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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28. 2021

나는 노력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읽다, 이 문장에 꽂혀버렸다.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잠시 멈추어 생각했다.


 그래 그렇지 내가 노력하는 것을 좋아했어,..


 나는 어릴 때 최우수 성적은 아니지만 우수한 편에 속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공부는 별로 재미없었다. 나는 수학보다 국어가 좋았고 그다음 영어를 좋아했다. 국영수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국어였다. 하지만 나는 취업에 유리한 이과에 들어갔다.     


 중학교 다닐  매로 교육하던 시절이라 학교 가면 매일 매를 맞았다. 체육은 대놓고 때렸고 심지어 미술까지  때렸다. 수학은 그날 날짜에 해당하는 번호 학생에게 나와서 문제를 풀라고 시켰다. 그 학생이 칠판 앞에서 버벅대면 그 친구 앉은자리를 기준으로 십자가를 그어  앞으로 뒤로 옆으로 앉은 우리는 나가서 뺨을 한 대씩 맞았다. 그러니까 운 없는 날은 문제 한 번 안 풀고  뺨을 얼얼하게 맞기도 했다. 십자가 처형으로 우리는 모두 예수였고 수학은 빌라도 였. 그런 날은 얼굴을 뻘겋게 하고  쉬는 시간 화단 햇빛에 쭈그리고 앉아 "저 인간 퇴근하다 차에 확 치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모두가  함께 하곤 했다. 게다가 역사는 선생 중 유일한 여자였는데 짧은 다리에도 불구하고 매일 검정 스타킹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녔다. 우리는 그녀를 "미스 무"라고 불렀다. 수학과 역사는 대놓고 교내 커플이었는데  미스 무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학생들이 자기 다리를 보고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항상 출석부로 짧은 치마를 가리고 올라갔다. 생각 없이 그녀 뒤를 따라 올라간 애들은 " 너, 너, 두 명 교무실에 수학선생님한테 가" 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들 증언에 따르면  아무 이유 없이 수학한테 맞았다고 한다.


수학 매를 맞고 자란 나는 성적이 무 자라듯 쑥쑥 떨어졌다. 

역사가 계단 오를 때 다리 밑에 서 있지 않아 맞않았지만 역사 성적도 동반 하락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해주는 무 국, 총각무 김치도 안 먹기 시작했다.




한 학기 지나고 웬일인지 수학이 학교를 떠났다. 


반장이 그 소식을 선포하자 우리 반 애들은 촛불 혁명 주문을 선고할때 처럼 두손 높이들고 교실이 떠나 소리 질렀다 .


만세! 만세! 만세!


골고다 언덕 위의 십자가 체벌은 사라졌다. 새로 온 수학 선생님은 영국 중년 신사 같았다.(그전에 수학은 젊은 한국 총각이었다) 그분은 늘 말이 없고 잔잔한 미소를 띠고 계셨으며 목소리도 차분했다. 그는 수업시간에 절대 매를 들지 않았다. 사형장 같던 수학 시간은 수면실이 되었다. 선생님의 특징은 칠판을 보고 혼자 문제를 풀면서 간혹 뒤를 돌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들이 엎드려 자도 뭐라 하지 않고 그냥 혼자 문제를 풀었다.  


그런데 나는 열심히 수학을 공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 오신 선생님이 좋아서 인정받고 싶었다. 게다가 수학선생님은 우리 반 담임이었다. 시험 때마다 내 수학 성적은 무 뽑듯 쑥쑥 올라갔다. 나는 총각무를 다시 먹기 시작했고 어머니 뭇국도 한 그릇을 다 비웠다. " 너 참 이상하다. 얼마 전까지 입 대지도 않더니, 이젠 맛있어? " 어머니는 자기 음식 솜씨가 좋아졌다고 착각했다.  


" 자자, 여러분. 지난 전국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다"


당시엔 전국 모의고사라는 것이 있어서  전국 학교 성적과 개인의 성적 순위가 나왔다.


"우리 반 수학 성적이 지난 학기보다 엄청 올랐고 여러분 수고했다. 그리고 희소식 하나, 우리 반에 수학 만점자가 나왔다. 전국 상위 1%야 축하한다"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나는 앞에 나가 환호와 박수를 받았고 지난 수학 한테 맞을 때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이번엔 부끄러워 그랬다.


그 후 평생, 어떤 과목도 만점을 받은 적이 없다.


 좋아하는 것을 노력해서 얻은 기쁨은 지금도 내 삶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선생님께 인정받고 싶어 노력이란 것을 처음 해보았고 내가 노력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때 알았다.


 난 지금도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고 그 누군가 기뻐하는 것을 보면 가장 행복하다.



 

소유주 우주 캡슐이 지구 대기권을 뚫고 화염과 바람을 견디 땅에 도착하면 검게 그을린 우주선에서 중력과 속도에 짓눌린 사람이 나타난다. 세월이 흐르면 우주선 같이 몸은 상하고 우주인처럼 지친 영혼만 남는 것 같다.


삶의 여행이 더 지치기 전에 노력하는 기쁨을 더 누리고 싶다.     



오래전 아들이 미국에서 컴퓨터로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봤다.

녀석, 순식간에 뚝딱 만점을 맞았다. 나는 장난스럽게 빈정거렸다.  


"녀석아, 한 개쯤 틀려줘야 매력 있지 만점이 뭐냐? 만점이."       


" 아빠는 만점 맞아 본 적 있어?"


https://youtu.be/LG-K0lZLO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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