럭까지도 비켜가려면 버겁다. 그러나 최단거리는 그 길 밖에 없다.


안전한 길을 고심하다, 네비가 알려주는 길 대신 내가 탐구한 길을 찾아 나섰다. 이 작은 모험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나는 길이 틀려 돌아가는 것을 못 참는 내 성격과,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한 긴장이 남보다 커서 두 번째 할 때 매우 침착하고 숙련된 나의 자질과 달리 처음이 형편없다는 점이었다.


 처음 해본 미국 이민 초창기에 나는 이 두 가지 문제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 해보는 길 찾기는 전혀 심각하지 않은 도전이었기에 마음 졸이는 텐션이나 두려움은 없었고 대신 추운 날씨에 내 혈압이 걱정이었다.




처음 가보는 길은 항상 아는 길의 끝자락에 모습을 드러냈다.  



 늘 가던 길, 남들이 미리 닦아놓아 누구나 아는 길은 안전하지만 지루하고 매너리즘에 빠진다. 내가 가장 아끼는 서양 작가 한분도 자기 작품의 토양이라 할 수 있는 영어를 버리고 이탈리아어로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글쓰기 작업이 세상을 자신의 시선으로 통찰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글쓰기 수단인 영어가 무뎌지고 새로운 표현 수단에 눈을 뜨면서 다른 언어에 매료된 것 같았다. 어쩌면 그 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처음 가는 길, 다른 작가들이 시도하지 않는 낯설고 거친 길이었으리라 짐작한다. 


 내가 자전거로 처음 가는 길은 위험 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네비 대신 내 머릿속에 그린 지도는 나름대로 잘 작동했으며 나를 멀리 외딴곳으로 인도하지 않았다. 철새만큼은 아니지만 대체적인 지형지물로 방위를 구분하고 저 멀리 낯익은 교회의 높은 첨탑은 북극성처럼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도 처음 가보는 길은 언제나 새롭고 두렵다.    





나는 한국에서 초급장교 시절 전방 고지에서 근무했다. 요즘 같은 한파가 몰려오면 전방고지는 바로 북극처럼 얼어버린다. 하루는 갑자기 참모총장이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대는 대대장이 지휘했는데 북한군이 쳐들어온 것만큼 비상이 걸리고 꽁꽁 얼어붙었다. 부대 청소부터 제설작업, 헬기장 정비, 근무자세 점검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게다가 산에서 차로 한 시간 걸리는 마을 관사까지 시찰 대상이었다. 아주머니들도 군인처럼 비상이 걸렸다. 불과 몇 시간 뒤 참모총장은 헬기를 타고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멋있었다. 지휘관 참모들은 헬기장에 도열해서 경례하고 헬기 바람을 이기며 사성장군이 지휘봉을 들고 하기했다.


젊은 나는 그때 별네개를 처음 보았다. 무섭고 근엄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우리 출퇴근 버스 운전하는 최 문관 아저씨와 닮았다. 엄숙한 브리핑이 끝나고 장군은 식당에서 병사들과 섞여 식사를 함께 나누었다. 총장은 대대장에게 금일봉을 하사하고 관사로 가자고 말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했다.


 갑자기 대대장 눈이 나와 마주치더니 눈짓으로 나를 불렀다. (나 모르게 이미 그는 생각해 둔 것이 틀림없다)  그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총장님 모시고 자네 집으로 가"


 " 네?"


나는 이미 헬기에 오르고 있었 조종사 목소리가  헬멧 헤드폰으로 작게 들렸다.


 "여기서 관사로 가는 길을 조언해 주십시오 "


나는 하늘길로 관사를 가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트럭을 개조한 탑차를  타고 출퇴근하거나 가끔 대대장 지프로, 가끔 폭설로 기지가 고립되면 하루 종일 산을 걸어 내려와 하루 한 번 다니는 산골 마을버스를 타고 관사에 가본 적은 있었다. 땅에서 잘 알던 길이 하늘에선 가물가물 했다. 게다가 대지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헬기는 관사 옆 초등학교 운동장에 착륙하기로 되어 있었나 보다. 몇 분 비행하다 조종사가 물었다.


"관사가 저겁니까?


"..."


"잘 모르겠습니다"


내 앞에 앉은 총장님이 웃었다. 옆에 앉은 수행 부하들도 따라 웃는다. (군대는 지휘관 얼굴을 따라 한다) 헬기는 관사 상공을 몇 바퀴 선회하다 관사 옆 논에 겨우 착륙했다. 미안했다. 조종사에게 총장님에게...


우리는 논에 쌓인 눈을 푹푹 밟고 관사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 집 청소는 잘되어 있었지만 아내 얼굴은 미처 정리 못한 쌩얼이었다. 의례적인 대화가 오가고, 총장 부관은 금일봉을 내밀었다. 그들은 관사도 한 바퀴 둘러보고 푹푹 빠진 논길을 다시 밟고 헬기로 떠났다.


대대장이 무전기로 나를 호출했다.

 

 "치익~ 잘했어?"


 "치익~ 네, 돈도 받았어요"


" 치익~ 하하, 너 가져"   


" 치익~ 라져, 카피"  


(대대장은 몇 년 뒤 암으로 조기 전역하고 착륙 없는 이륙을 했다. 나는 그때부터 아끼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침묵하는 신을 원망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때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하늘에서 처음 가본 길은 하얗다.



그 후, 처음 가보는 미국 유학, 처음 해보는 이민 수속, 처음 보는 아이들의 반항, 처음 만난 부모님의 죽음, 처음 가보는 수많은 갈래길에 들어서며 앞으로 처음 가볼 죽음의 문턱에 내가 느낄 하얀색은 어떤 색으로 변할까 궁금하기만 하다.


처음 가는 2022년도 설레고 두렵고 궁금하다.


  

https://youtu.be/trlvvzPuC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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